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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s four in the morning,
- the end of December
I'm writing you now
- just to see
- if you're better
New York is cold,
- but I like
- where I'm living
There's music on Clinton Street
- all through the evening.
I hear that you're building
- your little house
- deep in the desert
You're living for nothing now,
- I hope you're keeping
- some kind of record.
Yes, and Jane came by
- with a lock of your hair
She said that you gave it to her That night that you planned
- to go clear
Did you ever go clear?
Ah, the last time we saw you
- you looked so much older
Your famous blue raincoat
- was torn at the shoulder
You'd been to the station
- to meet every train
And you came home
- without Lili Marlene
And you treated
- my woman
- to a flake of your life
And when she came back
- she was nobody's wife.
Well I see you there
- with the rose in your teeth
One more thin gypsy thief Well I see Jane's awake -- She sends her reg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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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And what can I tell you
- my brother, my killer
What can I possibly say? I guess that I miss you,
- I guess I forgive you
I'm glad
- you stood in my way.
If you ever come by here,
- for Jane or for me
Your enemy
- is sleeping,
- and his woman is free.
Yes, and thanks,
- for the trouble you took
- from her eyes
I thought
- it was there for good
- so I never tried.
And Jane came by
- with a lock of your hair
She said that you gave it to her That night that you planned
- to go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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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ncerely, L.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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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새벽 4시
- 12월의 마지막 날
- 난 지금 그저
- 당신 기분이 조금은 낳아졌는지 알고 싶어
-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야
- 뉴욕이란 추운 곳이지
- 하지만 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 맘에 들어
- 저녁 내내
- 클린턴 거리에서는 음악이 흐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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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당신이 사막 한 가운데에
- 당신이 살 작은 집을
- 짓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
- 당신은 지금 당신 멋대로 삶을 살고 있지만
- 난 당신이 뭔가 의미있는 삶을
- 살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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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제인이 들렀었지
- 한 줌의 당신 머리칼을 가져 왔었는데
- 당신이 줬다고 그러더군
- 그날 밤 당신은 당신의 결심을
- 굳히기로 했었지
- 그래 그 결심을 정말로 굳히기라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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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래 우리가 마지막으로 당신을 봤을 때
- 당신 너무 많이 늙었더군
- 당신이 즐겨 입던 푸른 레인코트는
- 어깨가 찢겨 있더구만
- 당신은 기차가 올 때마다
- 역에 다녀 오곤 했지
- 하지만 릴리 말린을 만나지도 못하고
- 집으로 돌아갔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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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당신은 나의 여인을
- 당신 인생에 있어 그저 한 조각
- 휴지처럼 생각했던거야
- 그 여인이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 그녀는 이제 어느 누구의 아내도 아닌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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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있는
- 당신 모습이 보이는군
- 또 한 사람의 배고픈 짚시 도둑의 모습이야
- 아, 제인이 잠에서 깨어났네
- 당신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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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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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뭐라고 안부의 말을 전할 수 있을까
- 나의 친구여, 나의 바람둥이여
-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난 당신이 보고 싶은지도 몰라
- 아님 당신을 용서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 아무튼 내 인생의 길목에
- 당신이 서 있으니 기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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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라도 당신이 제인이나 나를
- 보러 이 곳에 와준다면
- 그러면 당신의 미워하는 사람은
- 이미 잠들어 있고
- 당신(의 여인)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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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고마워
- 그녀 눈 속에 어려있던
- 근심거리를 사라지게 해주어서
- 난 언제까지나 그 근심거리가
- 사라지지 않을거라 생각했었지
- 그래서 아예 그렇게 해볼 생각도 안했던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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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제인이 들렀었지
- 한 줌의 당신 머리칼을 가져 왔었는데
- 당신이 줬다고 그러더군
- 그날 밤 당신은 당신의 결심을
- 굳히기로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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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당신 친구 레너드 코헨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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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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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mous Blue Rainco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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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슬 부슬 비가 오는 날이나 날씨가 꾸무럭한 날이면 커피 한 잔과 함께 옛 생각을 떠올리며 들으면 좋은, 하지만 곡의 느낌이 아주 느리고 쓸쓸하고 끈적끈적한 그런 곡이기에 많이 듣게 되면 중독성이 강한 분위기의 노래이다.
