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파도' 몰려온다

'인플레 파도' 몰려온다

유가 100弗 시대 눈앞… 원자재값 폭등세 지속
유로존 물가 억제선 돌파 "한국 내년엔 3%대 진입"

‘인플레 파도’가 거세게 몰려오고 있다.

국제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고, 곡물 비철금속 등 원자재 가격 급등세도 좀처럼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수년간 ‘저물가 호황’을 누려온 세계 각국은 물가 급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저물가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 추세라면 물가상승률이 3%대에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국제유가와 원자재의 고공행진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0%를 해외에 의존하는 국내경제는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위협받는 등 적지않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전세계적인 물가 상승은 각국의 금리인상 기조를 가속화시켜 국내 기업들의 금리부담 상승과 자금조달 차질, 가계소비 위축으로 인한 시장침체가 불가피해지는 등 일파만파의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전세계 인플레의 핵은 국제유가다. 17일 한국석유공사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월 평균 배럴당 51.75달러였던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16일 현재 78.59달러로 80달러에 육박했다. 연일 사상 최고치 기록 경신이다. 올 들어 상승폭이 50%를 넘는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87.61달러까지 치솟으며 배럴당 90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곡물, 비철금속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올 들어 폭등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밀(소맥)과 대두(콩) 가격은 연초 대비 각각 75%, 48% 급등했고,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전기동) 가격은 올 해 저점 대비 56% 치솟았다.

최근의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의 1차 진원지는 중국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이 원유는 물론이고 곡물, 원자재를 싹쓸이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면서 실물자산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도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터키가 세계 3대 유전지역인 이라크 북부 쿠르드지역에 대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유가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게 이제 물가 문제는 초미의 관심이 됐다. ‘디플레(저물가) 수출국’에서 ‘인플레 수출국’으로 급변하고 있는 중국은 식품 가격 상승 등으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0여년 만에 최대를 기록하는 등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다. 유로존 13개국의 물가 상승률도 8월 1.7%에서 9월 2.1%로 치솟으며 유럽중앙은행(ECB) 억제선인 2%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가공단계별 물가동향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의 선행 지표인 원재료 가격이 9월 한달간 5.7%나 치솟으며 2005년 6월(6.1%)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무려 13.3%나 됐다. 원화 강세(원ㆍ달러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입 물가까지 최근 1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차례의 금리 인상 조치에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시중 유동성도 부담이다.

아직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대 초중반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추세라면 내년에는 3%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여전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살얼음을 걷고 있는 판에, 인플레 압력까지 가세할 경우 가까스로 회복 국면에 접어든 우리 경제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