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이개 ▒

사우정영송 (四友亭詠松) -백옥헌(白鈺軒) 이개(李塏)-

천하한량 2007. 6. 19. 17:52

 


                        사우정영송(四友亭詠松)   

 

- 백옥헌(白鈺軒) 이개(李塏) -  

 

 

 

階前偃蓋一孤松 계전언개일고송 枝幹多年老作龍 지간다년로작룡 歲暮風高?病目 세모풍고개병목 擬看千丈上靑空 의간천장상청공

 

 

 

 

 

 

뜰 앞에 양산을 눕혀 놓은 소나무 하나


가지와 줄기는 여러 해 늙어 용이 되었구나


장차 해 저물고 바람 높으면 병든 눈을 문지르며


천길 위 푸른 허공에 솟는 것 보려는 듯 하여라
 
 



                                       -사우정에서 소나무를 읊다-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태종(太宗) 17년 1417 - 세조(世祖) 2년 1456)

자(字)는 청보(淸甫) 백고(佰高) 호(號)는 백옥헌(白鈺軒)이며 본관(本貫)은 한산(韓山) 이며 이색(李穡)의 증손(曾孫)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이다.


세종(世宗) 18년 문과(文科)에 급제 세종 23년 저작랑(著作郞)으로 『명황계감(明皇戒鑑)』의 편찬에 차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創制)에도 참여했다.


 

1456년(세조 2)2월에 집현전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이해 6월에 성균관사예 김질(金#질18)의 고변에 의하여 성삼문 등 육신(六臣)이 주동이 되어 상왕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발각되었는데, 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유응부(兪應孚)·유성원(柳誠源)과 함께 국문을 당하였다.

 

때 그는 작형(灼刑)을 당하면서도 태연하였다고 한다. 세조와도 친교가 있어 진상을 밝히도록 강요당했으나 굽히지 않고 성삼문 등과 함께 같은날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는데,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갈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우정(禹鼎)처럼 중하게 여길 때에는 사는 것도 또한 소중하지만·

 

홍모(鴻毛)처럼 가벼이 여겨지는 곳에는 죽는 것도 오히려 영광이네·

 

새벽녘까지 잠자지 못하다가 중문 밖을 나서니·

 

현릉(顯陵)의 송백이 꿈속에 푸르고나!”

 

  

뒤에 남효온(南孝溫)이 그 당시 공론(公論)에 의거하여 단종복위사건의 주도인물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6인을 선정, 〈육신전 六臣傳〉을 지었는데, 이 〈육신전〉이 세상에 공포된 뒤 육신의 절의를 국가에서 공인, 1691년(숙종 17)에 와서 사육신의 관작을 추복(追復)시켰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 홍주의 노운서원(魯雲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  우정(禹鼎:夏나라 우왕이 9주의 쇠를 거두어 9주를 상징하여 만든 아홉 개의 솥)

 

*  홍모(鴻毛:기러기의 털, 즉 아주 가벼운 물건의 비유)

 

*  현릉(顯陵:문종의 능)

 

* 작형(灼刑)- 단금질

 

* 거열형(車裂刑)- 일명 능지처참형이라고도 불리는 거열형은 중국에서 들어온 형벌로.

                          상앙이라는 재상이 만들었지만 그 형벌을 만든 제작자인 재상 자신이

                          자기가만든형벌에 죽임을당했다

 

                          이 형벌은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행해졌으며

                          주로 군왕을 배신한 대역죄인들을 처형할때 이 형벌을 많이 썼다.

      

                          거열형은 죄인의 양 손과 발에 밧줄을 묶은후

                          그 밧줄을 소 4마리에 묶어 잡아 당기면 사지가 두갈래로 찢겨 죽는

                          잔인하고 끔찍한 최고의 극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