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는 철공소 직원을, 고등학교 때는 면서기를 꿈꾸던 한 시골 청년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청년의 소박한 꿈은 지방대를 거쳐 삼성에 입사함으로써 화려하게 펼쳐졌다.
직장에서 고속 승진하며 승승장구한 청년. 그러나 기쁨은 잠시. 본의 아니게 회사 자본금의 3분의 1을 잃는 손해를 입혔다. 1년을 매달린 청년은 사고를 수습했다. 그리고 도의상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회사는 청년의 사표를 반려했다. 오히려 열정과 패기를 높이 사 57개 해외지점을 총괄하는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승진발령을 냈다.
세계적 기업인 GE의 한국투자회사인 'GE코리아' 이채욱 회장의 입지전적 스토리다. 샐러리맨들로선 말단 신입에서 CEO가 된 그의 이야길 한번쯤 들어봄직 하다.
청담동 GE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이채욱 회장은 “위기를 바꾼 혁신의 전도사라는 주변의 평가는 과분한 표현”이라고 손을 내젓는 겸손한 경영인이었다. 그에게 샐러리맨의 성공비결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배경이나 인맥없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 현재의 자리에 오른 이채욱 회장의 좌우명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자'다. 언뜻 보면 평범한 말이지만 직접 들어본 각오는 비범했다.
“찾으려고만 하면 어떤 일이든 다섯 가지 장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장점을 찾으면 일이 즐거워지고 열정이 생깁니다. 열정은 성공을 불러옵니다.”
이 회장은 일단 하찮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흔히 잘난 학력을 가진 직장인일수록 직장에서 '작은 일'을 맡게되면 "내가 이까짓 일을 하러 여기 들어왔나"라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중견 사원이나 간부 역시 짜증을 낸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까짓 일’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그까짓 것'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일이란 게 부정적으로 보면 한심할지 모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조직의 생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맡은 일의 장점을 찾아낸다. 그러면 열정은 절로 생긴다. 이어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이 회장은 중학교 시절 은사였던 황의복 선생님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 회장이 중학교 졸업식 때 황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서울의 선린상고를 1등으로 졸업한 황 선생님은 당연히 들어갔어야 할 일류 한국은행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그해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산업은행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는 매일 “내가 왜 이런 시시한 곳에서 일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빠져 괴로워했다.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불평불만만 늘어갔다. 열심히 일하지 못하니 승진을 못했고 대인관계도 원만치 못했다. 결국 은행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교사 생활을 했다.
교사가 낮은 직업은 결코 아니지만, 황 선생님은 '은행원으로서의 삶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는 바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결과였다.
최선을 다하는 마인드로 매사에 임했던 이 회장은 끊임없이 공부했다. 무역, 영어, 글로벌 경쟁력, 네트워킹을 갖추기 위해 학위를 따고 연수를 받았다. 많은 샐러리맨의 꿈인 ‘학업과 일의 병행’에 대해 이 회장은 특별한 비법을 전했다.
삼성물산 근무 초기, 이채욱 회장은 업무 미숙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방대 출신에 실무를 몰라 자신감을 잃었다.
그는 '더 이상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성균관대 무역대학원에 다녔다. 이어 무역에 필수인 영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외대 어학연수원에 등록했다.
합작회사 사장을 맡았을 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 등록했고, 귀국 후엔 네트워킹의 필요성을 깨닫아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쳤다.
직장인들은 학업을 병행하고 싶지만 조직의 분위기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뜻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못박았다.
"야간에라도 반드시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에게는 길이 보이게 돼 있습니다. 상사의 눈치, 쌓여가는 일감 때문에 어려울 수 있지만 뜻을 분명히 세우면 시간은 만들 수 있습니다.
평소 즐겼던 여유를 포기하면 됩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상사에게도 학업을 향한 열의를 분명히 전달하면 이해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반드시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집중력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다른 시간을 활용하면 뜻은 관철 시 킬 수 있습니다. 철저한 ‘시간활용’ 의 원칙만 세워졌다면 충분히 직장과 학업을 병행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경쟁력은 곧 조직의 경쟁력이다. 필요에 따른 능력을 갖추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계발은 필수다.
직장생활이란 게 실력과 능력이 있어도 까다로운 상사를 만나면 힘들어진다. 이채욱 회장은 소위 '터프한 상사'에 대처하는 법을, 자신의 딸을 사례로 귀띔 해 줬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딸이 ‘시보’ 로 근무 중이었을 때 이야기다. 딸은 '모진' 상사를 만나 고생이라고 불평했다.
딸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며 "보통 남들의 두 배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밤12시에 퇴근하는가 하면 주말까지 일을 해야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 때 이 회장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아 딸이 허를 찔렀다.
“너 정말 운이 좋구나. 누가 너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케이스를 접할 수 있겠니. 이런 시보 생활이 다시 오겠어? 다른 동료들은 2~3 건 밖에 못하는데 넌 5~6건을 하네. 상사가 너를 굉장히 좋아하나보다.”
이 회장에 따르면 상황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면 긍정적인 면을 빨리 발견하는 게 현명한 방법. 바꿀 수 없으면서 불만에 시달리면 에너지는 떨어지고 태도는 부정적으로 바뀐다. 차라리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저 사람의 뜻은 다른 게 있을 거야. 나를 키우려고 그러는 걸 거야.”
이 회장은 상사에게 야단맞을 때조차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나한테 화풀이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경우에도 가능 한 빨리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
여기에 '내가 상사가 되면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까지 먹는다면 타산지석의 덤까지 얻을 수 있다. 소위 ‘털어내기 방법’이다.
‘생각 없는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어느 직장에나 있다. 만약 그런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그냥 털어내는 것이 좋다.
