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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슬픔, 情詩의 세계

천하한량 2007. 5. 15. 17:08
사랑의 슬픔, 情詩의 세계

정서란 애초에 모든 것이 충족된 속에서 터져나오는 법이 없다. 소중한 '무엇' 밖에 놓여 있다는 생각, 안겨야 할 '어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마음에서 정서는 비로소 움터 나온다.

담장가의 발자욱

사랑은 아름답다.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프다. 평소 한시를 고리타분하게만 생각하다가 막상 가슴 저미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한 情詩를 대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艶情詩 또는 香嶢體라고도 불려지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情詩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비단 버선 사뿐 사뿐 가더니만은
중문을 들어서곤 아득히 사라졌네.
다정할 사 그래도 잔설이 있어
그녀의 발자욱이 담장 가에 찍혀 있네.
凌波羅襪去翩翩
一入重門便杳然
惟有多情殘雪在
壷痕留印短墻邊

姜世晃의 〈路上所見〉이란 작품이다. 길을 가다 앞서 가는 어여쁜 아가씨의 뒷 모습에 넋을 놓고 만 연모의 노래다. 사뿐사뿐 걸어가는 아가씨의 모습에 그만 저도 모르게 뒤를 쫓아 왔건만 무정하게 그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대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굳게 닫힌 대문 앞에 무연히 갈 길도 잊은 채 그는 서 있다.

혹시 다시 나오지는 않을까. 담장 너머로나마 그 모습을 한번 더 볼 수는 없을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서성이다가, 채 녹지 않은 담장 밑 그늘의 잔설 위로 너무나 또렷히 찍혀 있는 그녀의 발자욱을 보았다. 눈 위의 발자욱, 그녀가 남기고 간 발자욱. 그러나 그녀가 밟고 간 것은 눈 아닌 그의 철렁 내려 앉은 가슴은 아니었을까. 4구의 낮은 담장이란 표현에는 까치 발로 돋워 들여다 보고픈 설레임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녀는 바깥문 만이 아니라 중문까지 닫아 걸었으니. 잔설 위에 선명하게 남겨진 무심한 사랑의 모습 앞에 연모의 불길만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맑은 새벽 목욕을 겨우 마치고
거울 앞에 앉아서 몸 가누지 못하네.
천연스레 너무나 고운 그 모습
화장하지 않았을 때 더욱 어여뻐.
淸晨瀮罷浴
臨鏡力不持
天然無限美
摠在未粧時

崔瀣의 〈風荷〉란 작품이다. 由物及人 하는 연상과 교묘한 암유가 담겨 있다. 이른 아침 물을 덥혀 목욕을 마친 아가씨는 단장을 하려고 거울 앞에 앉았다. 그러나 나른하게 힘이 쪽 빠져 그녀는 거울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다. 거울에 비치는 갓 목욕한 함초롬히 젖은 살결과 촉촉한 머리결은 마치 연못 위로 봉긋 꽃망울을 터뜨린 연꽃의 환한 아름다움을 연상시키기에 족하였다. 그 청초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화장을 하면 지워질 것만 같다.

작품의 제목은 연꽃이고, 시의 내용은 목욕 후에 거울 앞에 앉은 여인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시의 연상과 암유이니 이를 두고 여인에 비겨 연꽃을 노래한 것인지, 연꽃에 비겨 여인을 노래한 것인지를 따지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제목과 내용 사이에 의도적 단층을 둠으로써 시의 함축이 그만큼 유장하게 되었다.

