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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과 2007년 비교해 보니

천하한량 2007. 11. 12. 15:57
#‘해외 동포도 바이코리아펀드를 산다’, ‘출범 한 달여 만에 3조원 돌파’…. 펀드 투자 열풍이 불었던 1999년 4월, 신문을 장식했던 헤드라인들이다. ‘바이코리아’는 당시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을 비롯, 현대그룹이 총력을 기울여 판매했던 인기 펀드. 적금을 깬 주부에서부터 시골에서 소 팔고 올라온 농부까지 물밀듯이 펀드로 밀려들었다.

#‘연변 아줌마도 인사이트 열풍’, ‘15일 만에 3조 돌파’….

2007년 11월. 펀드 광풍은 다시 한 번 불어닥쳤다. 투자자가 적금을 깨고 펀드를 사러 달려가는 모습이 마치 8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하다. 문제는 8년 전 펀드 열풍이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는 것.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은 2000년 이후 세계적으로 IT버블이 꺼지면서 1년 만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2000년 한 해 동안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 43%. 즉 원금의 반토막이 난 셈이다. 최근의 펀드 열풍은 8년 전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8년 전과 같은 허무한 종말이 닥칠 가능성은 없을까?
◆공통점= ‘대박의 꿈’에 단기간에 급격한 자금 유입

①단기간에 몰린 자금


무엇보다 단기간에 엄청난 돈이 펀드로 몰리는 점이 비슷하다. 1999년 한 해 동안 주식형 펀드에는 약 55조원이 몰렸다. 1년 동안 7배로 불어난 것이다. 최근 1년 동안에도 주식형 펀드에 8년 전과 비슷한 54조원이 몰렸다.

②쏠림 현상

1999년의 펀드 열풍은 ‘바이코리아’ 열풍이라고 할 만큼 특정 펀드 쏠림 현상이 심했다. ‘한국 경제를 구하자’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건 이 펀드는 13일 만에 1조원, 4개월 만에 10조원을 돌파했다. 이 펀드를 발매한 현대투신운용(현 푸르덴셜자산운용)은 순식간에 자산운용업계 3위에서 1위로 등극했다.

2007년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의 쏠림 현상이 극심하다. 10월 발매된 이 회사의 ‘인사이트펀드’는 15일 만에 3조원을 돌파했다. 이 회사의 펀드 수탁고는 최근 1년간 18조원 증가했다.

③대박의 꿈

평소 주식이나 펀드에 큰 관심이 없던 투자자들이 ‘대박의 꿈’ 하나로 몰려왔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는 몇몇 유행 상품이 촉발했다. 1998~99년에는 스팟펀드(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면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돈을 되돌려 주는 펀드)가 대유행했다. 10여일 만에 10~15%의 수익을 내자 투자자들은 대박의 꿈에 들떠 주식형 펀드로 몰렸다.

2007년엔 차이나펀드를 비롯한 해외 주식형펀드가 대박을 내며 새로운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최근 1년간 차이나펀드의 수익률은 평균 120%에 이른다. 국내 성장형 펀드도 61%를 거두었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연 50%를 돌파하는 펀드가 속출하자 고수익을 노린 투자자들의 목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차이점= 분산 투자로 위험이 다소 줄어

①투자대상 다변화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1999년과 지금의 펀드 열풍 사이에는 차이점도 많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투자 대상이 다양화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99년만 해도 주식형펀드라면 국내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선진국부터 중국·동남아·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투자 대상 국가가 늘어났고, 투자 대상 상품도 주식 외에 부동산·광물·선박·항공기까지 다양해졌다.

펀드평가회사 제로인 최상길 상무는 “분산 투자의 기회가 넓어져 잘 활용하면 투자 위험을 한층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②적립식 투자로 꾸준한 자금 유입

8년 전에 비해 자금 유입속도도 상대적으로 더디다. 1년간 늘어난 절대 자금 규모는 비슷하지만, 1999년엔 원래 펀드 규모가 적었기에 1년간 7.4배로 늘어난 셈이다. 올해는 83% 증가한 데 불과하다. 지난 2004년부터 적금을 붓듯이 매달 소액을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가 유행하면서 이번엔 펀드 자금이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들어온 것이 특징이다.

③펀드 운용의 과학화 진전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운용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예전엔 일부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감(感)에 의존해 운용하는 ‘대통령제’ 스타일이었다면, 요즘은 여러 펀드매니저가 팀제로 운용하고 종목 연구도 많이 하는 ‘내각제’로 볼 수 있다.

교보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펀드 투자 대상 다변화와 적립식 투자 등 펀드 시장이 선진화됐기 때문에 과거처럼 펀드가 급격히 환매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고물가·고유가·약달러 등 세계 경제 불안 요인이 많아 펀드로의 자금 유입 속도는 둔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