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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은 ‘판도라상자’ [중앙일보]

천하한량 2007. 12. 3. 20:49
파생상품은 ‘판도라상자’ [중앙일보]
얼마나 위험한지, 피해액은 얼만지 아무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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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돌출했다. 그러나 뉴욕 금융계는 사고 규모가 어느 정도인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월가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크게 엇갈렸다. 상품의 성격과 시장의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정확한 피해액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금융사고는 단순했다. 상품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이 도산하면 담보를 초과하는 대출금이 금융기관의 피해액으로 잡혔다. 그러나 요즘 금융상품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디리버티브(derivatives)로 불리는 파생금융상품이 대표적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그 자체보다는 그걸 기초로 만들어진 파생상품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파생상품은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무척 힘들다”고 진단한다.

◆불안 부추기는 파생상품들=지난달 28일 국내 채권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하루 거래 규모가 1조~2조원인 외환파생상품(금리 스와프)에서 손해를 본 외국인들이 손실 만회를 위해 국고채를 마구 팔아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하루 거래 규모가 10조원인 채권시장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했다.

그날 저녁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큰 문제 없다.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한은은 전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1조5000억원어치의 국고채를 사들였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가만히 놓아 둘 경우 채권시장의 왜곡 현상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신용도가 낮은 이들에게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줬는데 이자율 상승과 집값 하락으로 대출채권이 부실화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매우 복잡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잔액은 1조3000억 달러인데, 이를 기초로 만들어진 파생상품의 규모는 1조1000억 달러에 이른다.

◆통제 어려운 파생상품=1990년대 이후 국제 금융시장 급성장에는 선물·옵션·스와프·자산유동화 등 각종 금융기법을 활용한 파생상품의 역할이 컸다. 당시에 파생상품은 위험의 분산이란 ‘천사의 얼굴’을 하고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 파생상품은 ‘악마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확산이나 국내 채권시장의 급등락을 통해 파생상품의 ‘두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파생상품 시장은 6월 말 현재 519조 달러로 95년에 비해 10배가량 성장했다. 국내의 총 외환 파생상품 거래도 98년 하루 10억 달러 수준에서 올해는 232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와 별도로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가·채권과 관련 장내파생상품만 거래량이 27조원에 달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경우 위험도에 따라 분류된 채권을 다시 여러 개의 유동화 증권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유동화하는 방법이 많이 쓰였다. 게다가 헤지펀드가 주로 활용하는 지렛대(레버리지) 투자가 더 큰 화를 부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헤지펀드는 통상 원금의 6~8배를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금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손실이 600만~800만 달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