그네 줄 발을 굴러 공중에 솟구치니
바람 받은 두 소매 당긴 활등 같구나.
높이 높이 오르려다 치마 자락 타져서
수 놓은 꽃신 끝이 드러난줄 몰랐네.
劈去秋千一頓空
飽風雙袖似彎弓
爭高不覺裙中綻
倂出鞋頭繡眼紅

朴齊家의 〈春詞〉이다. 오월이라 단오를 맞아 그네 뛰는 아가씨.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그네는 점점 높아만 간다. 한 번 구르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의 세상은 벌써 저 만치 발 아래고, 지난 겨우내 이런 저런 근심과 봄날의 노곤하던 설레임도 앞섶을 헤적이는 바람 앞에는 이미 간 곳이 없다. 아가씨는 흥이 나 몸을 잔뜩 도사린다. 재겨 구르는 그녀의 소매는 한껏 바람을 머금어 시위를 놓으려는 활인양 팽팽하다. 마치 가위로 천을 경쾌하게 가르듯 허공을 가르며 솟구치는 그 신명. 더 높이 하늘 끝까지 솟구쳐 보자꾸나. 신명에 빠진 마음은 아뿔싸 바람이 치마 자락을 헤집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 틈에 드러난 새로 신은 唐鞋의 붉고 고운 繡, 그 선연한 붉은 빛. 치마 자락이 펄럭였으니 신발의 코 끝만 보였을까 마는, 여운이 있으면서도 절제하는 시선 속에 풋내 나는 연정이 익어가고 있다. 수사의 묘는 바로 이렇듯 말할듯 다 말하지 않는데서 생겨난다.

야릇한 마음

5월이라 야계엔 날씨가 화창하고
야계의 아가씨는 다리도 희고 곱네.
어울려 야계 위에서 연밥을 따니
파아란 머리 장식 햇볕 받아 반짝이네.
연밥은 따고 따도 한 줌 안되고
백사장 쌍쌍 원앙 샘이 나누나.
원앙은 짝져 날고, 내 님은 못 만나
노 저어 돌아오며 속상해 하네.
耶溪五月天氣新
耶溪女子足如霜
相將採蓮耶溪上
翠微압葉輝艶陽
採採蓮花不盈堯
却妬沙上雙鴛鴦
鴛鴦雙飛不得語
蕩瀀歸來空斷腸

成侃의 〈採蓮曲〉이다. 5월 화창한 여름 날, 야계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희고 고운 다리를 드러내고 연밥을 캐고 있다. 그녀의 파란 머리 장식이 햇볕에 반짝이며 푸른 물 위에 비쳐지니, 그 선연한 아름다움은 비길 데가 없다. 캐고 캐도 한 줌이 되지 않는 연밥은 그녀의 마음이 영 딴 데 가 있음을 말해준다. 그녀는 그저 건성으로 되는대로 연밥을 따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연밥 따는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의중의 연인이었다. 그래서 백사장에서 쌍쌍이 노니는 원앙새가 샘이 난 것이다.

서로 짝을 지어 목을 부비며 사랑을 속삭이는 원앙새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연밥을 따러 와 사랑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려 하였는데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문득 혼자서 하릴 없이 청춘의 때를 보내고 있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에 그만 속이 상하고 말았던 것이다.

담박한 마음으로 정숙을 생각해도
산골 너무 적막하여 사람 하나 뵈지 않네.
아름다운 풀잎도 꽃 피울 생각는데
이 젊은 청춘을 장차 어찌 할거나.
化雲心兮思淑貞
洞寂寞兮不見人
瑤草芳兮思芬殠
將奈何兮是靑春

薛瑤의 〈返俗謠〉로 《全唐詩》에 실려 전한다. 구름은 유유자적하다. 아무 데도 얽매인데 없이 자유자재하다. 구름은 욕심이 없다. 집착도 없다. 처음 그녀는 구름과도 같은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산 속에 들어 머리를 깎고 수도의 길로 정진하였다. 부처님 전에 나아가 생각을 맑고 곧게 하고 삶의 참 이치를 깨닫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적막한 산 중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뵈지 않고, 그녀의 약동하는 청춘은 무엇보다 그 쓸쓸함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이 산 중에서 나는 홀로 이렇듯 지내는가. 저 봄풀을 보아라. 저들도 그 싱그러움을 뽐내며 꽃을 피우고 있질 않은가.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끼리 어깨를 부비며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나는 이를 굳이 마다하고 깊은 산 중에서 이 아름다운 청춘의 때를 사르고 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친 그녀는 여섯 해 동안의 산중 생활을 스스로 그만두고 환속하고 말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신라의 左武衛將軍 承沖의 딸이었는데 나이 열 다섯에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그러나 여섯 해 뒤 이 노래를 부르며 환속하여 郭元振의 아내가 되었다 한다. 청춘의 감정은 출렁이는 물결과도 같다. 가두면 가둘수록 더욱 거세어진다. 이를 굳이 가두어 잔잔하게 하려는 모든 노력은 어찌 보면 부질 없는 짓이다. 감정의 일렁임을 억제하려는 집착이 또 하나의 미망을 낳는다. 3구의 '꽃다운 瑤草'는 그녀의 이름이 '瑤'인 것을 환기하면 雙關의 의미가 있다.