- 이 곡은 비와 분위기가 잘 맞는 그런 곡이지만 가사 내용은 자신과 딸(제인)을 버리고 떠난 여인에 대한 회한을, 편지 형식을 빌어 음울한 분위기로 읊조리듯 부르는 서글픈 내용이다. 막상 그 여인은 자기가 바라던 사랑도 구하지 못한 듯 ....
- 이 곡의 원곡은 우리나라에서 'I'm Your Man' 이란 곡으로 많이 알려졌던 레오나드 코헨의 1971년 발표 앨범 '사랑과 미움의 노래들' <Songs of Love and Hate> 이라는 앨범에 실렸던 노래인데 나중에 코헨의 백업싱어를 가끔 맡아 했던 제니퍼 원즈가 1986년 발매된 동명 앨범 <Famous Blue Raincoat>에 세 번째로 수록한 곡으로 원래는 Leonard Cohen의 원곡으로 유명하고 Jennifer Warnes 가 그녀의 독특한 컨트리 락으로 리메이크해 더 유명해진 노래이다. 평론가들은 제니퍼 원즈가 코헨의 문학적인 가사들을 너무나 잘 번역해 놓았다는 평을 했고 또한 이 씨디는 음향기기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기기들의 음향 테스트용으로 썼을만큼 훌륭하게 레코딩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 레오나드 코헨의 가사들이 대부분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여러 가지이고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어, 본 홈에서는 가사 속의 'You'와 'She'를 동일 인물로 보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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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onard Co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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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레너드 코헨은 비록 미국 빌보드차트 싱글 차트에 명함을 내민 적이 없지만 영미 뮤지션들이 일제히 '음악적 사부'로 추앙할 만큼 구미 음악계에서 절대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영향력은 닉 케이브, 존 케일, R.E.M. 등 후배와 동료 뮤지션들이 참여한 1991년 <I'm Your Man>과 돈 헨리, 엘튼 존 등이 나선 1995년 <Tower Of Song> 등 트리뷰트 앨범만도 두 차례였다는 것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내면탐구와 현실참여의 메시지를 특징적인 낮은 키(low key)의 묵직한 바리톤과 어쿠스틱 사운드로 전하는 그의 음악은 듣는 사람을 탁월한 시(詩) 세계로 안내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면서 널리 애청되었다. 언제나 잔뜩 힘 빼고 처진 듯 노래하면서 도리어 강한 메시지의 설득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크 브렐의 계승자' '로우 키의 밥 딜런'으로도 통했다. 많은 가수들이 다투어 그의 곡을 노래했다. 1966년 주디 콜린스(Judy Collins)는 그의 빼어난 '노래 시'인 'Suzanne'를 불렀으며 'Bird on the wire'는 팀 하딘(Tim Hardin), 애론 네빌(Aaron Neville) 등이 리메이크했다. 이 노래는 1990년 멜 깁슨과 골디 혼이 주연한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한때 그의 공연 팀 멤버였던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는 코헨의 레퍼토리인 'Famous blue raincoat'를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고, 2001년 드림웍스의 대박 영화 <슈렉>에서 호응을 얻은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의 'Hallelujah'도 코헨의 작품이었다. 국내 애청곡도 부지기수로 많다. 1968년에 발표된 첫 앨범에 수록된 'Suzanne' 'Sisters of mercy' 'So long, Marianne' 등이 잇따라 라디오전파를 탔으며 2집의 'Bird on the wire'와 특히 'Nancy'는 그를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1988년에 발표한 곡 'I'm your man'은 자가용 오너들마다 구입했을 만큼 폭발적으로 애청되었고, 동명의 앨범에 수록된 또 다른 곡 'Everybody knows'도 사랑받았다. 포크 가수 윤설하는 1991년 코헨의 곡 'Dance me to the end of love'를 '벙어리 바이올린'으로 번안해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1934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레너드 코헨은 1966년 소설 <아름다운 패자>(Beautiful Losers)를 출간, 애초 시인이자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가수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67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부터였고, 이듬해 첫 앨범인 동시에 지금도 가장 유명한 앨범인 <Songs Of Leonard Cohen>이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나왔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평소 시작(詩作)에서 표현된 낭만주의를 구체화하면서 구미 아티스트들에게 '밥 딜런과 또 다른' 언어의 충격을 던진다. 