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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xer ..♪.. (10) Simon & Garfunkel

천하한량 2007. 7. 23. 17:19
The Boxer
 
권투 선수 
 
 - Sung by Simon & Garfunkel
 
I am just a poor boy,
though my story's seldom told
I have squandered my resistance
for a pocketful of mumbles,
such are promises
All lies and jest,
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hmmmm....mmmm......)

When I left
my home and my family,
I was no more than a boy
In the company of strangers.....
In the quiet of the railway station,
runnin' scared
Laying low,
seeking out the poorer quarters,
where the ragged people go
Looking for the places
only they would know

(Li la li... li la la la li la li)
(lie la lie__ lie lie_ la lie__ Lie la lie)
(La la la la li...)
 
Asking only workman's wages,
I come looking for a job,
but I get no offers.....
Just a come-on from the whores
on Seventh Avenue
I do declare,
there were times
when I was so lonesome
I took some comfort there
(li la la, la, la la)
 
~ ~ ~ ~ ~

(Li la li... li la la la li la li)
(Li la li... li la la la li la li)
(La la la la li...)
 
And I'm laying out to
my winter clothes,
wishing I was gone,
goin' home
Where the New York city winters
aren't bleedin' me,
leadin' me going home

In the clearing
stands a boxer,
and a fighter by his trade
And he carries the reminders
of every glove
that laid him down or cut him
'Til he cried out
in his anger and his shame
"I am leaving,
 I am leaving,"
but the fighter still remains
(hmmmm....)
 
**
(Li la li... li la la la li la li)
(Li la li... li la la la li la li)
(La la la la li...)
(Li la la la li la li)
(Li la li... li la la la li la li)
(La la la la li...)
(Li la la la li la li)
(Li la li... li la la la li la li)
(La la la la li...) 
 
** Repeat Several times
 
~ ~ ~ ~ ~
 
 
내 얘기는 비록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저 가난한 한 소년일뿐이라네
마치 진실된 약속처럼 들리는
수많은 허황된 약속의 말을 위해
열심히 주먹을 날렸지
그 모두는 거짓과 날 조롱하는 말이었어
그런데도 여전히 나같은 인간은
듣기 좋은 말만 귀담아 듣고
나머지 말은 무시해버리지
(흠흐흐흠...  흠흠.....)
 
내가 내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떠났을 때
난 수많은 낯선 사람들 속에 있는
그저 작은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았어
어떤 땐 기차 역의 적막함 속에서
겁에 질려 도망가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채
빈민들이 사는 거리들을 기웃거리기도 했지
넝마를 걸친 사람들이
그들만이 알고 있는
거리들을 찾아 다니며 가곤 하는 그런 곳 말야
 
(라이라이라... 라일랄라 랄라라)
(라이라라이..라이라이..랄라이..라이랄라이)
(라라라라 라이...)
 
그저 막노동자의 임금 정도만을 요구하며
일자리를 찾아 헤멨지만,
아무데도 일자리를 주겠다는 곳은 없더군
오로지 7번가에 사는
창녀들만이 '오빠, 놀다가'라고 반겨줄 뿐
이제와서 얘기지만
나도 한 땐 너무도 외로워
힘들었을 땐
그런 곳에서 안락을 찾기도 했었지.
(라라 라라라라)
 
~ ~ ~ ~ ~
 
(라이라이라... 라일랄라 랄라라)
(라이라이라... 라일랄라 랄라라)
(라라라라 라이...)
 
이제 내 겨울 옷가지들을
꺼내어 챙겨 넣고서
이 지겨운 곳을 떠나 고향으로
떠났으면 하는 바램도 해보았지
이 차가운 뉴욕을 벗어나서
더 이상 피흘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의 고향으로 데려다줬음 하고 말이야
 
텅 빈 링의 한 복판에
그 직업이 싸움꾼인
한 권투 선수가 서 있네
그는 분노와 수치스러움 속에서
자신이 울부짖을 때까지
자신을 쓰러뜨리고 상처를 내었던
모든 순간의 권투장갑에 대한
기억들을 가지고 다니지
"난 이제 떠날거야,
 그만둘거야" 라고 외쳐 보지만
그 싸움꾼은 여전히 링위에 남아있네
(흠흐흠....)
 
**
(라이라이라... 라일랄라 랄라라)
(라이라이라... 라일랄라 랄라라)
(라라라라 라이...)
(라이라라라이...)
(라이라라라이라이라이...)
(라이라라라이...)
(라이라라라이라이라이...)
(라이라이라... 라일랄라 랄라라)
(라라라라 라이...)
 
** 수회 반복
 
~ ~ ~ ~ ~
 
 
 NOTES... 
 
