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이개 ▒

설원(雪冤)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천하한량 2007. 4. 8. 22:36

 

謀動君親陷至公

禍荄誰是箇邪雄

眞寃豈獨車丞相

虛捏還騰李侍中

淸宗家世商孤負

豈效朝秦暮楚生

後識幸從斯史筆

子陵應恥韓官名

 
군친을 움직이려 꾀하다가 지공한 데 빠졌는데 
화근은 누구이며 누가 정말 간웅인가 
정말 원한이 어찌 차 승상뿐이던가 
허위 날조는 도리어 이 시중에게 비등하네 
깨끗한 종가의 가문도 오히려 저버렸는데 
어찌 아침에는 진 나라에 머물렀다 저녁에는 
초에서 지내는 것 본받으며 살 것이랴 
후인이 다행히 이 사필을 알게 되면 
자릉이 응당 한 나라 관명을 부끄러워하리라
 
임금의 명으로 〈차원부(車原頫) 설원(雪冤)〉이라는 시를 지었다.
자릉(子陵): 엄광(嚴光)은 광무제(光武帝)의 친구였으나 벼슬을 거절하였다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태종(太宗) 17년 1417 - 세조(世祖) 2년 1456)


자(字)는 청보(淸甫) 백고(佰高) 호(號)는 백옥헌(白鈺軒)이며 본관(本貫)은 한산(韓山) 이며  
이색(李穡)의 증손(曾孫)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이다. 

세종(世宗) 18년 문과(文科)에 급제 세종 23년 저작랑(著作郞)으로  
『명황계감(明皇戒鑑)』의 편찬에 차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創制)에도 참여했다.

세종 29년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세조 2년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이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등과 함께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發覺)되어 혹독(酷毒)한 고문(拷問) 끝에 죽었다.

본래(本來)에는 세조(世祖)와도 친교(親交)가 있어 진상(眞相)을 밝히도록 강요 당했으나  
굽히지 않고 처형(處刑) 당했다. 
 
시문(詩文)이 청색하고 하고 글씨를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