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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질투인가 망상인가…의처증-의부증

천하한량 2007. 10. 15. 23:22

사랑의 질투인가 망상인가…의처증-의부증

부부 100쌍중 5쌍꼴 발생…3∼6개월간 지속될땐 ‘환자’

‘사랑과 질투의 분출인가’ 아니면 ‘배우자 불륜에 대한 끊임없는 망상인가?’

부부 사이의 집안일로 치부되던 의처증·의부증이 가정폭력과 맞물리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의처증 증상을 보이던 40대 가장이 부인과 동반자살을 시도하거나, 부인을 때려 숨지게 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지난 설 연휴 동안에도 의처증 남편이 처가 식구들에게 엽총을 난사,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위험 수위에 이른 의처·의부증의 증상과 치료법 등을 알아본다.

◆ 급증하는 의처(부)증과 가정폭력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3000여건의 가정폭력 사례 중 20∼30%는 의처·의부증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생명의 위협을 느껴 복지시설에 수용된 사람도 98년 974명에서 2001년 3273명으로 대폭 늘었다(여성부 조사).

한양대의대 정신과 김광일 명예교수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 2003년 1월호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1년간 부부 폭력이 발생하는 비율은 30.9%. 이는 미국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중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하는 비율이 37.5%, 남편이 아내에게 받는 비율이 23.2%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TV 등의 영향으로 불륜이 미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인터넷 채팅 등으로 의심의 빌미를 제공하는 경우가 늘어 의처·의부증이 증가한다고 분석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상담 부부 100쌍 중 5쌍 정도가 이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추정한다.

◆ 불륜에 대한 망상, 오델로 증후군

의처·의부증은 망상장애의 일종이다. 망상이란 논리적인 설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이 머리속에 뿌리박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 중 의처·의부증은 일종의 질투형 망상장애로, 셰익스피어 작품 오델로의 주인공 증상과 유사하다고 해서 ‘오델로 증후군’ 혹은 ‘결혼 편집증후군’으로도 불린다. 일반적인 질투를 뛰어넘어 상습적으로 배우자의 가상 불륜 사실에 대한 증거를 찾아 상대를 압박하거나, 지독한 의심과 폭력 행동을 표출한다. 배우자가 외출을 못하게 하거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 조사하기도 한다.

용인정신병원 하지현 과장은 “의처·의부증은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배우자의 행동 하나를 의심하게 되면서 발병하는 일이 많다”며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의처·의부증은 남·녀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하지만, 35~55세 사이 남성에게 특히 많다. 환자는 주로 고학력·상류층인 경우가 많다. 또 나름대로 논리가 정연하고, 배우자의 부정에 대해 그럴 듯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폭력 등으로 분풀이를 마친 후에는 성행위를 요구하거나, 선물 공세를 하는 등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특징적인 증상 중의 하나. 이혼하면 증상이 없어지지만, 재혼하면 대개 다시 발병한다.

오동재 신경정신과 오 원장은 “정상적인 사람은 일시적으로 배우자를 의심하다가도 아니라는 증거를 들이대면 이를 받아들이지만 의처·의부증 환자는 이를 믿지 않고 오히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며 “구체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배우자 부정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생각·감정 등을 가진 상태가 3∼6개월 이상 지속될 때 진단을 내린다”고 말했다. 망상적 질투의 내용과 폭언·폭력 행동여부도 중요한 진단 기준이 된다.

◆ 치료는 가능한가

일부 정신과 의사는 ‘의처·의부증은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사망해야 낫는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쓴다.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유는 환자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병원에 데려오기가 어려우며, 데려 오더라도 의심이 많아서 치료에 소극적이거나 약물 투여를 거부하는 일이 잦다.

의사는 가족 및 부부 상담과 동시에, 망상증에 준해 향정신성 약물을 처방한다. 증상이 개선되면 약 처방량을 점점 줄이고 상담 등 정신치료를 한다. 정신치료는 환자가 불신과 열등감이 많다는 점을 감안, 비판이나 설득 또는 비위를 맞추는 일보다는 단호한 태도로 ‘그렇치 않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왜 그런 망상을 갖게 됐는지 환자가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한편 의처·의부증은 우울증·알콜중독·정신분열증 등 다른 정신과 질환으로도 유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처증·의부증에 잘 걸리는 유형

1. 상류층·고학력자·경제적 여유계층.
2. 논쟁적이고 잘 타협하지 않고, 작은 실수를 잊지 않는 성격.
3. 부모가 적대적인 가정에서 구박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

/ 의학전문 기자 docto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