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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미국 씨티그룹 세계경제 ‘빙하기’ 오나

천하한량 2007. 11. 28. 04:59
“투자자들에게 분명히 (이 금융위기를 헤쳐갈) 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지난 26일(현지시각) 밤. 미국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이 중대 발표를 하면서 고위 관계자가 한 코멘트다.

인구 약 120만명의 중동 국가인 아부다비의 국부(國富) 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에 주식 4.9%를 전환사채(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채권) 형식으로 약 75억 달러(6조97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는 것.

이 뉴스는 두 가지 점에서 충격적이다. 첫째 아부다비투자청이 만일 주식 전환권을 모두 행사하면 4.9%의 지분을 보유, 씨티그룹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주식을 보유해도 의결권은 행사하지 못하게 돼 있어 경영에 간섭을 받지는 않겠지만, 상징적 의미는 적지 않다. 특히 현 최대 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의 지분까지 합치면 중동계 자본이 씨티그룹 주식을 10% 가까이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둘째 전환사채의 금리가 연 11%에 달해 미국 최대 금융그룹의 자존심에 걸맞지 않게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신용 위기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얼마나 급했으면…” 하는 의구심이 함께 증폭된 것도 사실이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씨티그룹이 최대 4만5000명의 감원(減員)을 검토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가자 주가는 5년 만에 처음으로 장중 한때 3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올 들어서만 46% 폭락한 것이다.

씨티그룹은 직원 32만7000명에 자산 규모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2배에 이른다. 작년 당기 순이익은 215억 달러(20조원). 그런데 도대체 그 씨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씨티그룹은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게 확산되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공룡 씨티그룹의 굴욕, 그 원인은?

씨티그룹 등 거대 금융회사들은 2001년 이후 저금리와 부동산 경기 활황에 부응해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렸고, 한편으로는 CDO(부채담보부증권)와 같은 모기지 관련 채권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러나 미국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지자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됐고 은행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이코노미스트는 “문제는 글로벌 은행들이 서브프라임 쇼크에 따른 손실 규모를 정확히 예상하지 못했거나 애써 축소하는 잘못을 범해 손실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올 들어 씨티그룹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관련 부실로 입은 손실이 150억 달러(14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는 3분기(7~9월)에만 65억 달러를 상각(떼인 것으로 간주해 회계상 손실로 처리)했으며 연말까지 110억 달러의 자산을 추가로 상각할 전망이다. 이 같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찰스 프린스(Prince) 회장이 사퇴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다른 글로벌 은행들 사정도 비슷하다. 영국에 본사를 둔 HSBC는 26일 계열 투자회사 2곳에 350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주택담보대출 관련 상품이 부실화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던 회사들이다.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HSBC가 연말까지 120억 달러 모기지 관련 자산을 상각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등 다른 투자은행들도 이미 수십억달러의 자산을 상각했다.

◆‘씨티發 악재’ 한국 서민까지 위협

글로벌 은행들의 추락은 바다 건너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 곳곳에 자금줄 역할을 해온 글로벌 은행이 흔들리면서 국내 기업·은행들의 해외 자금 차입이 어려워지는 것도 한 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해식 위원은 “은행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대출금리가 올라가면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고 이미 600조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지고 있는 국민들의 부담 역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증시가 침체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우리 수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