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전통의 미학의의 -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 박지원 〈櫖處稿序〉 -
자료를 찾으러 대학 도서관에 들렀다. 고서 영인본 서가를 둘러보는데 〈頌山河〉란 시집이 한 권 꽃혀 있다. 옛 책 매듯 제본하였기 잘못 고서로 분류한 것이다.
산기슭/ 물굽이/ 도는 나그네/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春 2)
소나무/ 가지 끝에/ 달랑/ 앉아/ 봄맞이 노래로/ 해 지는 멧새 (春 25)
갈매기/ 흰 나래/ 타는 저녁놀/ 기다림에/ 지쳐서/ 조는 나룻배 (夏 37)
청개구리/ 버들 타고/ 울면/ 파초 잎에/ 후두둑/ 소나기 (夏 64)
못 잊어/ 찾는 이 길/ 하도 덧없어/ 허랑해/ 잊잔 길이/ 이리 삼삼해 (秋 97)
긁어 모은/ 낙엽에/ 불을 붙이면/ 외줄기로/ 타오르는/ 하얀 가을 (冬 104)
禮佛/ 하다/ 잠든 童僧/ 佛像은/ 자비로운/ 웃음 (冬 118)
金一路, 본명 金鍾起란 분의 시집이다. 82년 시집 발간 당시 73세로 적혀 있다. 손길 따라 몇 편 추려본 것이다. 각 편 끝에는 제목 대신 한시 한 구절 씩을 적어 놓았다. 〈春 2〉에는 '望鄕旅人逢春雨'를, 〈春 25〉에는 '杏木落花乘溪水'가 적혀 있다. 일본의 하이꾸를 연상시키는 정제되고 깔끔한 시상이다.
가끔 현대시를 읽다가 이렇듯 한시의 정서와 만날 때가 많다. 신석정의 "갓 핀/ 靑梅/ 성근 가지/ 일렁이는/ 향기에도/ 자칫/ 血壓이/ 오른다."(〈好鳥一聲〉 일절)는 얼마나 섬세한가. 서정주의 "섭섭하게, /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부분)는 이다지도 은근한가. 박목월의 "모란꽃 이우는 하얀 해으름/ 강을 건너는 청모시 옷고름."(〈모란 餘情〉일절)이거나, "오리목/ 속잎 피는 열 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청노루〉 부분)에는 그이의 그 어진 눈빛이 어려 있는 것만 같다. 이럴 때 필자는 한시와 현대시가 무던히도 잘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별개의 미학으로 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지금과 옛날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시간의 강물도 여기서는 의미가 없다. 깊은 밤 연구실에 앉아 白光勳의 시를 번역하다가, 權禝의 시를 소리 내어 읽다가 몇 백년 전 그들과 어제처럼 앉아서 얘기를 나눈다. 그가 울면 나도 울고, 그가 웃으니 나도 좋다. 會心의 글귀와 快哉의 문장을 만나면 공연히 설레어 두근거린다. 옛 것이 어째서 오늘에도 감동을 주는가? 그들은 내가 아닌데 왜 나와 같을까? 그와 나를, 그들과 미당을, 그들과 목월을 연결지워 주는 원형질은 무엇일까? 저 20년대의 시조부흥 운동도 좋고, 이즈음의 생활시조 운동도 소중하지만, 형식의 복고에 앞서 이 원형질을 찾아 나서는 일이 우선해야 할 것 같다. 형식은 변한다. 생각도 변한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이 강산, 이 흙 밟고 살아온 사람들의 가슴 속에 스민 정서는 세월로도 씻을 수 없는 원형질로 남는다.
거미가 줄을 치듯
22일, 塂翁과 함께 걸어 湛軒에게 갔다. 風舞도 밤에 왔다. 湛軒이 瑟을 타자, 風舞는 琴으로 화답하고, 塂翁은 갓을 벗고 노래한다. 밤 깊어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운 기운이 잠시 가시고, 絃의 소리가 더욱 맑아진다. 좌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요히 묵묵하다. 마치 內丹 수련 하는 이가 內觀臟神 하는 것 같고, 입정에 든 스님이 頓悟前生 하는 듯 하다. 대저 스스로 돌아보아 곧으매 三軍이 막아선다 해도 반드시 나아갈 기세다. 塂翁이 노래할 때를 보면 解衣磅憟, 옷을 죄 벗어 부치고 곁에 사람이 없는듯 방약무인하다. 梅宕이 한번은 처마 사이서 늙은 거미가 거미줄 치는 것을 보다가 기뻐 내게 말하였다.
