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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집값 꺼지는 버블 커지는 위기

천하한량 2007. 11. 3. 05:24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Astana). 공항에서 자동차로 30여 분을 달려 신도시 개발구역에 진입하자 곳곳에 초현대식 빌딩과 아파트들이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에서 내려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자 크레인들과 덤프 트럭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작업 인부들도 보이지 않았다. 10층 정도까지 올라간 아파트 건물은 회색의 시멘트 골조와 검붉은 철제 빔만 드러낸 채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주변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대형 컨테이너 박스, 녹슨 철근 등 자재가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어 ‘유령 공사장’을 방불케 했다.

‘석유 부국’으로 고(高) 유가시대 초호황을 누려온 카자흐스탄은 한 달 전부터 갑자기 금리가 치솟으면서 주택 분양이 중단되고, 기존 주택가격도 10~20% 정도 급락했다. 공사를 중단한 아파트 공사현장도 속출하고 있다. 연초에 집을 구입한 갈리아(40) 씨는 “끝없이 치솟을 것 같던 집값이 갑자기 떨어지고 대출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유가로 호황을 누리면서 카자흐스탄은 1999년 불과 3000~4000달러면 구입할 수 있었던 아파트 가격이 최근 ㎡당 3000달러까지 치솟을 정도로 폭등했고 이에 따라 주택건설 붐이 일었다. 한국 주택업체들까지 앞다퉈 진출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유가로 쏟아지는 오일머니, 연간 10%대의 고도성장, 신규 주택의 부족에 근거한 ‘주택가격 불패론’은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주택가격 하락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밀려들었다.

전 세계적인 집값 상승 기조가 꺾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 값 급락에 의한 경기 침체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카자흐스탄뿐 아니라 유럽 진출의 전초 기지가 된 동유럽 국가들은 도요타·GM·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경제가 급성장했고, 부동산 가격도 급등을 거듭했다. 불가리아의 경우, 내 집을 마련하려면 30년치 월급을 모아야 할 정도로 주택가격이 치솟았다. 라트비아 리가 지역은 지난 2분기에만 집값이 37.7% 급등, 구도심은 독일의 베를린보다 집값이 비쌀 정도였다. 하지만 리가 지역은 지난 6월 집값이 3.5%나 떨어지면서 부동산 급락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단스크은행(Danske Bank)은 “최근 동유럽국가들이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던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면이 있다”며, “급격한 버블 붕괴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카자흐스탄과 동유럽의 집값 하락은 지구 반대편 미국의 집값 하락과 ‘서브프라임(subprime·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가 1차적인 원인이다. 서브프라임은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해주는 주택금융상품으로, 미국 주택가격이 급등할 때 ‘신용 불문(不問)’의 대출이 대거 이뤄졌지만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돌변하면서 원리금 연체 가구가 급증하고, 가압류를 당하는 주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 대출회사는 물론, 대출채권에 투자했던 금융기관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를 계기로,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자금관리를 강화하면서 동유럽과 구 소련 국가 은행들에 빌려 주던 자금을 대폭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대출 여력이 줄어든 카자흐스탄 국내 은행들이 대출을 중단하거나 대출금리를 10%대에서 20%대로 올리면서 부동산 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변두리 국가만 이런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99년 이후 평균 집값이 3배나 올랐던 스페인. 주택건설 붐으로 중개업체들이 난립했던 스페인 코스타 블랑카(Costa Blanca)지역에는 최근 문을 닫은 중개업소가 300여 개나 된다. 통계상 최근 3개월간 전국 평균 집값은 1.2% 하락에 그쳤지만 향후 집값 급락을 우려한 매물이 쏟아지면서 실제로는 20~30% 낮은 가격에만 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매매시장이 급랭했다.

스페인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를 계기로,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주택가격 급락 가능성’에 대한 불안심리가 휩쓸고 있다. 스페인은 ?가처분소득의 130%에 이를 정도의 높은 주택담보비율 ?90%에 이르는 변동 금리형 주택모기지 ?연간 수요량 20만 가구의 4배에 이르는 80만 가구가 작년에 건설될 정도의 과잉 공급 등이 주택시장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 바르셀로나대학 곤살로 베르나르도스(Gonzalo Bernardos) 교수는 “과잉공급과 지나치게 치솟은 집값으로 2009년까지 20% 정도는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수요에 비해 주택 공급이 부족, 집값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주택가격 불패론’이 만연했던 영국도 8월부터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더블린대학 모건 켈리 교수는 논문을 통해 “아일랜드의 주택가격은 향후 8년에 걸쳐 40~60%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들 나라와 달리, 중국·인도·스웨덴·뉴질랜드 등은 여전히 집값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고도 경제성장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중산층의 신규 수요 증가(중국·인도), 석유수출의 증가와 수출 호조(노르웨이·스웨덴) 등의 이유로 아직 집값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머지 않은 장래에 급락은 하지 않더라도 집값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들 나라들도 ?금리가 오름세인 데다 ?집값 상승기에 주택공급이 급증했고 ?집값 급등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정부가 세제·대출규제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부동산 호황이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