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테헤란로는 멋진 고층빌딩이 즐비한 사무용 빌딩 밀집지역이다. 하지만 테헤란로에서 한 블록 뒤 대치동에 있는 씨아이제일의 본사 사옥은 컨테이너 가건물이다. 이 회사는 링코(LINK’O) 브랜드로 문구 및 사무용품 전문할인매장 체인점을 운영하는 업체다. 본사 건물은 기업이미지를 좌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최종태 씨아이제일 사장(45)은 본사 사옥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본사에서 일하는 50여명의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사장은 “우리는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는 창업한 지 20년 동안 외화내빈을 배격하는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일궈왔다고 밝힌다.
열정과 패기만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최사장은 “그동안 맞은 두 번의 기회가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과 함께 찾아왔다. 1986년 5월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달이다.
일생의 배우자를 맞이했고, 링코의 전신인 구멍가게 ‘만물상회’를 시작한 달이기도 하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결혼자금으로 주신 500만원으로 신혼집을 얻고 구멍가게도 열었다. ‘
만물상회’는 서울 영동전화국 뒤쪽에 위치한 7평 남짓한 가게. 자금이 모자랐지만 일을 해서 갚겠다며 건물주인을 설득했다. 몇 달에 걸친 요청 끝에 1년 동안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건물주는 사업방법을 알려주며 도와줬다. 맞은편에는 동일한 상품을 취급하는 매장이 있었다. 그 가게와 차별화하기 위해 배송을 생각해냈다. 그때부터 소위 텔레마케팅을 통해 고객들에게 필요한 것을 전화로 주문받고 배송했다.
또 맞은편 가게가 식료품 취급으로 전문화하자 자신은 경쟁을 피하기 위해 문구와 사무용품 전문가게로 업종을 바꿔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만물상회’를 92년 현재의 사명인 씨아이제일로 변경했다.
사명은 ‘Creative Image 제일’의 약자로 디자인과 창조적인 경영을 중시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최사장은 모토로라, 한라 등 여러 기업에 볼펜에서부터 판촉물, 탁상용 다이어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며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때의 경험이 대형 사무용품 체인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98년에 잡은 두번째 기회는 삼성동 코엑스몰이다. 최고의 상권에 만들어지던 쇼핑몰에 최사장은 승부수를 띄웠다. 이곳에 입점을 준비한다는 소문에 동종업계 관계자들은 돈키호테라고 놀리기도 했다. 이름도 없고 경험도 일천한 사람이 엄청난 규모의 매장을 열겠다고 덤비는 게 그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는 이곳에 대형 매장을 열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직원과 컨설팅업체 관계자들 10여명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이곳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빌렸다. 보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훑었다.
차에서 잠을 자고 해가 뜨면 휴게소에서 세수를 했다. 이런 식으로 다니며 오피스데포, 오피스맥스, 스테이플즈, 월마트, 홈플러스, 홈데포, 토이저러스, K마트 등 컨셉이 비슷한 대형 매장들을 조사했다.
주로 문구와 사무용품의 판매내용 및 전시형태, 서비스, 직원 유니폼 등을 살펴봤다. 당시 국내에는 소형 매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할인점 컨셉의 카테고리 킬러 매장의 인테리어와 운영시스템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대형 매장의 집기들과 인테리어, 컬러, 계산대 등도 자세히 살펴봤다.
이런 준비를 마친 뒤 쟁쟁한 업체들과의 경쟁 끝에 코엑스몰에 800평대의 매장을 낙찰받았다. 이는 일반 문구매장의 약 20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내 최대 문구 및 사무용품 매장인 링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가 2000년 7월. 링코는 입점할 때부터 화제를 낳았지만 개점 후에는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문방구점으로는 임차료도 내지 못해 금방 철수할 것이라는 여러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불과 3개월 만에 잠재웠다. 국내에서는 생소하던 전문할인점 컨셉의 링코는 2만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품목으로 고객들의 원스톱 쇼핑 욕구를 채워줬다.
문구·사무용품을 사러오는 여러 계층의 구매행태를 분석한 결과 가격 못지않게 편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격에서 약간 차이가 나더라도 한꺼번에 사고 싶어 한다는 데 착안해 문구·사무용품뿐 아니라 사무실에서 필요한 다른 상품들도 진열했다.
간단한 다과와 커피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섹션을 마련하고, 전문적인 복사·제본과 사진 인화서비스 등 부가서비스도 시작했다. 또 일정금액 이상 구매시 배송을 해줌으로써 고객들의 추가 구매를 유도할 수 있었다.
진열집기에서부터 운영시스템까지 국내 소비자들이 그 당시 접하지 못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중에서도 몇 만종에 이르는 문구·사무용품의 관리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링코는 판매시점정보관리(POS)를 기반으로 한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 정착시키고 공급업체와의 관계를 개선해 물류비용을 절감했다.
이런 준비 속에서 출범한 링코는 2001년부터 거의 매년 두 자릿수의 매출신장세를 보이며 6년 만에 5개의 직영점과 6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둔 매출 300억원대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80%, 온라인 쇼핑몰에서 20%를 올린다. 본사와 체인점 직원을 합친 전체 직원은 정규직원 80명과 아르바이트 직원 70명 등 150명에 이른다.
링코가 변화를 거듭하며 20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벼운 지원조직과 창조적인 사고 덕분이었다고 최사장은 설명한다. 매장은 최대한 고객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되 지원조직은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예컨대 매장관리 인원을 경쟁업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업무효율을 높여 판매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또 종이컵, 펜, 파일바인더 등 몇몇 제품의 경우 프라이빗 브랜드(PB) 상품을 개발했으며 이런 제품을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다.
최사장은 “문구시장은 4조원에 이르지만 경쟁이 치열해 영세 규모 매장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경쟁력 있는 기업만이 생존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서소문에 연 직영 5호점은 이 같은 변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다. 이 매장은 기존 링코의 매장이 지닌 컨셉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고객에게 쇼핑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휴식공간을 카페테리아 형태의 비즈카페(Biz Cafe)로 꾸몄다.
게다가 서소문점은 동종업계 최초로 26살의 젊은 여성을 점장으로 발탁했다. 이 같은 파격 인사는 최사장의 또 다른 승부수다. 서소문점은 원래 오전 8시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에 닫지만 월드컵 한국·프랑스전이 열렸던 6월19일에는 새벽까지 문을 열어 티셔츠와 음료를 팔았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직원들 스스로 몸을 던져 매출 올리기에 나섰던 것이다.
링코(LINK’O)에서 ‘O’는 ‘Office’와 ‘Oxygen’, ‘Ocean’의 의미를 담고 이들간의 유기적 연결(Link)고리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지금까지 링코가 하지 못한 해외(Ocean)진출을 올 하반기에는 실현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연내에 중국 다롄에 매장을 여는 것을 계기로 해외시장 진출도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 최사장은 요즘도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 “바쁠수록 내실을 기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기회는 지나칠 수 있으니까요.”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펼치는 최사장의 꿈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약력: 1961년생. 86년 만물상회 창업. 92년 상호를 씨아이제일로 변경 및 대표이사(현). 2002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AMP과정 수료. 2006년 IMI국제경영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및 문구조합 이사(현). △수상: 2002년 중소기업청장상. 2005년 산자부장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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