"묘하구나! 느릿느릿 의심하듯 할 때는 생각에 잠긴 것만 같고, 잽싸게 낚아채듯 할 때는 득의함이 있는 듯 하다. 발뒤꿈치로 질끈 밟아 보리 모종하는 것도 같고, 거문고 줄을 고르는 손가락 같기도 하구나."
이제 湛軒과 風舞가 서로 화답함을 보며 나도 늙은 거미의 줄 치던 느낌을 얻게 되었다. 지난 해 여름, 내가 담헌에게 갔더니 담헌은 마침 樂師 延과 더불어 거문고를 논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비를 잔뜩 머금어, 동녘 하늘 가엔 구름장이 먹빛이었다. 우레가 한번 치기만 하면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잠시 후 긴 우레가 하늘로 지나갔다. 담헌이 延에게 말하였다.
"이 우레 소리는 무슨 소리에 속할까?"
그리고는 마침내 거문고를 당겨 소리를 맞춰보는 것이었다. 나도 〈天雷操〉를 지었다.
연암 박지원의 〈夏夜檗記〉라는 소품 산문이다. 삽화를 곁들여 한 여름 밤의 광경을 꿈결같이 소묘하였다. 거문고에 가야금이 어울어지고, 웃통을 벗어 제친 목청이 가세한다. 막아서는 三軍 앞에 一騎單槍으로 돌격할듯한 호탕한 기세다. 곁에 앉은 사람에게선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련 삼매에 든 內丹家 같고, 입정에 든 스님같다. 거미줄 위를 미끄러지듯 가볍게 움직이는 거미의 동작을 보고 현 위로 미끄러지는 연주자의 손가락을 떠올리는 梅宕의 관찰은 얼마나 참신한가. 먹이를 기다리느라 잔뜩 움츠리고 있는 모양에서 보리 모종을 하고 뒷꿈치로 지긋히 돌려 밟는 모습을 떠올리는 연상은 얼마나 미학적인가. 먹장 구름을 뚫고 떨어진 우레 소리를 거문고의 음계로 맞춰내자 시인은 그 곁에서 이를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천지 자연의 조화가 음악과 하나로 만나고, 유동하는 天機 속에 시가 한데 어울어졌다.
또 말거간꾼의 이야기를 적은 〈馬瀠傳〉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아침에 쪽박을 두드리며 동냥을 다니다가 포목전엘 들어가지 않았겠나. 마침 다락에 올라와 베를 사려는 자가 있더군. 베를 골라 혀로 핥아도 보고 허공에 비춰 살펴 보더니, 값은 말하지 않고 먼저 값을 불러 보라고 주인에게 말하는게야. 그러더니 둘 다 베 팔 일은 까맣게 잊은듯이, 주인은 갑자기 먼 산을 바라 보며 저기 구름이 피어나는 것 좀 보라고 하고, 살 사람은 뒷짐 지고 서성대면서 벽 위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지 뭔가.
물건 값을 놓고 흥정하는 장사치들의 노회한 심리전을 묘사한 대목인데, 내 보기에 이것은 시를 쓰고 읽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미묘한 법문으로만 여겨진다.
독서를 정밀하고 부지런히 하기로는 礈犧氏만한 이가 없다. 그 정신과 意態는 천지만물을 포괄 망라하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이것은 다만 글자로 쓰이지 않고 글로 되지 않은 글일 뿐이다. 후세에 독서를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 자들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냣어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부비며 그 좀 오줌과 쥐똥을 엮어 토론하니, 이는 이른바 술 지게미와 묽은 술을 배불리 먹고 취해 죽겠다는 꼴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저 허공 속을 울며 나는 것은 얼마나 生意로운가? 그런데 이를 적막하게 '鳥'란 한 글자로 말살시켜 버리니, 빛깔도 볼 수 없고 그 모습과 소리도 찾을 수 없다. 이 어찌 마을 제사에 나아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위에 새겨진 새와 다르랴! 어떤 이는 그것이 너무 평범하니 가볍고 맑게 바꾼다 하여 '禽'자로 고친다. 이것은 책 읽고 글 짓는 자의 잘못이다.