여기에는 종교적 상상력이 에로티시즘으로 나타난 곡 'Sisters of mercy', 절망감이 퍼진 'So long, Marianne', 신비주의로 채색된 'Master song' 그리고 코헨의 민감한 언어감수성이 드러난 'Suzanne'이 수록되었다. 이 곡들은 1971년 로버트 알트먼(Robert Altman)의 영화 <MaCabe And Mrs Miller>에 삽입되어 재평가를 받았다. 1969년의 앨범 <Songs From A Room>은 전작과 유사한 방식이었지만 염세적 존재론을 전한 'Bird on the wire', 폭력과 정치문제를 취급한 멋진 코러스의 'The partisan' 등 문제작을 수록했고 국내 팬들은 'Nancy'가 금지곡으로 묶였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에 신청엽서를 보내기를 되풀이했다. 이듬해 'Famous blue raincoat'가 수록된 <Songs Of Love And Hate>와 1974년에 내놓은 <New Skin For The Old Ceremony> 이후 코헨은 고뇌와 사색을 축적하는 그의 고유 방식인 '은둔'을 시작, 2년간이나 그리스 섬에 침잠했다. 하지만 그 앨범에 실린 곡들 'Chelsea hotel #2' 'Take this longing' 'Who by fire'는 라디오전파를 오랫동안 탔다. 라이브 앨범으로 돌아온 뒤 1977년에는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프로듀스로 록의 색깔이 물씬한 음반 <Death Of A Ladies Man>을 냈지만 반응은 아주 저조했다. 이후 1979년 <Recent Songs>와 1985년 <Various Positions> 등 10년간 겨우 2장의 앨범을 낼 만큼 과작(寡作)에 머물렀다. 이 앨범들은 초기 낮은 키의 어쿠스틱 사운드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였다. 1988년 자신이 프로듀스한 앨범 <I'm Your Man>은 중년과 자신의 뿌리를 사고하는 깊이를 드러내면서, 국내에서 절대적 인기를 모은 'I'm your man'을 비롯해 'Everybody knows' 'First we take Manhattans' 'Ain't no cure for love' 'Take this waltz' 그리고 'Tower of song' 등 전곡이 리퀘스트를 받았다. 이 앨범으로 그는 비평적 상업적 위치를 회복해, 당대 아티스트들로부터 재평가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1991년의 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헌정앨범 <I'm Your Man>이 발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92년의 앨범 <The Future>는 적어도 미국사회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수작 앨범으로, 타이틀곡은 '난 미래를 보아왔고, 형제여 그것은 살인이었지…'와 같은 메시지로 불안한 현실세계를 질타하고 'Anthem'은 새 세계에 대한 갈망을, 'Waiting for a miracle'은 변화에 대한 기대를 묘사했다. 하지만 'Democracy'에 의외로 미국을 찬양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을 비롯해 어빙 벌린(Irving Berlin)의 것을 리메이크한 'Always'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적이고 재래식 정서를 노출, 감상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한 점도 없지 않았다. 94년의 <Cohen Live> 이후 또 다시 오랫동안 수도승으로 침잠한 그는 2001년 백업 보컬로 활동해온 여성 샤론 로빈슨(Sharon Robinson)을 프로듀서로 한 앨범 <Ten New Songs>로 건재함을 알렸다. [ From Izm.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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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적인 노래 '릴리 말린'(Lili Marle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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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때 독일과 연합군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적, 아군 구별없이 양측 병사들이 총을 놓고 고향을 생각하며 함께 감상하였던 전설적인 아름다운 노래이다. 이 노래를 부른 마를렌 디트리히는 독일 여배우로서 히틀러에 반대하다 미국으로 망명했다.