 
 
::::  The Boxer  ::::
 
   금세기 최고의 아름다운 화음을 자랑했던 미국 출신의 포크 듀오 사이먼과 가펑클의 1969년 히트작으로 1969년 차트 7위까지 올랐던 노래. 가난한 복서의 삶을 그린 이 노래는 Sound Of Silence, Bridge Over Troubled Water 등과 함께 국내에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는 곡으로 아직까지 스테디 레퍼토리에 빼놓을 수 없는 이 곡은 그들을 당대의 최고 듀오로 이끄는데 지대한 공로를 한 작품중의 하나이다.
< 작품배경 >
   1960년 대에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던 쿠바출신 권투선수 'Benny Perat'는 어느날 시합 도중 불의의 일격을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
- 이 사건은 당시 인기절정의 스포츠였던 권투 경기의 위험성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여러가지 어려운 직업에 종사하며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는 New York을 비롯한 대도시 빈민계층의 처절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 한 기자의 Interview에 응하면서 'Paul Sim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노래의 소재를 구하기 위해 때때로 멍하니 New York 시의 한쪽 구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곤 합니다. 그들의 다양한 생활 저변에 깔려있는 행복, 불행, 기쁨, 슬픔... 이런 것들을 노래에 담아 보려하지요."
 
 
:::::  Simon & Garfunkel  :::::
 
    1960년대 초반에 미국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훠크 뮤직 붐은 미국의 팝 뮤직의 진로를 확고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었다. 이러한 훠크 뮤직 붐의 결과로 많은 훠크 가수가 생겨났으며, 그들의 명성은 잦은 음악 방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높기만 했다. 밥 딜런(Bob Dylen),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 존 바에즈(Joan Baez), 조니 미셀(Joni Mitchell) 등이 당시부터 훠크 뮤직을 주도해 온 뮤지션으로 손 꼽을 수 있지만, 대중적으로 명성을 쌓고,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듀오로 평가되는 사이몬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활동에 있어서 만큼은 위에 열거한 어떤 훠크 뮤지션들보다도 두드러진 활동으로 많은 팬들을 흥분케 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1942년 10월 13일생인 폴 사이몬과 1942년 11월 5일생인 아트 가펑클은 미국의 뉴우저지 태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면서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기타를 익힌 인물들이다. 이들이 뉴욕의 퀸즈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뛰어난 음악 실력을 보여, 주위의 동창생들과 교사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후 이 두사람은 톰 앤 제리(Tom & Jerry)라는 이름으로 학교 축제나 파티 등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작곡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곡들 중에 <Hey! School Girl>이란 싱글은 크게 당시 히트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이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해 전공을 달리했는데, 폴 사이먼은 영국으로 건너가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아프 가펑클은 콜럼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서로 진로를 달리하고 학업에 열중하던 이 두 사람은 1964년에 다시 만나 CBS 컬럼비아 레코드사를 통해, 정식 데뷰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Wednesday Morning 3 A.M.」을 발표했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인 <Wednesday Morning 3 A.M.>이 어느 정도 호응을 불러일으키자 두번째 앨범인 「Sound Of Silence」을 발표하고부터는 이 두 사람은 완전한 성공을 볼 수 있었다. 이 앨범에서 <I Am A Rock>, <Homewar Bound>, <Sound Of Silence> 등은 곡들이 챠트를 누비기 시작해 황금의 듀오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66년 3월에는 세번째 앨범 「Parsley, Sage, Rosmary And Thyme」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서도 <Scarborough Fair>가 히트되어, 후에 영화 『졸업』에 삽입되어 더욱 사랑을 받게했던 곡이며, <Mrs Robinson>은 1968년에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해의 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와같은 이 두사람의 히트 대열은 여기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더욱 인기를 높혀만 갔는데, 1968년에는 네번째 앨범 「Bookends」를 발표했으며, 1969년에는 싱글 <The Boxer>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에는 팝의 고전으로 불리우는 앨범인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발표하고는 이들은 해체되었는데, 이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은 1971년에 제13회 그래미상에서 6개 부문의 상을 획득했는가하면 앨범이 발매된지 6개월만에 8백만장 이상의 판매력을 보여 당시 기적적인 판매로 기록화 되기도 했다. 이들은 해산 후에도 각자가 솔로 활동을 활발히 벌였는데 폴 사이먼은 자마이카의 리듬을 도입한 앨범 「Paul Simon」을 시작해서 「There Goes Rhymin' Simon」 등을 발표해,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 Yard>, <Kodachrome>, <Love Me Like A Rock> 등의 히트 곡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아트 가펑클은 「Angel Clare」과 라이브 앨범인 「Live Rhymin'」, 「Breakaway」를 발표하고, <All I Know>, <I Shall Sing>, <I only Have Eyes For You> 같은 다수의 히트 싱글로 명성을 더했다. 이러한 개인적인 솔로 활동을 벌여오던 이 두 사람은 1981년 9월에 뉴욕의 맨하탄에 소재한 센트럴 파크에서 후리 콘서트를 열어, 40여만 팬들의 환호와 전 세계의 팝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는데, 이 라이브 실황 앨범인 「The Concert In Centeral Park」는 순식간에 골드 레코드로 기록해, 그들의 인기도를 짐작케 했었다.
 [ From Samhomusic.com ]
 