〈答京之 2〉의 한 대목이다. 포희씨는 처음으로 팔괘를 만들었다는 전설의 인물이다. 이 팔괘로 우주 삼라만상의 운행을 읽고, 인간의 夭壽吉凶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으니, 포희씨의 팔괘는 천지만물이라는 책을 근사하게 읽어낸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주역 팔괘의 정신은 문자로 고정되지 않고 오늘까지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오늘날의 독서는 어떠한가. 천박한 식견으로 이미 용도폐기된 낡은 지식을 금과옥조인양 떠받든다. 저 혼자 보기 아깝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한다. 취해 죽으려면 독주를 들이켜야지, 왜 술 지게미만 배 터지게 먹는가? 세계와 가슴으로 만나려거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 일이지 왜 좀 먹고 쥐 오줌에 지린 옛 책에 코를 박고 있는가? 왜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새를 시골 노인의 지팡이 위 조각품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鳥'가 진부하니 '禽'으로 바꾼다 하여, 지팡이 위 새가 날개짓을 하며 날아갈 이치가 있는가? 우리의 지식이란 이렇듯 살아있는 사물, 가슴 뛰고 피 흐르는 우주를 사변의 틀 속에, 언어의 무덤 속에 가두어 죽이는 것은 아니었던가?
그때의 지금인 옛날
《周易》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 간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可久"라 했다. 천지만물은 변화유동한다. 한 시대가 가면 또 한 시대가 온다. 이 도도한 변화 앞에 옛 것만 좋다고 우겨서야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 것이 옛 것과는 별개의 무엇인가? 그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것과 저것이 다름을 확인함에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숨을 통하게 하여 오래 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通變'의 정신이 여기서 나온다. 劉竳은 《文心雕龍》 〈通變〉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詩て賦て書て記는 이름과 실지가 서로 상응하니 여기에는 항상된 형식이 있다. 文辭와 氣力은 통하여 변해야만 오래 갈 수 있으니 이것은 일정한 방향이 없다. 名과 理에는 항상됨이 있으니 형식은 반드시 옛 것에 힘 입고, 通變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으니 반드시 새 목소리를 참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끝없는 길을 내달릴 수 있고, 마르지 않는 샘물을 퍼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두레박 줄이 짧은 자는 목마를 수 밖에 없고, 발이 지친 자는 가기를 멈추어야 한다. 文理가 다해서가 아니다. 通變의 꾀가 성글기 때문이다.
문학에는 정해진 규범이 있고, 형식적 틀이 있다. 새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것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 것이 새 것 다우려면 옛 것을 변화시키는 通變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옛 것을 새 것이 되게 하는가? 어찌하면 드넓게 터진 길을 통쾌하게 내달릴 수 있을까? 마르지 않는 샘물에 목을 적실까? 그 길은 無方無體 하니 저마다 마음으로 깨달을 뿐 누가 일러 줄 수가 없다. 목 마른 자 스스로 샘을 팔 일이다. 아무리 달고 찬 샘이라도 두레박 줄이 짧아서야 마실 수가 없다. 의지를 확호히 다잡아도 물집 터진 발로는 먼 길을 갈 수 없다. 시인은 어떤 깊은 우물도 닿을 수 있는 긴 두레박 줄을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먼 길에도 부르트지 않는 다리를 가져야 한다.
옛 것으로 말미암아 지금을 보면 지금이 진실로 낮다. 그렇지만 옛 사람이 스스로를 볼 때 반드시 스스로 옛스럽다 여기진 않았을 터이고,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지금 것으로 보았을 뿐이리라.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연암의 〈櫖處稿序〉 일절이다.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이 된다. 무서운 말이 아닌가.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먼 후일의 옛날이 된다. 현재에 충실하라. 그러면 그것이 뒷날의 모범이 된다. 옛 것을 맹종치 말라. 그 옛 것도 그때에는 하나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오늘의 주인공은 내일에는 무대 뒤로 사라져 간다. '지금'과 '여기'가 차곡차곡 쌓여 역사가 된다. 사람은 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학의 정신이다. 어제가 오늘 되게 하고, 오늘이 내일 되게 하는 원형질이 여기에 담겨 있다.
