玉堂春暖日初遲
睡倚南牕養白痴
啼鳥數聲驚午夢
杏花嬌笑入新詩
*
乳燕鳴鳩晝刻遲
春寒太液柳如痴
鑾坡睡破無餘事
時展蠻牋寫小詩
옥당에 봄볕 따뜻하여 해 비로소 길어지니
남창에 기댄 잠이 백치를 기르도다
우는 새 몇 소리 낮 꿈을 놀래키고
살구꽃 고운 웃음 새 시에 들어온다 하니,
성화중이 차운(次韻)하여 말하기를,
어린 제비 우는 비둘기에 낮 시간 길어지고
태액(궁중의 못)에 봄날은 찬데 버들은 얼빠진 듯
옥당에서 잠을 깨니 나머지 일이 없어
이따금 만전(고려전(高麗牋))을 펼쳐서 작은 시를 쓴다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태종(太宗) 17년 1417 - 세조(世祖) 2년 1456)
자(字)는 청보(淸甫) 백고(佰高) 호(號)는 백옥헌(白鈺軒)이며 본관(本貫)은 한산(韓山) 이며 이색(李穡)의 증손(曾孫)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이다.
세종(世宗) 18년 문과(文科)에 급제 세종 23년 저작랑(著作郞)으로 『명황계감(明皇戒鑑)』의 편찬에 차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創制)에도 참여했다.
세종 29년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세조 2년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이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등과 함께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發覺)되어 혹독(酷毒)한 고문(拷問) 끝에 죽었다.
본래(本來)에는 세조(世祖)와도 친교(親交)가 있어 진상(眞相)을 밝히도록 강요 당했으나 굽히지 않고 처형(處刑) 당했다.
시문(詩文)이 청색하고 하고 글씨를 잘 썼다.
대구의 낙빈서원(洛濱書院), 과천(果川)의 민절서원(愍節書院),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 영월(寧越)의 창절사(彰節祠) 연산의 둔암서원(遯巖書院), 홍천(洪川)의 노운서원(魯雲書院), 한산(韓山)의 문헌서원(文獻書院)에 동학사(東鶴寺) 숙모전 영조(英祖) 34년 이조판서(吏曹判署)에 추증(追增) 시호(諡號)는 의열(義烈) 이었으나 뒤에 충각(忠簡)으로 개시(改諡)하다.
***
(백고(伯高)는 청보(淸甫)의 다른 자(字)가 아닌가 싶다. 《용재 총화》의 이 조(條)에는 몇몇 문학하는 선비로서 인수(仁叟) 등 네 사람이 기록되었는데 청보의 문명(文名)과 깨끗한 명망으로 홀로 빠질 리가 없다. 《용재총화》중에 인수를 언급할 때마다 청보(淸甫)가 그 중에 있으니, 백고가 곧 청보인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대개 개(塏)라는 자는 높고 시원하다는 뜻이니, 자를 청보와 백고라 한 것이 모두 뜻이 있는 것이다. 또 상고하여 보건대, 《용재 총화》의 진일(眞逸 성간(成侃)) 조에서 이르기를, “꿈에 이백고(李伯高)가 용이 된 것을 보고 내가 용을 잡고 날아 강을 건넜다. 내가 떨어질까 걱정하니 용이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 뿔을 단단히 잡아라.’ 하였다. 꿈을 깨고 백씨(伯氏)에게 말하였더니. 백씨가, ‘백고(伯高)는 높은 명망으로 일찍 중시(重試)에 뽑혔다. 군이 그 뿔을 잡았으니 반드시 중시에 장원이 될 것이다.’ 하였는데, 머지 않아 백고가 주살당하고 진일(眞逸) 역시 병으로 죽었다.” 하였으니, 이것을 보면 진일은 성간(成侃)의 호(號)인 것이다. 사육신(死六臣)의 변이 병자년 6월에 있었고 진일이 병으로 죽은 것이 7월이며, 청보(淸甫)는 벼슬이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으니 백고(伯高)가 청보(淸甫)의 다른 한 자(字)라는 것은 더욱 의심할 것 없다.《상촌집(象村集)》
'▒ 사육신이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우정영송 (四友亭詠松) -백옥헌(白鈺軒) 이개(李塏)- (0) | 2007.06.19 |
---|---|
까마귀 눈비 맞아 희난 듯 검노매라,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0) | 2007.04.08 |
희현당전(希賢堂傳)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0) | 2007.04.08 |
설원(雪冤)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0) | 2007.04.08 |
별단(別壇) 236인 ,이개ㆍ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박중림ㆍ김문기ㆍ심신이 앞장서서 반란을 모의하고..- 정조- (0) | 2007.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