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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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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보(鄭寅寶, 1892-?) : 한학자·교육자, 자는 경업(徑業), 호는 담원( 園)·미소산인(薇蘇山人). 일제 시대에는 정치적·문화적 계몽 활동을 주도하며 광복 운동에 종사하였고, 국내에서 비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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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자식 사이 하늘 삼긴 지친이라 부모 곧 아니 이 몸이 있을소냐 오조도 반포를 하니 부모 효도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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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용(金尙容. 1561-1637) : 본관은 안동.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풍계(楓溪)·계옹(溪翁). 병자호란 때 묘사주(廟社主)를 받들고 빈궁·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서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에 불을 지르고 순절함. 시조로 《오륜가(五倫歌)》5장과 《훈계자손가(訓戒子孫歌)》9편이 전해지며, 문집으로는 《선원유고》7권이 전하고, 판본은 안동 봉정사에 보관되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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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구존하시고 형제 무고함을 남 대되 이르기를 우리 집 같다더니 어여쁜 이 내 한몸은 어디 갔다가 모르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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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계신 제는 부몬 줄을 모르더니 부모님 여읜 후에 부몬 줄 아노라 이제사 이 마음 가지고 어디다가 베푸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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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량(李淑樑, 1519-1592)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 일찍이 이황(李滉)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았는데, 문장은 청려전아(淸麗典雅)하고 필법은 절묘하였다고 한다. 1543년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과업에는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의 연구에만 치중하였는데, 후일 천거에 의해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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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날 낳으시니 은혜 밖의 은혜로다 어머님 날 기르시니 덕 밖의 덕이로다 아마도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 대어 갚사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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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장(金壽長. 1690-?) :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자는 자평(子平), 호는 십주(十州, 十洲) 또는 노가재(老歌齎). 김천택과 더불어 숙종·영조기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이다. 1775년 3대시조집인 《해동가요》을 해본(일명 박씨본)을 편찬하였는데, 그뒤로도 80세가 넘도록 개수를 계속했다고 한다. 남긴 시조로는 《해동가요》을 해본에 16수, 계미본에 117수, 《청구가요》에 3수 등이 실려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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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고져 길러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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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원군(郎原君, 1640-1699) : 선조의 손자인 인흥군(仁興君)의 아들이며, 효종의 당숙으로 학문에 조예가 깊고 시가에 능하였다. 효종의 당숙으로 학문에 조예가 깊고 시가에 능하였다. 왕실작가 중 가장 많은 시조작품을 남겨 30수의 시조가 전한다. 《청구영언》진본(珍本)에만 20수가 전하고, 나머지 10수는 여러 시조집에 산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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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 난다 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에 친재하시니 그를 두려워함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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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金振泰, 연대미상) : 영조 때의 가인 경정산단가의 한 사람. 속세에 때묻지 않은 선경(仙境)을 노래한 시조 26수가 해동가요에 전해지고 있다. 옛 선인의 효성을 느끼게 하는 시조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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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살아실 제 섬기지를 못했서라. 운명(殞命)이 경각인 제 가슴치고 우놰라 뒤 늦게 허물 뉘우친들 씻을 길이 없노라. 어머님 숨 걷을 때 부르시던 이 자식이 무덤 앞에 부복하니 가슴이 찢기는 데 어디서 소쩍새 애끊듯 저리 울어 예는고 아바도 가단말까 어마도 가단말가 목 메고 가슴 터져 외롭기 가없구나
계실 제 깊 넓고 높 큰 공 늦깨닫고 우나니 어버이 다 가시니 외롭이 산이로고 가신 뒤 뉘우치니 허물이 바다로고 생전에 못다한 장성 나의 애를 끊노매. 태산이 높다하되 아바 은에 더하오니 바다가 깊다한들 어마 공에 견주오리 이제사 깨우쳐 울어도 갚을 길이 없노라
어마도 더나시고 아바도 가셧으니 고애자 울음울고 몸둘곳 없노매라 생전에 베프신 어진 덕 빛내일까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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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가없는 은덕을 어디 대여 갚사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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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소년들아 백발노인 웃지마라 공변된 하늘아래 빈 들 매양 젊었으랴. 우리도 소년 행락이 어제련가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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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나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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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 송강의 《훈민가》 중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이다. 경로사상을 강조한 시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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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는 길고길고 물은 멀고멀고 어머니 그린 뜻은 많고많고 하고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울고 가느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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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도(尹善道, 1587-1671) : 조선 증기의 문신·시조작가.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시조로는 <산중신곡(山中新曲)>,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고금영(古今詠)>,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이 있다. 문집 《고산선생유고(孤山先生遺稿)》에 한시문(漢詩文)이 시려 있으며, 별집(別集)에도 한시문과 35수의 시조, 40수의 단수(어부사시사)가 실려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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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를 누리소서 만세를 누리소서 무쇠 기둥이 꽃피어 여름 열어 따드리도록 그제야 억만 세밖에 또 만세를 누리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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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申緯. 1769-1845) : 호는 자하(雌霞)·경수당(警修堂), 자는 한수(漢 ). 조선 후기의 문신·화가·서예가. 