"당한 사람은 마음이 안 풀려 잠을 못자고 괴로워하지만 말한 사람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당사자가 모르고 있으니 괴로워 하는 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태도인가. 이 회장은 '털기 습관'은 꾸준한 연습과 노력을 반복하면 저절로 길러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털어버리고 잊는 게 원만한 대인관계 법이라면 ‘관심 갖기’는 원만한 가족관계를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이채욱 회장은 1년이면 199일 해외출장을 다닐 정도로 바쁘다. 그런 가운데 행복한 가정을 꾸려 온 비결은 ‘툴’을 사용한 가족간 ‘터치’라는, 용어상 다소 어려운 방법이다. 툴(Tool) 이란 연락에 사용 된 전화, 이메일, 엽서 등 다양한 수단을 뜻한다.
“커뮤니케이션 툴이 발달 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국제전화비도 싸고 호텔에선 무료로 엽서를 발송까지 해줍니다. 너무 바빠서 글자를 쓸 시간이 없을 때는 ‘?’ 표시만 적어 아내와 딸들에게 띄우곤 했죠. 그 안에는 가족의 안부, 건강 모두를 묻는 의미가 포함돼 있어요. 가족들은 그런 나의 뜻을 늘 이해해주곤 했습니다.”
이 회장은 디지털 시대의 가장답게 다양한 ‘툴’을 이용한 ‘터치 방법’으로 멀리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 큰 성공은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이라는 이 회장의 말을 듣다보면 얼마나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는 인도인들의 격언을 한 예로 들었다.
“인도 격언에 아내는 하루에 3번 칭찬하고 4번을 야단치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7번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죠”
미장원에 다녀와도, 악세사리를 바꿔도, 옷을 바꿔도 남편이 전혀 알지 못한다면 아내는 서운함을 느낄 것이다. 알고보면 이 회장은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아는 현명한 가장인 셈이다.
이회장이 일 때문에 싱가폴에 근무하고 있을 때다. 첫째 딸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따라서 두 딸과 아내를 비롯한 다섯 가족이 세 나라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는 전화와 메일, 엽서, 편지 등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시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힐난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집안의 행복은 모든 일의 성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열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 할 것입니다."
이 회장의 말에 따르면 가정이 주는 에너지도 그냥 두면 고갈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 대한 멈추지 않는 관심으로 노력한다면 에너지는 채워진다.
결국 이 회장은 성공하는 리더 뒤에는 가족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GE코리아 이채욱 회장의 자녀 교육 원칙은 ‘자신감 북돋워 주기’다. 자녀를 독립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 흥미로운 이야길 꺼냈다.
이 회장의 막내딸은 위로 언니 둘을 둔 탓에 매사에 강한 ‘의존성’을 보였다. 잠시였지만 딸은 이 회장과 싱가폴에서 생활하게 됐다. 당시 고1.
그런데 딸은 물건을 구매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어떻게 할까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언니들이 선택해주는 방식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 회장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했다.
모든 선택에서 절대 도와주지 않았다. 학생인 딸에게 필요한 용돈은 주면서, 사용내역만 메모하게 했다. 모든 지출을 알아서 하게하고 품목을 기록하게 만든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회장은 "훗날 렌트할 집까지 스스로 해내는 딸을 보며 대견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그는 부모라면 자녀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믿는 부모에게 자녀는 깊은 신뢰감을 갖는다는 것.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고 끊임없이 부모가 개입하다 보면 아이들은 결국 모든 일에 의존성을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독립적인 인간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뭐든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적당한 관심과 애정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개입’은 효과적인 자녀교육법이 아니라는 게 이회장의 지론이다.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고 더 나아가 사회가 바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와관련, GE코리아 이채욱회장은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몇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평가자는 분명한 평가 기준을 세워야 한다. 둘째, 부하직원을 평가 할 때는 그의 경력을 생각해야 한다. 셋째, 평가자는 공정성, 투명성, 일관성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한다.'
또한 이 회장은 리더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조건으로 ‘Fare’(공정성) ‘Transparency’(투명) ‘consistency’(일관성)을 꼽았다.
예컨대 일을 시킬 때 기준없이 누구는 6시간, 10시간 하라고 하면 공정성이 없기 때문에 불만이 일어난다. 따라서 학연, 지연, 혈연과 무관한 공정한 평가는 성공하는 리더와 조직이 갖춰야 할 필수요건이다.
이 회장은 ‘인재’가 갖춰야 할 필수 요건도 강조했다.
먼저 그가 생각하는 인재란 ‘열정’을 갖춘 사람이다. 에너지가 넘쳐나고 주변 사람까지 신바람 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조직을 성공시키고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훌륭한 인재다.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 일을 할 때도 누가 시켜서 억지로 아무런 열정 없이 하는 사람은 절대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 회자이 보기에 모든 성공의 기본은 ‘열정’이다. 그는 분출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 자신의 열정 또한 ‘자기 계발과 노력을 통해 길러진 열정’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열정을 샘솟게 할 수 있을까.
일단 이 회장에 따르면 열정은 긍정적인 마인드에서 출발한다. 어떤 일이든 5가지 이상의 좋은 점이 있기 마련이며, 찾으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에 안 좋은 점만 보인다는 것.
“되풀이 되는 일상과 익숙해진 직장 생활 속에 맥없이 묻히지 말고 자신을 그토록 벅차게 했던 첫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리더로서의 첫 마음을 떠올리는 순간,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나갈 ‘백만 불짜리 열정’이 당신의 가슴을 두드릴 것입니다”
현장 실무 경험과 독특한 자기계발을 거쳐 GE의 혁신 마인드를 온몸으로 익히고 실천한 최고의 경영자 이채욱 회장. 그가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 최고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작은 변화를 위한 최선의 노력’ 이라 하겠다.
[아이엠리치 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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