백면서생 도련님 준마 타시고
낙교 서쪽 길로 답청놀이 나오셨네.
미인은 싱숭생숭 마음 야릇해
담장 너머 고개 들어 웃음 보내네.
白面書生騎駿馬
洛橋西畔踏靑來
美人不耐懷春思
擧上墻頭一笑開

成侃의 〈檾陽詞〉이다. 청춘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정은 예와 지금이 다를 수 없다. 훤한 얼굴에 수려한 용모의 도련님이 준마를 타고 봄 나들이를 나섰다. 낙교의 서쪽 물가라 했으니 번화한 도성 근처의 야외임을 알 수 있다. 답청이란 새로 돋은 푸른 풀 위를 걷는 봄날의 흥겨운 산보이다. 바깥 구경 하는 법 없이 글방에서 공부만 하던 도련님도 일렁이는 봄날의 흥취를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 위에 오똑하니 앉아 곁눈질도 하지 않고 도도하게 걸어가는 그 모습이 그만 길가 집 처녀의 시선을 사로 잡고 말았다. 그녀 또한 답답한 봄날의 무료를 견디지 못하고, 호기심에 겨운 눈길로 때 마침 길가를 내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세상 풍파라고는 겪어 본 일이 없는 듯한 깨끗한 얼굴과 늘씬한 말의 기상은 첫눈에도 그가 권세가의 귀공자임을 말해 주고 있다. 두근대는 가슴, 봄날의 풋내나는 사랑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
마음 속 충정을 재잘대며 얘기하네.
님이여 내 나이를 묻지를 마오
오십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澹掃蛾眉白苧衫
訴衷情話燕媀姜
佳人莫問郞年歲
五十年前二十三

사랑의 감정에는 나이가 없다. 해학스러우면서도 함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눈썹을 곱게 그려 단장하고 흰 모시 적삼을 청결하게 입은 여인이 연신 마음 속의 이야기를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이를 묻지 말라는 말로 말문을 돌렸다. 그래 놓고는 하는 말이 오십년 전에는 나도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고 하였다. 묻지 말라고 해 놓고 스스로 대답하는 밀고 당기는 수사의 묘가 재치롭다. 지금 그의 나이는 일흔 셋이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스물 셋의 한창 나이였다면 그녀와 멋진 로맨스를 이루어 보기라도 할텐데 하는 아쉬움을 그렇게 달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앞의 오십살은 없는 셈 치고 멋진 사랑을 이루어보자고 다짐하고 있는 듯도 싶다.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와 손녀 뻘도 더 되는 젊은 아가씨 사이의 이러한 사랑 노래는 오히려 읽는 이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머물게 한다. 申緯가 卞僧愛란 기생에게 주었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보름달 같은 님

모란 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은데
미인이 그 꽃 꺾어 창 가로 와서,
방긋이 웃으면서 님께 하는 말
"꽃이 어여쁜가요, 제가 어여쁜가요?"
신랑은 일부러 장난 치느라
"꽃이 훨씬 당신보다 어여쁘구료."
그 말에 미인은 뾰로통해서
꽃 가지 내던져 짓뭉개더니,
"꽃이 진정 저보다 좋으시거든
오늘 밤은 꽃과 함께 주무시구료."

