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신용은 나중에 복으로 돌아왔다. 사업이 실패하자 전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은 회사 복귀를 권했다. 그러나 거절했다. | ||||
잘나가던 직장인이 있었다. 성실과 신의로 위 아래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속한 직장은 톱 클래스였다. 월급 많이 주고 회사의 전망 역시 밝았다. 그런데 어느날 사표를 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신용불량자와 다름없는 '적자인생'으로 추락했다. 그러다 인생역전을 했고, 지금은 훨훨 날고 있다. '참좋은여행'사 윤대승 대표의 요약본 이력이다. 대체 직장을 관둔 이유는 뭐고, 빚더미에 앉게된 사연은 뭘까. 현재 '참좋은여행'사는 국내 9천여 개의 여행사 중 상위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요즘엔 코스닥 '위즈정보기술'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10배수' 가까이 자금을 유치했다. 출범후 10년의 활주로를 타고 마침내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한 셈이 됐다. 돌이켜보면 10년의 세월 중 절반은 활주로라기 보다 터널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혜롭게 헤쳐나왔다. 멋진 단어를 써서 그렇지 어디 지혜로 표현될 낭만은 전혀 없다. 예컨대 윤대표는 현재의 심정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한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86년 대학 졸업후 윤대승은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대학 입학할 당시 막연한 정치의 꿈(정외과 졸업)은 가슴 속에 묻고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직장에서 잘 나갔다. 여객담당 카운터에서 기획파트까지 다양하게 업무를 경험한 뒤 당시 새로 생긴 아시아나 항공사에 스카우트되어 이직했다. 아시아나는 신규 항공사였기에 대우가 좋았다. 일 하는 재미를 느끼며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다. 뭐 하나 부러울 게 없는 그 시절엔, 불과 몇 년후 닥칠 거센 비바람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어느 날이었다. 윤대승은 아시아나 직장 동료인 대만인 친구로부터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들었다. 20만 달러의 자금을 대겠다는 것이었다. 조건은 없었다. 뭘 바라고 한 일이라기보다 '잘 할 것 같으니깐 밀어준다'는 의도였다. 평소 사업에 적성이 맞는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윤대승은 그 제안을 흘려버리지 못했다. 뭘 막 시작할만큼 '준비된 사업가'가 아니었기에, 사업을 하려는 후배에게 자금을 대줬다. 그렇게 해서 예식 이벤트 사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후배는 불성실했고, 사업에 무지했다. 종자돈은 1년만에 날라갔고, 이후 수억의 적자가 쌓였다. 그 상황에서 선택은 하나였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빚을 갚기위해 사무실 키를 건네받아야 했다. 그 좋은 직장을 그렇게 허무하게 나왔다. 수습하려고 뛰어든 사업은 하마처럼 돈을 집어삼켰다. 빚을 막기위해 아는 사람 돈을 '투자'받고, 나중엔 사채까지 끌어썼다. 이미 빠져버린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었다. 결국 부채는 눈덩이처럼 쌓여 20억 가까이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8년의 직장생활 동안 쌓은 신용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인간성이 나빠 돈을 빌릴 데가 없었으면, 그 사태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그 신용은 나중에 복으로 돌아왔다. 사업이 실패하자 전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은 회사 복귀를 권했다. 그러나 거절했다. 윤대승 대표의 말. "죽어도 사업하다 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사업한다고 그 많은 돈을 퍼부었는데, 중도에 그만둘 수 없었지요. 끝장을 봐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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