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미국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회장 출신인 한 선배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주식 도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자들은 ‘심판의 날’이 언제가 될지, 카드로 지은 집 같이 위태로운 미국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사건이 무엇인지도 알아 맞히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심판의 징후들은 하나의 거대 시스템을 이루며 점진적이고 뼈 아픈 결과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엔 거시경제학적인 요인과 미시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거시적인 요인은 단순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를 면밀히 관찰하던 몇몇은 부동산 부문의 문제일 뿐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는 최근 미국경제에서 주택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얕잡아 본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직접 투자와 리파이낸싱 모기지(refinancing mortgages)를 통한 대출금은 지난 6년간 미국 경제성장의 65~75%를 차지했다.
치솟는 주택 가격으로 미국인들은 자신의 임금 수준을 넘는 소비를 했다.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마이너스 혹은 0%로, 대공황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고금리 현상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서, 게임은 끝이 났다. 미국은 이제 4%라는 저축률을 기록하고 있다. 불붙었던 소비 심리는 약해지고 있고, 경기도 위축됐다. 미시적 요인은 훨씬 충격적이다. 2001~2003년 금리가 최저 수준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항상 시중엔 자금이 남아 돌았다. 투자 대신, 미국인들은 모기지 리파이낸싱과 소비 등 ‘쉬운 방식’으로 경기를 자극해 왔다.
빌린 돈이 투자로 이어질 때, 국가의 대차대조표는 더욱 탄탄해진다. 빌린 돈으로 휴가를 가거나 흥청망청 소비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인들이 이렇게 하도록 부추겼다. 대규모 소비 파티를 여는 데 일반 모기지로 힘이 부치자, 그는 변동금리 모기지를 장려했다.
흡혈귀 같은 대출 기관들은 한 술 더 떴다. 이들은 미지급이자를 원금에 가산하는 방식의 모기지를 개발해 냈다. 기일에 맞춰 이자를 내지 못하면 이를 원금에 더해 매달 부채가 늘어나도록 했다. 물론, 미래에 상환할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지만, 대출 기관들은 “걱정 말라”며 사람들을 꼬드겼다. 대출금보다 집값이 더 빠른 속도로 오를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모기지로 자금을 그러모을 수 있을 거라는 게 그 이유였다. 돈을 빌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위험에 발을 담갔고, 상황이 악화되자 곧 큰 수렁에 빠졌다.
세계화로 인해 미국의 모기지 문제는 곧 전 세계적인 여파를 던졌다. 이 첫 번째 피해자가 된 은행은 바로 영국의 주택담보대출은행인 노던락(Northern Rock)이다. 미국은 악성 모기지를 복잡한 금융 도구들 속에 감춰, 전 세계에 책임을 떠넘기는 데 성공했다. 너무나 깊숙이 감춰 아무도 이 악성 부채가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몰랐고, 그 누구도 이러한 위험을 감안해 가치를 평가할 수도 없게 했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장은 금세 얼어붙었다.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미국 재무부와 IMF는 긴급 융자가 불러올 수 있는 모럴 해저드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었다. 하지만 미국은 정작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긴급 융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긴급 융자를 통해 몇십 억 달러에 이르는 모기지를 떠안고, 금리를 내려 버렸다.
하지만 단기 금리 하락은 곧 모기지 시장과 더욱 관련성이 깊은 중기(medium-term) 금리를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금융 시장의 자금유동성을 위해 중앙은행이 모기지를 담보로 한 증권을 사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부는 증권을 사들일 때 조건을 내걸어, 금융 기관들이 옳지 못한 투자 결정을 내렸을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야 한다. 아니면, 또 다시 그 책임이 결국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은행의 자산운용가들이 무임승차하도록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흡혈귀 같은 대출기관들이 아니라, 이로 인한 피해자들이다. 모기지 비중이 주택 시가의 95%를 넘는 상황이라면, 계약 조건 변경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채무 부담을 지고 있는 개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길은 열어줘야 한다.
이번 사태는 미국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중 으뜸으로 중요한 교훈은 바로 서민을 약탈하는 대출 관행을 막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금융 부문 규제 수위를 높이는 것일 게다.
'▒ 경제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의 금리인하가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0) | 2007.11.03 |
---|---|
두바이유 사상 첫 85달러 넘어 (0) | 2007.11.03 |
지구촌 집값 꺼지는 버블 커지는 위기 (0) | 2007.11.03 |
'집의 몰락' 글로벌 경제 침체 오나 (0) | 2007.11.03 |
유가 상상하지 못할 수준까지 간다"-IEA (0) | 2007.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