연암은 또 〈綠天館集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李氏의 아들 洛瑞가 나이 열 여섯인데, 나를 좇아 배운지 여러 해이다. 심령이 맑게 열려 지혜가 구슬 같다. 한번은 자신의 《綠天稿》를 가지고 와 내게 물었다.
"아! 제가 글 지은 것이 겨우 몇 해이지만 남의 노여움을 산 적이 많습니다. 한 마디 말만 새롭고 한 글자만 이상해도 문득 '옛날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하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낯빛을 발끈하며 '어찌 감히 이 따위를 하는게야?' 합니다. 아아!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무엇하러 다시 합니까? 원컨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요."
내가 두 손을 이마에 얹고 무릎 꿇고 세 번 절하며 말하였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수 있겠구나. 蒼綖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어떤 옛날을 모방했던가? 顔淵은 배우기를 좋아했지만 유독 저서로 남기지 않았다. 진실로 옛 것을 좋아하는 자로 하여금 창힐이 글자 만들 때를 생각하면서 顔子가 미처 펴지 못했던 뜻을 짓게 한다면 글이 비로소 바르게 될 것이다. 네 나이 아직 어리니, 남이 성냄을 당하거든 공경하며 사과하여 '배움이 넓지 못해 미처 옛 것을 살피지 못했습니다'라고 하거라. 그런대도 힐문하기를 그치지 않고 성냄을 풀지 않거든 조심스레 이렇게 대답하여라. '《書經》의 殷誥와 周雅는 三代 적의 당시 글이고, 李斯와 王羲之도 秦나라와 晉나라의 시속 글씨였습니다.'라고 말이다."
옛날에도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또 합니까? 당돌한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세 번 절로 화답한다. 예전 창힐은 천지만물의 형상을 살펴 글자를 만들었다. 그가 글자를 만들자 밤에 천둥번개가 치고 귀신이 울었다고 옛 기록은 적고 있다. 天機가 누설됨을 슬퍼한 것이다. 시인의 정신은 마땅히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시인은 자신의 노래로 귀신이 울게 해야 할 것이다. 제자 顔淵이 젊은 나이에 죽자 孔子는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며 아프게 울었다. 그러나 남은 글이 없으니 그의 상쾌한 정신은 만나볼 길이 없다. 내가 만약 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또 그가 나였다면? 시인의 기상은 모름지기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창힐의 정신으로 안연의 마음을 담는다면 옛날과 지금의 경계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때의 '지금'이었던 王羲之의 글씨가 후대 書家의 승묵이 되듯, '오늘' '여기'서 부르는 내 노래는 뒷날 詩家의 보석이 된다.
師其意 不師其辭
어떤 지금도 옛 것의 구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옛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것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그 껍질을 배우지 말고 그 정신을 배울 일이다. 唐代 古文운동을 제창한 韓愈에게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글을 지을 때 무엇을 본받아야 합니까?" "마땅히 옛 성현을 본받아야지." 그가 갸우뚱하며 다시 묻는다. "옛 성현이 지은 글이 다 남아 있지만 그 말은 모두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느 것을 본받아야 할지요?" "그 정신을 본받아야지, 그 말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이른 바 '師其意 不師其辭'의 정신이다. 〈答劉正夫書〉에 보인다. 또 그는 옛 사람의 정신을 본받되, '詞必己出'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은 자기 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陳言之務去'를 말한다.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 亞流의 길을 버려 새 길을 열라는 주문이다.
그 정신을 본받고 그 표현을 본받지는 말라니, 그럼 어찌하란 말인가? 다시 연암의 처방에 귀를 기울여 보자.
옛 사람에 독서 잘한 이가 있으니 公明宣이 그 사람이다. 옛 사람에 글 잘 지은 이가 있으니 淮陰侯 韓信이 그 사람이다. 왜 그런가? 公明宣은 曾子에게서 배운지 삼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않았다. 증자가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제가 선생님께서 집에 거처하시는 것을 보았고, 손님 접대하시는 것을 보았고, 조정에 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웠지만 아직 능히 하지 못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습니까?"