 
::::  포크 듀오의 전설  ::::
 
    '1957년 톰과 제리(Tom&Jerry)라는 이름의 듀오가 'Hey schoolgirl(49위)'로 미국차트에 얼굴을 내민다. 이들이 훗날 20세기 최고의 듀오로 평가받는 폴 사이먼(Paul Simon)과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이었다.
   당시 둘은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친구사이였고 이들의 음악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듀오 에벌리 브러더스(Everly Brothers)의 스타일을 유지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패로 활동을 포기하게 되고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 대학에 입학하면서 톰과 제리는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된다.
   이후로도 폴 사이먼은 음악계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며, 60년대 초반까지 포크음악의 절대적 세례자이 된다. 결국 1964년 포크 록을 표방하며 톰과 제리가 아닌 사이먼 앤 가펑클로 재결합을 이룬 뒤 실패한 데뷔작 <Wednesday Morning 3 A.M.>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과는 다른 면을 보여준 앨범으로 포크의 리바이벌이라 불릴 정도로 트래디셔널이나 커버 곡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지만 폴 사이먼이 송라이터로 본격적인 가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앨범의 실패가 또다시 둘의 이별을 고하게 만들었고 폴은 영국으로 건너가 독자적인 음악활동을 한다.
   여기서 끝날 뻔한 이들의 만남은 데뷔앨범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통 윌슨의 혁혁한 전공으로 인해 화려함을 꽃 피우게 된다. 톰 윌슨은 데뷔앨범 수록곡 'The sounds of silence'를 사이먼과 가펑클 '알리지 않은 채' 일렉트릭 사운드로 둔갑시켜 1966년초 차트 정상 등극을 이뤄냈다. 국내에서도 60-70년대 내내 애청되면서 '3천만의 팝'이 된 이 곡은 당시 차트에서 비틀스와 번갈아 가며 1위 자리 다툼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폴과 아트는 다시 결합을 하게 되고 이들의 음악은 마침내 정통 통기타 포크에서 '포크록'으로 재무장된다. 1966년부터 이듬해까지 'I am a rock(3위)', 'Homeward bound(5위)', 나중 뱅글스의 리메이크로 유명한 'A hazy shade of winter(13위)'등의 일련의 히트곡들을 쏟아내며 단숨에 팝계의 주류로 부상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우선 데뷔앨범부터 <Parsley, Sage, Rosemary & Thyme>까지 3장의 앨범이 차례로 골드 이상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를 기반 삼아 1968년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졸업>(The Graduate)의 사운드 트랙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이먼 & 가펑클의 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이 앨범은 폴 사이먼이 대다수의 곡을 썼고 참여한 아티스트는 사이먼 & 가펑클외에 연주자 데이브 그루신뿐이었다.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앨범의 인기도 치솟아 차트 정상에 9주간을 머물렀고 판매고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들의 두 번째 싱글차트 1위곡 'Mrs. Robinson'이 이때 탄생을 했으며 이들에게 첫 번째 그래미상 트로피도 안겨주었다. 달콤한 'Scarborough fair/Canticle(11위)'가 후속으로 인기를 얻었다. 앞 곡은 국내에서 '스카보로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공전 리에 애청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Parsley, Sage, Rosemary & Thyme>, <Bridge Over Troubled Water>과 더불어 이들의 3대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앨범 <Bookends>가 발매되었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던 이 앨범은 'Mrs. Robinson'과 'A hazy shade of winter'같은 기존의 히트작 외에도 'America', 'At the zoo(16위)', 'fakin it(23위)', 'Old friends' 등이 동시다발로 주목받았다.
   높아져만 가는 인기에 비례하여 둘의 사이에 균열의 조짐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사이먼이 거의 대부분의 곡들을 썼음에 비하여 보컬부분에서 발군이었던 가펑클은 상대적인 열등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0년 이들의 최고 수작으로 손꼽히는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끝으로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앨범 수록곡중 'The boxer'가 1969년에 발표되어 7위까지 오르면서 대박을 예고했는데 앨범이 발매되자 수주만에 차트 정상에 뛰어올라 무려 10주간을 머무르며 현재까지 미국서만 8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타이틀곡도 싱글차트 정상에 6주간 등극했다. 'Cecilia(4위)', 그리고 유난히도 한국에서 사랑 받았던 'El condor pasa(If I could)(18위)'는 후속타였고 13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본상 3개 부문을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그때까지 그래미상 다관왕 신기록).
   이별을 고한 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폴 사이먼은 1972년 솔로 데뷔앨범을 시작으로 2000년까지 꾸준한 창작활동을 해나가며 지속적으로 활동하고있으며 그중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와 <Graceland> 같은 앨범은 그래미 앨범상을 수상한 작품들이다.
   반면 아트 가펑클은 듀오의 해체와 동시에 마이크 나콜라스의 영화 두편에 연이어 출연하며 가수가 아닌 배우로서 외도를 했고 1973년에 솔로 데뷔앨범 <Angel Clare>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해체후 소속 레코드사에선 72년 앨범 <Simon & Garfunkel's Greatest Hits>를 내놓고 돈벌이에 나섰는데 이들을 잊지 못하는 많은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현재까지 미국내 1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 앨범에선 처음으로 싱글 발매되는 'America(97위)'와 라이브 버전의 'For Emily, whenever I may find her(53위)'이 사랑을 받았다.
   또한 서로가 각자의 음악생활을 하면서도 이따금씩 함께 활동하는 우정어린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1975년 폴 사이먼의 솔로 앨범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에 아트 가펑클이 보컬로 참여한 'My Little Town(9위)'이 히트후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여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1981년에는 지금까지도 사이먼 & 가펑클의 최고의 공연 무대로 칭송 받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자선공연에 5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10년이 지난 후에도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했다.
   이듬해 이 공연 실황은 앨범으로 발매되어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공식적으론 두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무대였다. 1990년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광을 누렸고 1999년 20곡이 수록된 한 장의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어 다시 세인들의 관심이 쏠렸다. 2002년에는 1967년 뉴욕시 링컨센터 필하모닉 홀에서 녹음된 라이브 앨범 <Live From New York City,1967>이 발매되었다.                  [ From Izm.co.kr ]
 