- ~~~~~~~~~~~~~~~~~~~~~~ [리더스 다이제스트 1996년 2월호 올라온 글]
- 북아프리카 사막에 어둠이 깔리자 우리 대대의 전차들이 모여들어 둥글게 방어진을 치고 있었다. 나의 전우들은 라디오를 가운데 놓고 둘러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 가운데 하나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라디오에서 집합나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부드럽고 매혹적인 목소리의여자가 독일어로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들어본 가장 잊을 수 없는 멜로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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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의 정문앞에 서 있는 가로등 그녀는 아직 그 앞에 서 있네. ..... 나는 그 노랫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들 대부분이 그 뜻을 몰랐다. 우리는 독일군이 아니라 영국군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국 제8군의 병사들 즉 "사막의 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웬일인지 우리의 생각과 기억속에 깊이 스며드는 그 신비스런 목소리에 매혹되고 말았다.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와 대치하고 있던 독일군 병사들도똑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때는 1942년 봄이었고 양측 병사들은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노래속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국적이 다른 수많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여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릴리 마를린이다. 릴리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국경과 언어와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병사들의 애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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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의 이야기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시작된다.
- 베를린의 어느 안개낀 4월의 밤에 젊은 사관후보생이며 풋내기 시인인 한스 라이프가 막사 바깥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길 건너편의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가로등을 안개가 을씨년스럽게 휘감고 있었다. 라이프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 청과물가게 주인의 아리따운 딸의 품에안겨 있었다. 릴리라는 애칭을 가진 아가씨였다. 그가 꿈꾸듯이 릴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안개속의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 마를린의 모습이나타났다. 라이프가 어느 화랑에서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를린은 청록색의 눈을 가진 사랑스런 미인이었다. 마를린은 그때 부상당한 군인들을 간호해주기 위해 가까운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를린이 손을 흔들면서 인사말을 건넸을 때 마침 위병하사가 정문에 나타났다. 그래서 라이프는 인사에 답례를 보낼 수 없었다. 그는 마를린이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쓸쓸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막사로 돌아온 라이프는 침대에 누워서 릴리와 마를린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다가, 문득 영감이 떠올라서 두 아가씨의 이름을 한데 묶은 여인을 소재로 시를 지었다. 그는 그 시에다 "젊은 초병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다. 병영 바깥 가로등 불빛 아래 서있는 한 병사가 자기 애인 릴리 마를린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때 집합나팔이 울린다. 병사는 릴리와 함께 더 있고 싶지만 나팔소리가 다시 울린다. 그는 애인 곁을 떠나면서 생각한다. '만약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면 다른 남자가 나의 애인과 함께 저 가로등 밑에 서 있게 될까? 아니면 나의 영혼이 와서 다시 한번 릴리를 포옹할까? 전처럼. 릴리 마를린?' 러시아 전선으로 배속된 라이프는 릴리도 마를린도 다시 보지 못했다. 20여년이 흐른 후 자신의 시집을 펴내면서 라이프는 "젊은 초병의 노래"를 그 속에 넣었다. 베를린에 살던 작곡가 노르베르트 슐체가 그 시를 읽고 곡을 붙여서 "릴리 마를린"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어 테너가수인 얀 바에른에게 주었다. 