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모 사
오늘은 이상재선생님께서 서거한 80주기입니다. 또한 이상재 선생님이 초대 회장을 역임한 신간회가 결성된 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신간회는 1927년 2월 16일 창립되었습니다. 신간회 창립 기념사업회가 지난 2월 서울에서 창립되기도 하였습니다.
신간회는 1920년대 좌우로 갈라져 있는 독립 운동의 방향을 하나로 통일하여 전개하자는 운동입니다. 소위 민족유일당 운동이라고도 합니다. 즉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나누어져 있던 민족의 독립운동을 신간회를 만들어 전개하자고 결성된 단체입니다.
그때 이상재 선생은 초대 회장을 역임하여 신간회의 산파 역할을 해왔습니다.
2007년 이상재 선생 서거 80주기를 맞이하여 신간회를 창립한 선생의 뜻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신간회는 좌우의 합작운동으로 이념의 갈등을 뛰어 넘었습니다. 우리 살고 있는 시대는 다양한 생각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서천을 중심으로 생각해 본다면 장항국가산단을 즉시 시행하라는 주장과 친환경적인 입장에서 절대 불가하다는 환경론적인 입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두 주장 모두 서천이 잘 살아 보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주장을 양보하여 살맛나는 서천, 큰 서천을 만드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이것이 이상재 선생이 바라는 좌우합작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신간회 초대 회장 이상재선생의 사상적인 배경은 기독교사상으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1902년 이상재 개화당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면서 예수를 영접합니다. 마태복음 5장38부터 40절에 네 왼편 치거든 오른편도 돌려 되라 하는 말씀을 여러 번 읽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사상은 청년기는 한학과 관리로서의 삶을 살지만 1902년 이후에는 77년간 삶 중 25년간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상재선생의 사상을 서천과 관련하여 생각해 본다면 성경 최초 전래 기념사업을 조속히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서천군민이 단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기독교 중심의 기념사업이 아닌 군차원의 기념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사업을 위하여 국제 학술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모금운동과 기념사업이 전개되는 것을 이상재 선생의 바람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이상재 선생의 추모 사업은 곧 기독교의 핵심 사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신간회를 통해본 서천사람들의 역할은 이제 이상재 선생을 비롯한 서천의 인물과 역사를 중심으로 한 서천교과서 편찬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모 행사를 개최하는 것만큼 자라나는 서천출신 학생들이 서천에 대하여 충분히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추모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천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을 때 이상재 선생을 말하지만 왜 존경하느냐고 물었을 때는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상재 선생을 비롯한 서천의 인물과 역사를 연계한 중학교 서천 역사 교과서 편찬을 제안합니다.
이상으로 선생의 서거 80주년과 신간회의 창립 80주년을 즈음하여 서천지역의 문제를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상재 선생 역시 아무일이 없는 21세기의 서천보다 한국을 이끌어가는 21세기 서천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재 선생은 의인으로서의 믿음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서천에 대하여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서천의 변화를 추구합시다.
2007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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