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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 현감(兎山縣監) 묘갈명(墓碣銘) -미수기언(眉?記言) 허목(許穆)-

천하한량 2007. 6. 15. 00:39

토산 현감(兎山縣監) 이공(李公)의 묘갈명(墓碣銘)

 

 

한산(韓山) 이경항(李景沆) 공은 곧 고려 때의 문정공(文靖公) 이색(李穡) 11세손이다. 증조부는 영의정에 추증된 오()이고, 조부는 한흥군(韓興君) 덕연(德演)이며, 아버지는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성원(性源)인데 돈독한 행실로 이름이 났었다. 그의 명()에는 ‘충실하고 공경스러워 인정이 많고, 곧으면서 급하지 아니하니, 효제(孝悌)의 마음 쌓였기 때문이네.’ 하였다. 어머니 최씨는 별제(別提) ()의 딸이다.

공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형제들에게 잘하였고, 부모를 섬기는 데에는 한결같이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았으며, 장성해서는 단아(端雅) 진중(鎭重)하여 삼가고 경계함으로써 행실이 돈독하였다. 현종(顯宗) 초에 재행(才行)이 있다고 해서 선발되었다. 공이 처음 광릉 참봉(光陵參奉)에 임명되매 부임하지 않으려 하였는데, 설옹 선생(雪翁先生)의 권유로 출사(出仕)하였다. 여러 차례 전임(轉任)되어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내자시 직장(內資寺直長)을 거쳤고, 참상(參上)으로 올라 상의원 주부(尙衣院主簿)가 되었다가 다시 사헌부 감찰이 되었는데, 요직에 있는 자가 자기에게 아부하지 않는 자는 싫어하여 동료가 업신여김을 당하자 공이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끝내는 벼슬을 그만두었다.

얼마 후 지례 현감(知禮縣監)에 임명되어 가서는 나이 많은 이를 위문하는 한편 백성을 사랑하고 선비들을 예로 대우해 주었으며, 세금을 적게 거두고 쓰임새를 줄여서 포흠(逋欠) 5백 석을 견감(?)해서 백성들에게서 거두지 않았다. 지례현에는 무흘(武屹) 아래에 삐죽삐죽한 바위와 수석이 좋은 명승이 있는데, 일이 없을 때면 언제나 유람하면서 즐겼다. 임기가 만료되어 돌아올 때에 겸임자(兼任者)가 예산 외에서 돈을 빼내 노자를 마련해서 송별하려 하니, 공이 말하기를,

 

“내가 10일 먹을 것은 마련해 놓았다.

하면서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집에 있은 지 2년 만에 다시 감찰이 되었고 그해에 토산 현감(兎山縣監)이 되었다. 토산현에는 산지가 많고 평야가 좁아서 주민은 적은데, 제군(諸郡)의 둔전(屯田)만 고을에 가득하여 부역이 잦고 세금이 무거워 백성들이 견디지를 못하였다. 공이 둔전을 파해 줄 것을 본 도에 상신하고 몸소 소박한 생활을 해서 은혜로 백성을 보호해 주었으니, 모두 지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3년 만에 공이 재직 중에 죽으니 65세였다. 아전들과 백성이 눈물을 흘리며 길에서 서로 조상하였다.

공은 평생에 글 읽기를 좋아하되 성현(聖賢)의 글이 아니면 읽지 아니하고, 자제들을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먼저 하고 재능과 기예(技藝)는 뒤로하였다. 친척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귀천(貴賤)에 따라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친구와 교제할 적에는 처음 사귈 때 가졌던 마음을 끝까지 변하는 일이 없었다. 천성이 담박하여 번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재물에 관한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않고, 남의 잘못을 들으면 다만 말하기를,

 

“내 자신 그렇게 아니하면 되지 남의 단점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할 뿐이었다.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거나 착한 사람이 아니면 반드시 글 잘하는 이름난 사람이었다. 늘그막에 설옹(雪翁)과 종유(從遊)하여 정신적으로 서로 통하였다.

아내 송씨(宋氏)는 본관이 덕은(德恩 은진(恩津))인데, 대사간 응개(應漑)의 증손이며 장령(掌令) 석윤(錫胤)의 딸로 《소학(小學)》과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즐겨 읽어 자기 몸을 단속하고 시부모를 잘 섬겼다.

공이 계속하여 수령이 되었으나 한 번도 녹봉 외의 것을 받아 여유 있는 생활을 한 일이 없고, 사치를 금하여 이것으로 자손을 경계하였으니, 역시 부인 중에서 훌륭한 분이었다.

아들 셋을 두었으니 준()ㆍ관()ㆍ정()이고, 또 두 딸이 있으니 사위는 홍만원(洪萬源)ㆍ민광로(閔光魯)이다. 준은 계정(繼程)ㆍ희정(希程)을 낳았고 또 딸 하나가 있으며, 관은 기정(期程)ㆍ지정(志程)ㆍ취정(就程)을 낳았고 또 세 딸이 있으며, 정은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는데 아직 모두 어리다. 묘소는 충청도 면천군(沔川郡)의 치소(治所) 북쪽 20리 떨어진 오곡(鼇谷)의 남향받이 언덕에 있으니, 아내 송씨와 합장하였다.

()은 이러하다.

 

청렴하고 개결하여 구차하지 아니하고 / 廉介不苟

착한 일 하기 좋아하는 마음 천성에서 나왔도다 / 好善出於性

, 벼슬길이 불안하여 / 嗚呼祿仕棲棲

침울하게 억눌려 펴지 못함이 명이었던가 / 沈抑而不發者命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