그러나 얀은 "너무 단조롭다"는 이유로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슐체는 "릴리 마를린"을 랄레 안데르센 이라는 이름의 한 나이트클럽 가수에게 주었다. 랄레는 그 노래의 애수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육감적이고도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인상적인 금발의 여가수였다. 1939년에 엘렉트롤라社가 그 노래를 레코드로 제작했다. 그때는 이미 2차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에 "릴리 마를린"은 700장밖에는 팔리지 않았다. 이때 나온 레코드는 오늘날 값이 한 장에 300달러나 나간다. 그 노래는 그뒤 2년간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독일이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뒤 독일군은 발칸반도와 북아프리카 주둔군을 위한 방송인, "라디오 베오그라드"를 개국했다. 이 방송국의 국장은 방송에 쓸 레코드를찾았다. 그때 한 병사가 "라디오 빈"방송국 건물의 지하실에서 먼지에 덮인 레코드들을 찾아내었는데, 그 가운데 안데르센이 취입한 "릴리 마를린"도 끼어 있었다. 그래서 그 노래는 1941년 8월 18일 저녁에 처음으로 방송전파를 타게 되었다. 당시 독일군의 아프리카군단의 전차부대 장교로 있었던 필자의 처남은 그 때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난 넋을 잃을 정도로 매혹되었지요." 그가 나중에 내게 한 말이다. 다른 수많은 장병들도 마찬가지로 그 노래에 매혹되었다. 베오그라드 방송국에 그 노래를 다시 들려달라는 청취자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그 노래는 곧 후방인 독일 국내에서도 인기곡이 되어 베를린 방송에도 정규적으로 방송되었다. 한 독일인 어머니는 작곡자인 슐체에게 이런 편지를보냈다. "나의 아들은 전사했습니다. 그애는 마지막 보낸 편지에서 '릴리 마를린' 에 관한 얘기를 썼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들을 생각한답니다." 독일 아프리카군단의 사령관인 에르빈 롬멜장군은 이 노래를 자기 부하들을 결속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는 매일 밤 "릴리"를 방송하라고 지시했다. 매일밤 9시 55분에 나가는 이 노래는 "라디오 베오그라드"의 방송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전쟁이 거의 끝날 때까지 이 시간이 되면 수많은 병사들이 라디오에 귀를 귀울였다. 칼튼 잭슨은 자신의 저서 [위대한 릴리]에서 나치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릴리'를 싫어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영국을 폭격하라" 같은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과장되고 힘찬 노래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안데르센이 취입한 레코드의 원본을 파기해 버리라고 명령했다. 1943년 1월 스탈린그라드가 소련군에게 탈환되고, 30만명의 독일군이 전멸한 후 괴벨스는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하면서 "이 노래 속에는 죽음이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괴벨스가 알지 못했던 제 2의 원판이 중립국인 스위스로 보내졌다.그래서 괴벨스가 이 노래의 방송을 금지시킨지 사흘만에 "릴리"는 다시 전파를 타게 되었다. 괴벨스는 이 노래를 잠재울 수 없게 되자 이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는 안데르센을 감시하도록 하고, 그 여자가 유태인의 친구라는소문을 퍼뜨렸다. 안데르센에게는 실제로 친한 유태인 친구들이 있었다. 그 여가수는 스위스에 있는 한 유태인 친구에게 독일을 탈출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안데르센은 군부대 위문공연차 이탈리아로 갔다가 공연이 끝난 후 기차로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밀라노역 플랫폼에서 2명의 게슈타포 요원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녀는 베를린으로 압송되어 왔다. 한 나치관리가 그녀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을 보여주었다. 게슈타포가 중간에서 편지를 가로챈 것이었다. 게슈타포는 그녀에게 스파이 혐의를 씌워 가택연금시켰고 강제노동 수용소에 보내버릴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영국 정보기관에서 안데르센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BBC방송이 나치가 독일의 한 인기가수를 강제수용소로 보냈다는 뉴스를 방송했다. 이같은 영국의 개입이 안데르센의 목숨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었던것 같다. 게슈타포는 그녀에게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안데르센은 그 틈을 타서 몰래 북해의 한 섬에 있는 자기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언젠가 쓴 것처럼 "노래는 국경을 넘는다." 