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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Ho L'eta ..♪.. (5) Gigliola Cinquetti

천하한량 2007. 7. 27. 02:13
Non Ho L'età
 
나이도 어린데
 
 - Sung by Gigliola Cinquetti
 
Non ho l'età,
non ho l'età per amarti
Non ho l'età per uscire sola con te
E non avrei,
non avrei nulla di dirti
Perchè tu sai molte più cose di me
 
Lascia ch'io viva
un amore romantico
Nell'atesa che venga quel giorno
Ma ora no
 
**
Non ho l'età, non ho l'età
Per amarti, non ho l'età
Per uscire sola con te
Se tu vorrai,
se tu vorrai aspettarmi
Quel giorno avrai
tutto il mio amore per te
 
Lascia ch'io viva
un amore romantico
Nell'atesa che venga quel giorno
Ma ora no

** Repeat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요
그대를 사랑할 나이가 아니랍니다.
그대와 둘이서 외출할 나이가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어요.
그대에게 얘기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잖아요.
 
낭만적인 사랑 속에서
살고 싶어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요
오늘은 안 돼요,
 
**
저는 아직 나이가 어리답니다.
그대를 사랑할 나이가 아닙니다.
그대와 둘이서 외출할 나이가 아닙니다.
만약 그대가 기다려 준다면
만약 그대가 저를 기다려 준다면
그 날, 저의 모든 사랑을
그대에게 바치겠어요.
 
낭만적인 사랑 속에서
살고 싶어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요
오늘은 안 돼요,
 
** 반복
 
[ From Windbird.pe.kr ]
 
 NOTES... 
 
 
 
※ 이탈리아 산 레모 가요제
    (Festival di San Remo)
    1964년도 대상 수상곡
 
 
::::  Gigliola Cinquetti  ::::
 
1947년 12월 20일 이탈리아, 베로나 출생
 
5살 때, Gigliola 는 지방 연극 공연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Latin Shirley Temple' 의 지망생이었다. 그러다 전국 예능 경연대회에서 4,500명의 다른출연자들을 제치고 우승함으로서 그녀는 십대 초반에 이탈리아 텔레비젼 방송국에서 고정 출연자가 되었다.
 그녀가 학교를 졸업하던 해, 산레모 가요제(San Remo Festival)와 1964년의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에서 'Non Ho L'Eta Per Amarti' 라는 곡으로 대상을 차지하는데 이 곡은 영어로는 'I'm Not Old Enough To Love You' 로 비슷하게 번역이 된다. 판매고로는 2백만장이 팔려나갔으며 대부분의 유럽 챠트에서 정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싱글이 17위까지 올라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이 곡은 'Vera Lynn'에 의해서 'This Is My Prayer' 라는 영어가사 본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건축가가 되려는 야망을 버리고 시작한 , Cinquetti 의 활동 경력은 후에 또한번 제 19회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에 참가하지만 아바의 'Waterloo' 에 대상을 빼앗기고 2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Go'(Before You Break My Heart)로 번역이 된 Gigliola 의 노래는 그 해 후반기에 연속적으로 영국 챠트 탑-10 에 머물러 있었다. 1990년에는 유러비젼 송 컨테스트를 공동 주최하기도 하였다.
 
 
:::  유러비젼 송 컨테스트  :::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가 처음 개최되었던 해는 1956년이었다.
제1회 대회는 단순히 유로비젼 방송망에 가입된 나라들의 가수가 참가..축제형식의 가요제를 한번 시도해본다는 의도여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었고 스위스 루가노시에서 개최가 확정되자 겨우 9개국만 참가를 했을 정도였었다. 어쨋든 콘테스트형식의 가요제로 출발했기 때문에 주최국인 스위스 가수 Lys Assia가 Refrains란 노래로 우승을 차지 했었다.
   4회까지는 계속 관심을 끌지 못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1960년 제5회 런던 대회에서 프랑스 대표인 작끄린느 프랑소아의 참가곡 Tom Pillibi가 우승을 차지.. 이노래가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비로서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9회인 1964년에는 질리오라 친케티가 그해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을 했던 Non Ho l'Eta (나이도 어린데)로 다시 유로비젼에 참가.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10회인 1965년에는 룩셈브루크 대표로 참가했던 프랑스 걀이 Poupee de Cire, Poupee de Son(꿈꾸는 샹송인형)을 그랑프리. 이노래는 한국에도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는 우리나라 팝 팬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었다. 1966년부터 동구권 가수들도 유로비젼에 참가하기 시작, 4억이 넘는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세계최대규모의 가요제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해에는 오스트리아의 싱어 송라이터 우도 율겐스가 자작곡으로 참가한 Merci Cherie에 대상이 돌아갔다. 우도 율겐스는 이미 Walk Away의 작곡가로 세계 팝 계에 이름이 알려져 있어 멜시 셰리는 우승과 함께 세계적인 히트송으로 클로즈업 되었다.
   67년에는 영국의 샌디 쇼가 Puppet on A String(줄위의 꼭두각시)로 68년에는 막강한 클리프 리챠드의 'Congratulaion'을 누르고 스페인 가수 마시엘이 'La La La'로 우승을 차지하는 일대 역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역전 드라마로 유로비젼 송콘테스트는 세계 최고의 인기가요제로 완젼이 자리를 굳히게 된다.
   1969년인 제 14회는 또다른 이변이 일어났다. 무려 4곡이 동점이 되어 4곡이 동률 우승곡이 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스페인 가수 살로메의 Vivo Cantando(노래하리라), 영국가수 Lulu의 Boom Bang-A-Bang, 화란가수 레니 쿨의 De Troubadour(음류시인) 보카라의 Un Jour Un Enfant(어느날 한아이)가 사이좋게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불참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가 지나치게 프랑스어권가 영어권 가수만이 우승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불만이었다. 결국 이들의 불참으로 15개국만 참가한 초라한 대회가 되고 말았다. 이해에는 아일랜드 가수 다나가 All Kind Of Everything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 From Korpo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