牧丹含露眞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彊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與宿

신혼부부에게만 있을 수 있는 사랑 싸움을 재미 있게 엮어낸 시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이 뜨락 가득 활짝 피었다. 꽃잎엔 진주알처럼 맑은 이슬이 송글송글 맺히었다. 이슬을 머금었다 하였으니 그녀는 햇살이 고운 이른 아침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님을 남겨 두고 넘치는 사랑에 겨워 꽃밭에 나선 참이었던 것이다.

문득 장난기가 동한 그녀는 탐스런 모란꽃 한 송이를 꺾어 창가로 와선 님을 불러 물어 보았다. 꽃을 꺾어 옆에 들고 물어 보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신랑은 일부러 장난을 걸었다. 아니 장난을 걸어 온건 그녀 쪽이 먼저였다. 꽃이 훨씬 예쁘다는 신랑의 장난에 그녀는 그만 새초롬해져서 꽃을 내던져 발로 마구 밟으며 톡 쏘았다. 꽃이 그렇게 어여쁘면 앞으로는 꽃하고 살라고 말이다. 기나 긴 그리움과 설레임 끝에 이룬 사랑은 이렇게 달콤하다. 《大東詩選》에는 지은이를 李奎報라 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의 문집에는 보이지 않는다. 제목은 〈折花行〉이다.

제 마음 일편단심 대나무 같고
님의 마음 둥그런 달과 같아요.
둥근 달은 찼다가도 기운다지만
대 뿌리는 얼키설키 서려 있지요.
妾心如斑竹
郞心如團月
團月有虧盈
竹根千萬結

成侃의 〈岝箧曲〉이다. 소상강의 斑竹과도 같은 일편단심 곧은 자신의 절개를 말하고는, 님의 마음은 온 누리를 환히 비추이는 환하고 둥근 달과 같다고 추켜 세웠다. 이렇게 보면 누리를 비추는 고결한 달의 모습을 향한 대나무의 일편단심을 노래한 것이어서 격이 서로 잘 어울린다. 그러나 님을 환한 보름달로 잔뜩 추켜 세운 것은 기리자는 것이 아니다. 달은 어떤가. 가득찬 보름달이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초승달이 되고 또 그믐이 되지 않는가. 오늘 보름달의 광휘는 며칠 후면 스러지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나무의 뿌리만은 달의 차고 기움에 관계 없이 땅 밑 깊은 곳까지 얼키설키 서리어 변할 줄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언제 변할 줄 모를 님의 얄궂은 심사 앞에 님을 보내기 싫은 여인의 마음이 애교있게 펼쳐져 있다. 이 시의 재미는 바로 3구의 반전에 있다. 처음 추켜 세우는듯한 어조를 취하다가 이를 극적으로 뒤집음으로써 미감이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달래고 얼르는 억양법이다.

그러나 이별은 예고도 없이 불현듯 찾아든다. 변치 않겠노라던 전날의 언약이 있기에 이별은 더욱 서럽다.

새벽녘 등불은 얼룩진 화장 비추는데
이별을 말하려니 먼저 애가 끊어지네.
달도 다 진 새벽 녘에 문 열고 나서려니
살구꽃 성근 그림자 옷깃에 가득해라.
五更燈燭照殘粧
欲話別離先斷腸
落月半庭推戶出
杏花疎影滿衣裳

鄭礝의 〈別情人〉이란 작품이다. 이별을 앞둔 남녀의 정황이 눈물 겹다. 오경의 등불은 새벽에 일어나 켠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날이 새면 서로 헤어질 것이 아쉬워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날이 새면 나는 사랑하는 여인을 남겨 두고 기약 없는 먼 길을 떠나야만 한다. 이별이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애부터 끊어진다.

처음 마주 앉았을 때 동산 위로 떠오르던 달은 이제 어느 새 서편으로 기울어 마당 위에 가득하던 달빛도 이제 반 밖에 남질 않았다. 달이 지면 해가 뜨고, 해가 뜨면 헤어져야 한다. 달도 지지 않아 문 밀고 나선 것은 갈 길이 먼 까닭이다. 서둘러 문을 밀고 나서는 내 옷깃 위로 살구꽃의 성근 그림자가 가득 어린다. 꽃 그림자가 성글다 했으니 좋은 봄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옷깃 가득히 어려오는 꽃 그림자는 그럼에도 잊지 못할 아름답던 지난 날에 대한 가슴 가득한 그리움이다.