우리 나라 한문학을 마무리하는 구실을 하였으며 글씨는 동기창체(董其昌體)를 따랐으며, 조선시대에 이 서체가 유행하는 데 계도적 구실을 했다. 저서로는 《경수당전고》와 김영택이 600여수를 정선한 《자하시집》이 간행되어 전해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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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라서 까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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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효관(朴孝寬, 1781-1880) : 호는 운애(雲 ), 자는 경화(景華), 조선 고종 때의 가객(歌客), 안민영(安玟英)과 더불어 《가곡원류》를 편찬하여 가곡 창(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시하였다. 그의 작품 13수가 《가곡원류》에 전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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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어머님 강릉에 계시는데, 이 몸 서울 향해 홀로 떠나는 마음. 고개 돌려 북평(北坪) 때때로 바라보니, 흰 구름 나는 하늘 아래 저녁 산이 푸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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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理)의 어머니. 시·글씨·그림에 능하였다고 한다. 위 시조는 서울의 시가(媤家)로 가면서 지은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지은 《사친(思親)》등의 시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애정이 얼마나 깊고 절절한 가를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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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 조흥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은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없을새 글로 설어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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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백세 중에 질병이 다 이시니 부모를 섬기다 몇 해를 섬길는고 아마도 못다할 성효를 일찍배퍼 보렸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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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온갖 질병이 다 있으니 부모를 섬긴들 몇 해를 섬기겠는가 아마도 못다한 효성을 일찍 베풀어 보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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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로(朴仁老, 1561-1642) :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와 함께 조선조 3대 작가로 손꼽힌고 있는, 호는 노계(盧溪)·무하옹(無何翁), 자는 덕옹(德翁). 조선 중기의 문인, 임진왜란 때는 무인(武人)으로도 활동하였다. 그의 생애 전반이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려졌다면, 후반생(後半生)은 선비요, 가객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이다. 시조는 《조홍시가(早紅枾歌)》, 《선상탄(船上歎)》등 68수가 전하고, 가사로《영남가》, 《노계가》등 9편이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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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의 잉어잡고 맹종의 죽순 꺽어 검던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 성효를 증자같이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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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가사문학의 선구자이며 임진왜란 때는 수군으로 종군하여 만호까지 역임한 노계 박인로(자는 덕옹) 선생의 시조입니다. 선생은 어릴적 부터 총명하고 효심이 극진 하였으며 도학과 애국심, 자연애를 바탕으로 시정과 우국이 넘치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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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내니 이 두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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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왕의 손자인 낭원군이 지은 시조 낭원군의 이름은 간, 호는 최락당으로 전서, 예서를 잘 썼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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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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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의 대학자인 송강 정철 선생께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지은 시조이며, 선생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많은 가사와 단가를 남겼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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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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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 이순신 장군이 불과 4개월 만에 왜적선 400여 척을 무찌른 한산대첩으로 인하여 이미 육지로 올라간 왜군의 보급로가 차단되어 침략했던 왜구들이 자기네 나라로 도망 갈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이 한산대첩을 앞두고 있는 장군의 마음을 노래한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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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성루 밝은 달이 논낭자의 넋이로다 향국한 일편단심 천만년에 비치오니 아마도 여중 충의는 이뿐인가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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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집고서서 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것이 없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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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대왕때의 장군으로서 북쪽 오랑캐들이 국경 부근의 6진을 넘나들며 노략질을 일삼자 김종서 장군이 이들을 완전히 소탕한 뒤 국경넘어 북쪽을 향하여 크게 고함치는 자기의 모습을 그린 시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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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주거주거 일백번 고쳐주거 백골이 진토되여 넉시라도 잇고업고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싈줄이 이시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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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쓰러뜨리고 조선을 세우기 위해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조선 태종)이가 고려의 충신 정몽주에게 같은 편이 되어 달라고 요청을 하자 그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보낸 시조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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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와 자식 사이 하늘 아래 지친(至親)이라 부모 곧 아니면 이 몸이 있을 소냐 까마귀 반포(反哺)를 하니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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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용(金尙容, 1561-1637) : 호는 선원(仙源)·풍계(楓溪), 자는 경택(景擇). 조선 인조 때의 상신(相臣)이며, 병자호란 때의 순절인(殉節人). 시와 글씨와 뛰어났는데, 시조로 《오륜가》 5장, 《훈계자손가》 9편이 전하고, 문집으로 《선원유고》 7권이 전한다. ※지친(至親) : 더 없이 친함.(아주 가까운 친족이라는 뜻으로 '부자간'또는 '형제간'을 이르는 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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