물을 등져 진을 치는 것은 병법에도 보지 못한 것이어서 여러 장수가 따르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이에 회음후가 말하기를,
"이것이 병법에 있지만 진실로 그대들이 살피지 못한 것일 뿐이다. 병법에 죽을 땅에 둔 뒤에 산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배우지 않음을 잘 배움으로 한 것은 魯男子의 獨居요, 부뚜막 늘인 것을 부뚜막 줄인 것에서 본뜬 것은 虞升卿의 知變이다.
그의 〈楚亭集序〉의 한 단락이다. 글 한 줄 안 읽은 公明宣이야말로 스승이란 책을 옳게 읽어낸 뛰어난 독서가이다. 다른 제자들이 옛 경전에 눈이 팔려 있을 때, 그는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 그와 같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장님하고 귀머거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장님이 이긴다. 눈에 뵈는게 없기 때문이다. 물에 빠져 죽으나, 칼에 찔려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인지라, 배수진을 친 한신의 군대는 죽기 살기로 趙나라 군대에 대항하여 싸웠다. 제식훈련 한번 제대로 받지 않은 오합지졸들을 부릴줄 알았던 한신의 용병술은 병법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겼다. 왜 그랬을까? 通變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신이야 말로 정말 멋진 문장가가 아닌가. 시도 이런 정신으로 써야 한다.
혼자 사는 노총각 옆 집에 살던 과부가 그에게 은근히 마음이 있었다. 어느 날 밤비에 그녀 집 담장이 무너졌다. 갈 곳이 없게 된 그녀가 그에게 하루 밤 재워 주기를 청했다. 노총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밤을 아무 일 없이 새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과부가 원망을 퍼부었다. 柳下惠라면 자신을 기꺼이 재워 주었을 것이라고. 노총각은 자신이 賢人 柳下惠의 초연한 경지에 미칠 수 없음을 잘 알았기에 일시의 원망을 들으며 자신의 몸을 깨끗히 지켰다. 때로 배우지 않고 거꾸로 하는 것이 제대로 배우는 것이 될 때가 있다. 표현은 달라도 알맹이는 같다.
同門인 魏나라 龐涓의 책략에 말려 앉은뱅이 병신이 된 孫撊은 齊나라로 달아나 軍師가 되었다. 이때 魏가 韓을 치자 合從의 약속에 따라 齊가 魏를 쳐 韓나라를 도왔다. 龐涓이 이를 듣고 韓나라에 들어갔던 군사를 돌려 齊나라 군대를 쫓았다. 손빈은 첫날 주둔지에 밥짓는 아궁이 자국을 10만 개를 만들었다. 다음날에는 5만개, 그 다음 날에는 2만 개로 줄였다. 사흘을 뒤쫓던 방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위나라에 들어온지 사흘도 못되어 제나라 군사 5분의 4가 겁 먹고 달아난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에 방심하여 기병만을 거느려 손빈을 뒤쫓은 방연은 馬陵에서 매복해 있던 손빈의 군대에 걸려 몰살 당하고 말았다. 後漢 때 虞升卿이 羌族의 반란를 진압하려 갔을 때도 그는 손빈의 부뚜막 작전을 써서 이겼다. 손빈의 전법을 쓰기는 썼는데, 그대로 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했다. 첫 날의 부뚜막 숫자를 다음 날엔 배로 늘리고, 그 다음날엔 다시 배로 늘였다. 羌人은 이를 보고 후방에서 속속 지원군이 도착하고 있는 줄로 알았다. 겁을 먹고 잔뜩 위축된 그들을 우승경은 적은 군대로 대패시켰다. 옛 것을 본받아라. 그러나 그 정신을 그 원리를 본받아야지, 형식을 본받아서는 안된다. 이 경우 원리란 무엇인가?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하여 적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형식이란 무엇인가? 부뚜막 숫자를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다. 손빈은 부뚜막 숫자를 줄여서 이겼지만, 우승경은 반대로 늘여 이겼다. 방법은 반대인데 이긴 것은 같다.