진 꽃잎 볼 적마다

장흥동 어귀에서 헤어지고는
승학교 다리 께서 애를 끊누나.
헤어진 뒤 저물 녘 방초 길에서
진 꽃잎 볼 적마다 우리 님 생각.
長興洞裏初分手
乘鶴橋邊暗斷魂
芳草夕陽離別後
落花何處不思君

權鵬의 여종 琴哥의 시이다. 제목은 〈離別〉이다. 장흥동은 서울 남쪽의 지명이다. 불과 조금 전에 장흥동 어귀에서 님과 헤어졌던 그녀는 근처 승학교를 건너며 벌써 그리움에 애가 끊어진다. 바로 눈 앞에서 바라보고 있어도 그리운 것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사랑에 겨운 봄날의 한 때를 보내고 난 꽃잎들이 분분히 지고 있다.

진 꽃잎으로 떠나가는 봄날을 보내며 방초길을 거니는 그녀의 마음은 노을 빛이다. 노을 빛에는 님을 향한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영상이 가득하다. 그녀는 떨어진 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때의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시들어 떨어진 꽃, 그 꽃의 모습 위에 자신의 청춘의 한 때를 겹쳐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에는 또 그녀의 불안한 심정이 담겨 있다. 봄날을 아름답게 수 놓던 꽃이 추하게 져서 땅에 떨어지듯 청춘의 때도 얼마가지 않아 시들어 버릴 것이다. 그때에도 님은 나를 사랑하실 것인가. 그녀가 진 꽃을 보며 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제가 가진 마름꽃 거울을 보면
그대가 처음 줄 때 생각이 나요.
님은 가고 거울만 홀로 남으니
다시는 거울 보며 화장 않으리.
妾有菱花鏡
憶君初贈時
君歸鏡空在
不復照蛾眉

崔奇男의 〈怨詞〉이다. 능화 무늬 장식이 새겨진 거울을 바라보는 여인. 그녀는 예전 사랑을 속삭이며 그 거울을 내게 사 주었던, 그러나 이제는 가고 없는 떠나간 님의 생각에 잠겨 있다. 님이 거울을 내게 주신 것은 그 거울을 보며 아름다움을 가꾸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님이 떠나고 없는 지금에 와서 아름다운 치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녀는 추억을 곱씹으며, 단장하여 어여쁜 모습을 보여줄 사람도 없는 자신의 외로운 처지와, 그 거울 앞에 앉아 설레이며 정성껏 단장을 하던 자신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며 슬픔에 잠겨 있다. 가슴에는 원망이 내려 쌓인다.

바람 어느덧 화창해지고
밝은 달 빗기는 황혼 무렵에,
끝끝내 안 오실 걸 잘 알면서도
오히려 문을 닫아 걸지 못하네.
春風忽태蕩
明月又黃昏
亦知終不至
猶自惜關門

제목은〈待情人〉으로 실명씨의 작품이다. 봄바람이 화창하게 느껴지니 봄도 무르익었다. 봄날의 하루 해는 또 그렇게 저물어 가고, 남의 속도 모르고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행여나 오늘은 오시려나 싶어 하루 종일 사립문을 부여잡고 님 소식을 기다리던 여인은 결국 님을 맞지 못한 채 또 하루를 보내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오마고 약속하며 떠났던 님, 그러나 그 봄이 다가도록 님은 오시질 않는다. 그녀는 봄이 오기도 전부터 행여 님이 오실까 싶어 날마다 기다림으로 하루 하루를 채워 왔었다. 이제는 그녀도 님이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안다. 여심은 그래도 혹시 오실까 싶은 안스러운 미련 때문에 휘영청 달이 뜨락을 훤히 밝히도록 사립문을 닫아 걸지 못하고 있다. 1구의 '忽'은 새삼 계절의 빠름에 놀라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안타까운 기다림 속에 청춘의 꿈도 시들어간다.

