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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범벅 태안 생태복구 20년 걸려

천하한량 2007. 12. 9. 20:55
기름범벅 태안 생태복구 20년 걸려
◆ 죽음의 바다로 변한 태안 ◆

9일 충남 태안 만리포에서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해안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기름을 수거하고 있다. <이승환기자>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은 지금 온통 시커먼 빛으로 뒤덮여 있다.

푸르러야 할 파도도, 은모래가 깔려 있어야 할 백사장도, 싱싱한 해산물이 자라는 양식장도 `끈적이는 검은 기름`으로 뒤범벅돼 있다.

지난 7일 발생한 유조선 원유 유출 사고로 흘러나온 기름 찌꺼기는 해안가 5~10㎞ 밖까지 매캐한 악취를 내뿜으며 만리포 일대를 `죽음의 바다`로 바꿔 놓았다.

9일 오전 해수욕장 입구에는 강원 부산 인천 등 전국 각지 번호판을 단 탱크로리 차량들이 쉴 새 없이 폐유통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날 `재난사태`가 선포된 태안 서산 보령 등지에서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방제 작업이 사흘째 진행됐다. 재난대책본부 등은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동원했지만 이날 오후까지 회수한 기름은 유출된 1만t 중 1%에 해당하는 100여 t에 불과했다.

보령에서 온 자원봉사자 김효순 씨(58ㆍ여)는 "걷어내고 걷어내도 또 올라오니 어느 세월에 이 기름을 다 걷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몸서리를 쳤다.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 때도 방제작업에 참여했다는 방순관 씨는 "비중이 무거운 원유라서 바다 속 모래 사이로 스며들 가능성도 높다"며 "시프린스호 사고 때 복구에만 3개월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6개월로도 모자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선 태안 앞바다 생태계가 복구되려면 20~30년은 걸릴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해안가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생태계는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기름으로 범벅이 된 망둥이 소라 해삼 등이 괴로운 듯 연방 몸을 뒤집고 있었다. 기름 파도를 피해 안간힘을 다해 해안가로 올라왔지만 몇 번 파르르 몸을 떨고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현재 기름 유출로 인한 피해는 태안군 소원ㆍ원북ㆍ이원ㆍ근흥면 등 4개 면 어장피해 2100㏊, 만리포 학암포 등 해수욕장 6곳 221㏊ 등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2300여㏊로 집계되고 있다. 피해 해안선 길이는 태안반도 전체 해안선 150㎞ 중 33㎞ 정도로 추정된다.

특히 만리포 해수욕장과 모항 부근은 해변 모래와 암석 등에 기름뭉치가 엉겨 붙어 수거에 애를 먹고 있다. 다행히 기름이 새 나왔던 유조선 탱크 구멍은 이날 새벽 4시부터 봉쇄작업을 벌여 오전 7시 30분쯤 완전히 막아 원유 유출은 멈췄다. 하지만 오후 들어 밀물이 밀려들자 사흘째 계속된 방제 작업은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오후 2시께 오일펜스로 백사장을 막기 시작했지만 만조가 되자 검은 밀물이 백사장을 조금씩 삼키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 수천 명이 달라붙어 걷어낸 것도 허사였다. 이미 예상한 일이지만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 나왔다.

자원봉사자 노춘자 씨(51)는 "하루이틀 일해서 퍼낼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아무리 쓸어담고 퍼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울상을 지었다.

피해를 이처럼 키워 놓은 데는 사고 직후 대응이 미흡한 것이 큰 원인. 정부의 낙관적 예측과 달리 기름띠가 해안가로 급속히 번지면서 피해가 확산됐다는 지적이다.

충남 태안 기름 유출사고로 피해가 확산되면서 신두리사구 보호구역에 기름을 뒤집어쓴 겨울철새 뿔논병아리가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환경운동연합>
해경은 기상과 해상 상황 등을 감안한 모의실험 결과를 인용해 이르면 24시간, 늦으면 36시간 이후에 해안으로 기름띠가 확산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인근 사고 해안인 소원면 의항리 일원과 학암포 천리포 만리포 등에는 불과 사고 발생 13~14시간에 기름띠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밤 사이 바람이 겨울 계절풍인 북서풍으로 바뀐 데다 풍속도 초당 10~14m로 멈추지 않으면서 사고 해역에 형성된 기름띠를 해안 쪽으로 밀어냈다.

유조선 내 `밸러스트(선박 균형장치)`로 기름을 응급으로 이송하면서 7일 낮 12시께부터 유출은 더 이상 없다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 8일 오후까지 정유가 지속적으로 바다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안 유입을 저지하기 위한 오일펜스와 흡착포도 제때 분배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 같은 부실한 대처가 빚은 손실은 엄청나다. 삶의 터전인 바다를 잃은 주민들은 넋을 잃은 채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미정 씨는 "다들 2~3년간은 장사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해 울고 싶은 심정뿐"이라며 "바다로 기름이 빠져나갈 거라는 엉터리 예측만 없었어도 피해가 덜 했을 것"이라며 검은 기름띠 공포에 몸서리를 쳤다.

구름포와 의항리 등 일대 횟집촌은 유령마을로 변했다.

모항리 주민 이추자 씨는 "주말이면 겨울바다를 찾는 나들이객으로 붐볐을 텐데 사람구경하기도 힘들다"며 "기름냄새가 안쪽 마을까지 올라와 역한 냄새 때문에 토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고 울상을 지었다.

태안 앞바다 일대 양식장들은 생명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의항리 주민 김현 씨는 "썰물이 빠지니 기름으로 뒤범벅이 된 굴과 가리비 등이 입을 쩍 벌린 채 흉한 몰골을 드러내더라"며 연방 담배를 피워댔다.

양식장에는 통통배 한 척이 힘겹게 유화제를 뿌리고 있었고 오일펜스는 밀려드는 기름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던지 바다 한가운데 끊겨 있었다. 인근 개목항에 들어서니 검은 기름띠를 뒤집어 쓴 선박들이 을씨년스럽게 늘어서 있었다.

이충경 의항2리 어촌계장은 "굴 해삼 전복 가리비 등은 지금이 제철이라 피해액은 따지기도 힘들 정도"라며 "주민들끼리 모여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회복기간이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 같아 앞으로가 더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태안 = 김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