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빌: Vol. 1 / Kill Bill: Vol. 1 음악적인 리뷰 + 음악모음
2003년/ 각본 + 감독: Quentin Tarantino /주연: Uma Thurman
음악: Rza 외/ 111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있지만,
쿵푸 무협 영화하면 홍콩이고,
사무라이 영화하면 일본이요,
마카로니 또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하면 이태리였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한국 영화계는 도대체 뭐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도 한류다 뭐다 해서 아시아에서만 요란을 떨고 있지,
그동안에 만들어 온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한국영화 하면 이거다......” 라고
전 세계에 딱히 내세울만한 그런 무언가가 없다는 얘기이다.
10대 중반에 이미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허모사(Hermosa Beach)의 비디오 가게
(The Video Archives)에서 일을 하면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또 영화의 예술성이나
장르에 관계없이 무지하게 많은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왕성하게 섭렵하였다는
Quentin Tarantino (1963, 미국 테네시)[아래사진]는
이태리, 아일랜드, 그리고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골고루 섞인 자신의 혈통만큼이나
매우 다양하게 여러 이질적인 문화를 잘 흡수해 온 스펀지적인 인물이지만,
그래도 이 작품같이 다원화된 그의 잡식취향을 잘 나타낸 영화도 또 없다.
그래서 좋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그가 10대 때부터 즐겨 보아왔던 수많은 영화들에
대하여 존경심을 표한 오마주(Homage)라고도 할 수가 있겠지만,
우리식으로는 ‘잡탕 찌개‘ 또는 ’종합 선물세트’라고 표현을 해도 큰 실례가 아닐 듯...
이 소룡(Bruce Lee, 1940-1973, 미국 SF)이 출연하였던 수많은 쿵푸 홍콩영화들과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들, 그리고 황야의 무법자(1964)로
변종 웨스턴무비를 창조한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1929-1989, 이태리 로마)
의 영화들이 우선 오마주의 주 대상이라고 하겠는데,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모티브
(Main Inspiration)는 메이지 유신초기에 감옥에서 태어난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동명 타이틀의 만화를 영화화 한 ‘수라 설희’(1973, 修羅 雪姬 / Shurayukihime)에서
대부분을 가져와 이 작품의 기둥들로 세운 것이다.
우선 예쁘디 예쁜 여자 주인공 이 놀라운 검술로 차례차례 복수를 해나간다는 점,
그리고 특히 기모노를 입고 흰 눈 위에서의 펼치는 결투장면과 영화에 챕터를 나눠
소제목을 붙인 전개방식 역시 매우 흡사한데, 다만 ‘킬 빌‘의 주인공이 입고 있는
노란색 추리닝(아래 사진)은 이 소룡이 ‘사망유희’(1978)에서 입었던
의상이란 것이 금방 눈에 띤다.
빌(Bill)이 대장인 킬러 조직, The Deadly Viper Assassination Squad의 일원이었던
새 색시, The Bride (Uma Thurman, 1970, 미국 보스턴)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들른 텍사스 주, 엘파소의 한 작은 교회에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옛 동료들에 의해 무자비한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4년간의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그녀는 자기를 죽이려 했던 일당,
즉, 옛 동료들 다섯 명의 리스트를 만들고, 한 명 한 명 차례로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 그녀의 타겟은 제1장의 제거 대상 2번, 패사디나 에 살고 있는 흑인 여성,
Vernita Green (Vivica A. Fox, 1964, 미국 인디애나).
하교 길의 그녀의 어린 딸 앞에서는 가급적 행동을 자제 하였지만, 결국 “네가 큰
다음에도 나에 대한 증오가 남아 있다면 너의 복수를 기다릴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도쿄의 한 미군기지에서 태어난 혼혈아,
O-Ren Ishii (Lucy Liu, 1968, 미국 뉴욕)는 9살 때 눈앞에서 죽어간
부모님의 복수를 11살 때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20살에 최고의 암살자로 성장을
한 후, 이어 도쿄 암흑가의 보스로 거듭나는데, 그녀가 바로 브라이드가 노리는
제거 대상 리스트의 제1번인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초밥 집을 운영하며 은둔생활을 하던 일본도의 대가,
Hattori Hanzo(Sonny Chiba, 1939, 일본 후쿠오카)의
도움을 받아 한 달을 기다리며 명검을 구한 후, 제5장에서 오렌과 그 일당,
‘죽음의 88인회’가 유흥을 즐기고 있는 도쿄의 청엽정(House Of Blue Leaves)을
홀홀단신으로 처 들어간 브라이드. 한때는 빌의 부하였다가 지금은 오렌의 이인자인
Sofie Fatale의 팔을 단칼에 잘라 버리고, 17살의 겁 없는 여고생 바디가드, Gogo
Yubari 와의 결투를 끝낸 후, 이번에는 조직의 사령관인 Johnny Mo 가 이끄는
88인회의 몇 십명의 졸개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피투성이의 혈투를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흰 눈이 나리는 정원에서 맞붙은 브라이드와 오렌.
한동안의 사투 끝에 피범벅이 된 노란색 추리닝의 브라이드가 먼저 쓰러지고,
“사무라이처럼 싸울 수는 없지만 사무라이처럼 죽을 수는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흰색 기모노 차림의 오렌의 머리가 그만 허공으로 날아가고 만다.
이제 (속편에서) 제거해야만 할 리스트의 명단은 3명.
그런데, 부상당한 모습으로 빌 앞에 선 소피는 “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던가?”
라는 속편줄거리의 힌트가 담겨있는 질문을 마지막장면에서 받게 된다.
같은 음악이라도 듣는 사람의 기분이나 환경에 따라서 다 다르게 들린다고 하더니,
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에서의 Gheorghe Zamfil 의 연주가 너무나도
인상적 이었다고 말한바가 있는 쿠엔틴이 한 타이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듣게 된
‘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Shepherd)는 악단 장으로도 역시 유명한 독일 출신의
James Last 가 원래 만들 때에 가졌던 전원풍의 목가적인 감정과는 사뭇 다르게
그의 귀에 전달이 되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