밤은 깊어 오경이 가까웠건만
뜨락 가득 가을 달은 밝기도 하다.
이불 쓰고 억지로 잠을 청해도
님의 곁에 이르면 깨고 말았네.
夜色痸痸近五更
滿庭秋月正分明
撛衾强做相思夢
才到郞邊却自驚

金三宜堂의 〈夜深詞〉이다. 오경이 가까웠다 했으니 그녀는 지금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온 뜰을 환히 비추는 달빛, 그 달빛 아래에선 조그만 것 하나 보이지 않을 것이 없다. 그녀는 혹 달빛 비친 환한 뜨락으로 님이 성큼성큼 들어서실 것만 같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오시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내다보는 마음은 비참하다.

달빛은 그리움의 빛깔처럼 뜨락을 환히 비추이다가 점점 그림자를 길게 누이며 서편으로 떨어져 간다. 달빛이 사위어지듯 그녀도 기진하여 자리에 누웠지만, 정신은 더욱더 또렷해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피곤에 지쳐 깜빡 잠이 들기도 하지만 님을 만나 무슨 말을 하려 하면 한 마디 채 건네기도 전에 놀란 잠이 깨고야 말았다. 님을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고대했는데, 정작 만나선 한 마디도 하지 못한 것이 깨고 나서도 그녀는 말할 수 없이 아쉬웠다. 생시엔 님을 만날 도리가 없어 밤 마다 꿈길을 찾아 나서는 마음, 이것이 사랑의 마음이다. 그렇게 어렵게 님을 만나고선 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놀랍고 두근거려 꿈을 깨버리고 마는 것, 이것이 그리움의 마음이다.

까치가 우는 아침

약속을 하시고선 왜 안오시나
뜨락의 매화 꽃도 시드는 이 때.
나무 위서 까치가 울기만 해도
부질 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忽聞枝上鵲
虛畵鏡中眉

李玉峯의 〈閨情〉이란 작품이다. 절망의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이 다 가도록 금새 오마던 님은 돌아올 줄 모른다. 저 매화 꽃이 지기 전에는 오셔야 할 텐데. 봄이 되면 온다던 님이 꽃마저 지면 영영 안오실 것만 같아 여심은 공연한 조바심을 지우지 못한다. 꽃 망울이 부프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꽃이 피면 님이 오마고 했으므로. 그런데 정작 꽃이 피자 이제는 님이 오시기도 전에 시들까봐 조마한 가슴을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매화꽃이 질 때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될 무렵인데도 그녀의 마음은 벌써 봄이 다 가버린 것만 같아서 다급하기만 하다.

아침 까치가 울면 귀한 손님이 온다고 했다. 까치 소리가 날 때마다 행여 님이 오실 것만 같아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눈썹을 고친다. 그러나 헛손질이 잦아질수록 그녀의 불안도 깊어만 간다.

근래에 안부는 어떠신지요
사창에 달 떠오면 사무치는 그리움.
꿈 속 넋이 만약에 자취 있다면
문 앞의 돌 길이 모래로 변했으리.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便成沙

李玉峯의 〈贈雲江〉이다. 근래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보아 님이 그녀를 찾은 것이 이미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달 떠오는 밤 사창 속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말하여, 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3.4구의 과장된 언술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그녀는 밤마다 님을 만나러 길을 나서니, 만일 꿈 속의 일이 자취로 남는다면 그 많은 밤마다의 꿈은 집 앞의 돌 길이 다 닳아 모래로 변하기에 충분하리라는 것이다. 남들이야 편히 잠 잔다고 할 줄 몰라도 굳이 잠을 청하는 것은 졸음이 와서가 아니다. 꿈 길 밖에는 님을 만날 길이 없으니, 꿈에서라도 만나기 소원인 때문이다. 李明漢의 시조에 위 시와 꼭 같은 내용이 보인다. 즉,