한신은 배수진을 쳐서 이겼는데, 임진왜란 당시 申砬은 배수진을 쳐서 참패 당했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왜병을 막고자 조정에서는 北邊의 명장 신립을 보내 문경 새재에 최후의 저지선을 구축코자 하였다. 무엇이 눈에 씌었던가. 그는 난데 없이 새재 방어선을 포기하고 4km를 물려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용감히 싸웠지만 日人의 조총은 유효사거리가 100보였고, 아군의 화살은 고작해야 50보였다. 군대는 몰살 당하고, 신립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임금은 황황히 밤중에 도성을 버리고 피난 길에 올랐다. 같은 배수진이었건만 한신은 이겼고 신립은 졌다. 왜 그랬을까? 通變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의 흉내나 내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독자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문학사는 여기에 침을 뱉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여라. 옛 길을 따르지 말라.
金澤榮은 그의 〈雜言〉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李忠武公이 거북선으로 일본을 깨뜨렸다는 것은 세상에서 늘상 하는 말이다. 그러나, 충무공이 일본과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적을 제압하여 이기는 계책이 千變萬化하여 계책을 내면 낼수록 더욱 기이했던 때문이지, 어찌 거북선이 한 것이겠는가? 만약 거북선 때문에 이겼다고 한다면 일본 사람들의 정교함으로 어찌 아침에 패배하고는 저녁에 본떠 만들지 않았겠는가?
과연 지당한 말이 아닌가. 원균이 이끌던 수군이 부산 앞바다에 고스란히 가라앉은 뒤에도 충무공은 거북선 한 척 없이 단 12척의 배로 승승장구 하던 일본 배 130척을 물리쳤다. 세계 해전사에 그 유례를 달리 찾을 길 없는 기적 같은 승리였다. 설사 우리 수군에게 거북선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충무공이 버티고 있는 한 왜병은 해상권을 결코 장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거북선이 아니다. 그것을 운용하는 장수의 용병술이다. 아무리 해박한 이론의 무장이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通變의 정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시를 쓰는데 이론은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더 많다. 우리 해군의 승리는 결코 거북선 때문이 아니다. 해마다 충무공호국얼을 선양한다는 단체의 주관으로 벚꽃 축제가 성대하게 벌어지는 해괴한 이 현실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바다 속에 묻힌 거북선이 아니라, 충무공의 그 거룩한 정신일 터이다.
도로 눈을 감아라
오늘날 한시에 대한 관심은 한갖 회고 취미나 골동품을 완상하는 호사는 아닌가? 더 이상 한시를 짓는 전문 시인이 배출되지 않는 현실에서 한시에 관한 담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국문학과의 교과과정을 보면 현대시론이나 현대소설론, 현대비평론 등의 강좌는 있어도, 한국시론이나 한국소설론, 한국비평론 등의 강좌는 찾아 볼 수 없다. 시론과 비평론은 꼭 '현대'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구의 문예이론을 전달한다. 독일문학비평사와 프랑스문학비평사, 중국문학비평사는 서점에 버젓히 꽂혀 있는데, 정작 볼만한 한국문학비평사는 한 권이 없다. 고작해야 그간 비평주제로 쓴 논문을 모아 엮은 것이 전부다. 문학사 강의는 언제나 고전문학사와 현대문학사가 따로 논다. 갑오경장이 없었다면 문학사는 어떻게 구분했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김옥균에게 감사하고픈 심정마저 든다.
우리에게 고급한 문예이론이 없었던가? 우리에게 깊이 있는 미학의 체계가 없었던가? 과거의 시학은 오늘의 시학에 아무런 처방이 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그것은 해독되지 않는 화일로 남아 있었을 뿐이다. 누구를 탓할 겨를도 없다. 옛 것을 오늘에 호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야말로 정말 요긴한 것이 아닐까? 저 韓愈의 '師其意 不師其師'의 정신을 환기한다면, 우리가 한시를 통해 퍼올릴 수 있는 샘물은 무궁무진하다. 기갈에 바짝 타는 목을 축이고 더위에 찌든 몸에 상쾌한 등목을 해줄 수 있다. 가야 할 미지의 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짧은 두레박 줄을 길게 늘이고, 먼 길에도 부르트지 않도록 신발을 고쳐 신어야 할 것이다.