 
 
*squander : [돈·시간 따위]를 낭비하다, 함부로 쓰다 (…away). …을 마구 뿌리다.
   - squandered my resistance  나의 저항(방어)을 마구 뿌렸다. 즉, 열심히 싸웠다.
*mumble : 입안에서 중얼중얼(우물우물) 말하다.  MURMUR 類語 
                 n. 발음이 분명하지 않은 말, 중얼거림, 더듬거림.
   -
mumble to oneself 혼자서 중얼거리다.
   - a pocketful of mumbles  한 주머니의 우물우물 중얼거리는 말
                      즉,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을 속이기 위한 허황된 약속의 말
*jest : 농담, 익살, 우스갯 소리. 조롱(거리), 웃음거리, 야유(raillery); 희롱(sport).
   -
break(or drop) a jest 농담하다, 익살을 부리다
   -
be a standing jest 언제나 웃음거리가 되다
*no more than : 오직 …에 지나지 않다, …일뿐(only).
   -
He is no more than a policeman. 그는 다만 경찰관에 지나지 않는다.
*quarter : [도시의]지구, 지대, …거리.
   -
the Chinese quarter 중국인 거리
   -
the manufacturing(the residential) quarter 공장 지대(주택 지구)
   -
business quarters 상업 지구.
*whore : 매춘부, 갈보(prostitute). 매춘 행위를 하다; [남자가] 매춘부와 관계하다.
*come-on : [美속어]  유혹(lure); 사기꾼의 앞잡이;
                      (백화점 등에서의) 특매표, 특별 상품.
*lay out : …을 펼치다; …을 [가지런히] 늘어놓다, 전시하다.
                 [
美중남부] [학교 따위를] 무단 결석하다(from…).
*bleed : 출혈하다; 내출혈하다; [피가] 나다, 흘러나오다.
               [전투 따위에서]피를 흘리다, 중상을 입다, 전사하다. …에게 출혈시키다.
   -
bleed to death 출혈하여 죽다
   -
This cut is bleeding. 이 상처에서 피가 나고 있다
   -
He bled for freedom. 그는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다.
*clearing : 빈터, 개간지.  여기서는 권투 시합이 펼쳐지는 링 한복판을 의미
*trade : [일반적으로 전문적] 직업, 장사, 가업, 손일.  OCCUPATION 類語
        (* profession에 대한 용어로 보통 의사·변호사 등의 특별직에는 쓰이지 않는다)
   - He is a barber by trade. 그의 직업은 이발사이다
   -
Jack of all trades 무슨 일이든지 다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