안데르센이 부른 이 독일 노래를 아프리카 사막에서 롬멜의 군대와 싸우는 영국군 병사들이 애창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군의 고급장교들은 괴벨스와 마찬가지로 이 노래를 싫어했다. 영국군 병사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특히 가사가 독일어로 되어있는 것이 그들은 못마땅했다. 칼튼 잭슨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영국에 돌아온 제 8군의 몇몇 제대장병들이 어느날 밤 악보출판업자인 J.J 필립스가 자주 드나드는 술집에서 "릴리 마를린"을 소리높여 노래했다고 한다. 필립스가 그들에게 경찰관이 보면 독일 스파이로 오인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면 영어로 된 노랬말을 써주시구려!" 한 병사가 소리쳤다. 필립스는 작사자인 토미 코너의 도움을 얻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로등 아래 서 있는 나의 릴리"란 영어 노래말이 나오게 되었다. 영어 노랫말에서는 안개와, 릴리에게 키스하려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은 빼버렸다. 새로운 릴리는 싸움터에 나간 애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가씨로 변했다. 영어로 된 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히트했다. 이 노래의 악보는 6개월만에50만장이나 팔렸다. 이 노래의 가사는 집을 떠나 먼 곳에 가있는 병사의 두려움과 애인의 품에 다시 안기고 싶어하는 열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에디트 파이프는 프랑스 군인들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었고, 마를린 디트리히는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미국의 제 5군 장병들은 "릴리"를 노래하면서 피렌체로 입성했다. 라이프의 노랫말은 40개가 넘는 언어로 번안되었다. 이탈리아판 노랫말은 "내 가슴에 장미 한송이를 꽂아줘요"로 시작된다. 프랑스의 가사는 "어두운 밤에 우리의 몸은 함께 뒤엉킨다"로 시작된다. 독일군 포로로부터 "릴리"를 배운 소련군인들은 한층 더 짜릿한 노래말을 만들어냈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되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영화를 보러간 사람들은 10편이 넘는 극영화와 기록영화에서 변형된 "릴리"를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1961년에 나온 고전적 영화인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는 마를린 디트리히가 스펜서 트레이시와 폐허가 된 뉘른베르크 시내를 걸어갈 때 술집에서 "릴리 마를린"이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 그리고 월남전에 참전한 미군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노병들이 모여서 고독과 흘러간 사랑을 노래할 때면 언제나 이 노래가 등장한다. 이 노래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을까? 랄레 안데르센의 대답은 간결했다. "바람이 왜 폭풍이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나요?" 전쟁의 잔인하고 추악한 불협화음 속에서 "릴리 마를린"은 언제나 달콤하고 부드러운 선율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 From Hanbitkore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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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 nothing : 무료로, 거저 (free of charge). 아무 이유 없이, 까닭 없이,
- 헛되이 (in vain).
- - I'll do it for nothing. 거저 해드리겠소.
- laugh for nothing 까닭없이 웃다. - He spent much money for nothing. 그는 헛되이 많은 돈을 썼다. - It was not for nothing that he read Plato.
- 그는 플라톤을 아무 이유 없이 읽은 것은 아니었다.
- *lock : (머리의) 타래, (한 타래의) 늘어뜨린 머리, 헝클어진 머리; (~s)
- (양털목화의) 한 줌; (짚의) 한 단 [다발] , 한 덩어리.
- a lock of hair over ones right eye 오른쪽 눈 위에 드리운 머리.
- *Lili Marlene : 고향에 애인을 남겨둔 채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슬픔을 그린 이 노래는
- 독일군은 물론, 연합군 병사에게도 전해져 적과 동지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이
- 애창하기도 했다. ( 위 해설 참조 )
- *flake : (덩어리에서 벗겨지는) 얇은 조각, 파편, 단편; (~s) (어육(魚肉) 등의) 층.
- cereal flakes 엷은 조각 모양의 곡물 식품 (콘플레이크 등). - flakes of stone 돌의 파편. - fall [come] off in flakes 엷은 조각 모양으로 벗겨져 떨어지다.
- *for good : (=forever) 영원히,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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