건축과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는 자를 보면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다. 한쪽은 인치가, 한쪽은 센티가, 나머지 한쪽엔 또 다른 길이 단위가 표시되어 있다. 목욕탕에 가서 온도계를 보면 화씨로 되어 있다. 그러니 온도계가 100도를 가리키든 120도를 가리키든 정확한 온도 관념이 생기질 않는다. 몸무게가 얼마나 되시지요? 네 120파운드입니다. 고속도로를 시속 200마일로 달려 왔어. 이래서야 무게나 속도에 대한 관념이 바로 파악되지 않는다. 문예이론이나 미학 체계의 전달에도 건축과 학생들의 삼각형자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척으로 된 선인들의 이야기를 센티 자를 들이대어 재려고만 하니, 옛 사람들은 길이 관념이 없다는 푸념만 늘어놓게 된다. 눈금을 호환해 읽을 생각은 않고,연구자들은 문화의 차이나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최신의 서구 이론을 무작정 대입하는 연구를 낸다. 바슐라르 번역이 나오면 그 다음 해에 이 방법을 원용한 한시 연구가 출간된다. 동양과 서양의 상상력 체계의 차이는 애초에 고려에 넣지 않는다. 르네 지라르가 소개되자 고전소설 연구자들까지 덩달아 욕망의 삼각형에 매달렸다. 루시앙 골드만 때문에 문학사회학은 상종가를 달렸고, 또도로프에 매달리고 바흐찐에 압도 당했다. 그들은 언제나 아득히 먼 곳에 있었고, 우리는 따라가기만 바빴다. 그러는 사이에 푸코와 라캉이 나오고 데리다가 지나갔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우리가 숨가쁘게 쫓아 왔던 담론이 모두 거짓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얼떨결에 탈식민주의가 새삼스럽게 대두하고 동아시아 문화를 제대로 읽자는 목소리도 높아 간다. 그렇지만 그런가?
그래서 이번에는 자척으로 설명하겠다고 나선다. 그렇지만 미안하게도 그 이야기는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한시 연구에서 논문을 쓰자는 것인지 위인전을 쓰고 있는 것인지 분간 안되는 연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애나 역사 배경을 주욱 늘어 놓고, 거기에 작품을 꿰어 맞춰 일대기적 구성으로 재배열하거나, 자기가 연구하는 시인이 언제나 최고가 되는 당착은 고치기 힘든 병폐가 된지 오래다. 툭하면 현실인식이고, 입만 열면 역사의식을 말한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문학성이 담보되지 않은 의식이란 대자보나 설교와 무엇이 다른가? 미의식의 부재는 문학성의 검증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가뜩이나 한문 해독의 부담을 지고 가는 터에 미학의 잣대마저 흔들리니, 이번에는 아예 인치를 가지고 자척을 재려 드는 격이 되고 만다.
이 책의 맨 처음을 연암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연암으로 끝 맺겠다.
본분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요? 일체의 모든 일이 모두 그렇지요. 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答蒼厓 2〉이다. 20년 만에 눈이 열린 장님에게 다시 눈을 감으라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기적 같이 열린 광명한 세상을 거부하란 말인가? 연암이 던지는 이 새로운 화두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을진대, 내 집을 찾아가지 못할진대 열린 눈은 망상이 될 뿐이다. 소화하지 못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우리야말로 '눈뜬 장님'이 아니었던가.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서구의 빛깔과 형상에 망상을 일으켜, 어느 골목이 바른 골목인지, 어느 집 대문이 제 집인지도 모르고 길가에서 망연자실 울고 있는 눈뜬 장님이 아니었던가. 아니 우리는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울고 서 있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눈뜬 장님은 아니었던가.
연암은 간명하게 일러준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네 집을 찾으리라. 나는 그의 이 말을 외래의 것을 버려 자신의 小我 속에 안주 하라는 말로 듣지 않는다. 주체의 자각이 없는 현상의 투시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내가 본래 있던 그 자리, 미분화된 원형질의 상태로 돌아가라. 눈에 현혹되지 말라. 네 튼튼한 발을, 네 듬직한 지팡이를 믿어라. 갑자기 눈이 열리기 전 내 앞에 놓여 있던 세계, 익숙해져 있던 세계, 나와 사물 사이에 아무런 간극도 없던 세계로 돌아가라. 그 세계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래의 제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차차 새롭게 열리는 빛의 세계를 바라 볼 일이다. 문학은 발전하는가. 다만 변화해 왔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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