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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말 그대로 ’기름값 폭탄’ 앞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천하한량 2007. 10. 17. 15:00
  • 한국 경제가 말 그대로 ’기름값 폭탄’ 앞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국제유가가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선에 도달하며 ’초고유가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 하면서 회복 기조의 실물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유가 상승이 멈추지 않을 경우 내년 경기전망의 수정이 불가피해지는 것은 물론, 유류가격을 필두로 한 소비자 물가의 급등으로 서민생활도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연일 사상 최고..전세계 비상경보

    16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장중 배럴당 88.20달러로, 1983년 시장 개설 이래 처음 88달러선을 돌파한 데 이어 전날보다 1.48달러 뛴 87.61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싱가포르에서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역시 하루만에 2.02달러나 급등하며 배럴당 78.59달러에 거래됐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고속 성장과 투기자금의 유입 확산에서 비롯된 세계적 고유가 현상이 이미 여러 해 진행되기는 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상황이 단기간내 해소될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다.

    우선 이번 주 들어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는 유가 상승은 기본적으로 중동지역의 정정 불안에 기인한다.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을 겨냥해 그 근거지인 이라크 북부지역을 무력 공격할 방침을 굳히면서 세계 3대 석유 공급지역이자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을 지중해 연안에 공급하는 이 지역의 석유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진행된 아르메니아인 학살 문제로 미국과 외교적으로 불편한 관계가 되면서 미국측의 만류가 별 효과를 내지 못하자 이 지역의 긴장이 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배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돌발 요인이 아니더라도 석유수급 자체의 문제 역시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유가에 큰 부담이다.

    지난 10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내놓은 석유수요 전망에 따르면 4.4분기 세계 석유수요는 하루 평균 8천741만 배럴로 수요가 공급을 182만 배럴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자 백악관과 석유수출국기구(OPEC)까지 직접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이(유가)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면서 “(고유가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고 알-바드리 OPEC 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OPEC는 현 수준의 유가를 선호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 증시.서민생활에 충격

    유가 급등이 천장을 뚫자 그 영향은 가장 먼저 주식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WTI 가격의 사상 최고치 돌파 소식속에 뉴욕 증권거래소(NYMEX)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6일(현지시간) 전날보다 71.86포인트(0.51%) 내린 13,912.94로 밀려났고 17일 서울 증시의 코스피 지수는 약세로 개장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낙폭이 커져 오전 11시50분 현재 전날보다 42.99포인트(2.14%) 내린 1,962.77로 급락했다.

    동양종금증권 김주형 애널리스트는 “국제 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점과 중국 증시의 과열 우려, 17대 전국인민대표자 대회 이후 추가 긴축조치 전망 등이 영향을 끼쳤다”며 “당분간 조정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류가격을 매개로 전 산업분야에 확산될 물가 상승우려도 발등의 불이 됐다. 원유가 급등에 이어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휘발유 가격(옥탄가 92기준)은 16일 배럴당 90.04달러로, 90달러선을 돌파했다.

    통상 국내 정유사들이 국내 유류제품 가격 결정시 원유가 외에 국제 휘발유 제품가격을 더 크게 고려하고 있고 국제시장의 가격이 2주 정도의 시차를 두고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지난주 ℓ당 1천555원선을 기록한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이 조만간 1천600원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형태의 유가 상승이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도 예정된 수순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박사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소비자 물가는 1.7% 가량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 내년 경제에도 먹구름

    당장 초고유가 문제가 내년 경제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고 있지만 아직 연구기관들은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최근 유가 급등 요인 가운데 석유시장 이외의 요인이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 아직 향방과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박사는 “최근 유가 급등은 지정학적 요인이 커서 향후 어떻게 될 지는 속단하기 어렵다”며 “현 단계에서는 유가 상승이 내년도 성장 트렌드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 지난 9월 경제전망때 내년도 평균 유가를 67달러로 가정해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내년 평균 유가를 배럴당 73∼74달러로 가정하고 내년 성장률을 5%로 전망한 LG경제연구원도 아직은 수정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송태정 연구위원은 “당초 성장률이 5.0%를 넘을 것이라는 여건에도 불구하고 전망치를 보수적으로 낮춰 잡았다”며 “(유가로 인한) 성장률 전망치 조정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위원도 “내년 평균 유가를 배럴당 80달러선으로 전망했다”며 “내년 유가가 이 전망치를 웃돌 지 여부는 두고봐야 하며 전망치 수정은 내년 상반기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