꿈에 다니는 길이 자최 곳 나랑이면
님의 집 창 밖에 石路라도 달으련마는
꿈길이 자최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라 한 것이 그것이다. 초장과 중장은 위 시 3.4구와 그대로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봄 바람 버들가지 휘날리우고
그림 다리 서쪽에 해가 기울제,
나는 꽃 어지러운 꿈 같은 봄 날
슬프다 방주에 님은 안오네.
搖蕩春風楊柳枝
畵橋西畔夕陽時
飛花幹亂春如夢
癣璥芳洲人未歸

李廷龜의 〈柳枝詞〉다섯 수 가운데 한 수다. 봄 바람이 버들가지를 간지르며 흩날리우는 정경을 뒤로 하고 다리 저편으로 봄날의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저무는 해의 잔광 속에서 봄날을 빛내던 꽃잎들도 분분히 진다. 어지러히 날리어 땅 위로 떨어지는 꽃잎, 아름답던 봄날은 진정 한바탕 꿈이었던가.

아지랑이 나른하던 봄이 다 지나도록 지난 날 방주에서 아름답던 사랑을 속삭이던 그 님은 소식도 없고, 하루를 일년 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꽃답던 마음도 날리우는 꽃잎 따라 땅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꽃잎이 다 진 뒤 내 청춘이 다 간 뒤 그때에 가서 님이 돌아오신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지랑이 흔들리는 봄 날 저물녘의 원경 위로 분분히 떨어지는 낙화, 그녀의 눈물은 이미 말라 버렸다.

슬하에 아이는 말을 갓 배우겠고
부엌의 늙은 종은 양식이 없다겠지.
정원엔 황량하게 가을 풀이 돋았겠고
날로 여윌 그 모습이 눈에 선하네.
膝下孩兒新學語
爬門老婢舊懸瓢
林園廖落生秋草
想見容華日日凋

그리움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奇遵이 귀양 가 있을 때 멀리 아내를 그리며 지었다는 〈懷妻〉란 작품이다. 먼 변방에서 귀양살이 하던 가장은 애써 잊으려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가족들 생각에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다. 귀양올 때 뱃 속에 있던 아이는 지금 쯤은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 자식의 얼굴을 모르는 아비도 있던가. 나 없는 집의 살림은 얼마나 군색할 것인가. 계집종은 부엌에서 떨어진 양식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주인 없는 정원은 버려진 채 잡초만 무성할 게고, 그 위에 시름 겨운 아내의 모습조차 겹쳐지니 견딜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아내의 모습도 젊고 예쁜 모습이 아니다. 어느새 세상 시름에 이마엔 주름이 잡히어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었던가. 이런 저런 생각에 그는 또 밤을 하얗게 새우고 만다. 더욱이 자신은 나라에 죄를 지은 몸이었다. 아! 언제나 다시 만나 오순도순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도리를 다하며 살아볼 것인가. 그날이 진정 오기는 할 것인가.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情詩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남정네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난 아내이기에 가슴에 저미는 아픔이 유난스럽다. 이런 시를 망자를 애도하는 시라 하여 悼亡詩라고도 하는데 몇 작품을 함께 보기로 하자.

시집 올 제 해온 옷이 반너머 그대로니
궤를 열고 살펴보다 더욱 맘을 상하네.
평생 좋아 하던 것을 함께 담아 보내서
빈 산에 다 맡기니 티끌되어 스러지라.
嫁日衣裳半是新
開箱點檢益傷神
平生玩好俱資送
一任空山化作塵

李喝의 〈婦人挽〉이다.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 버리고, 땅에 묻으려고 아내의 옷가지를 뒤적이다 목이 메이고 만 노래다. 아내의 옷 상자를 꺼내어 보았다. 시집 올 때 지어온 옷이 반 너머 그대로다. 아껴 입느라고 그랬던가. 겨우 이렇게 살다 가고 말 것을. 시집 올 때 옷이 반 너머 그대로라고 했으니 그녀가 아직 청춘의 나이임을 알 수 있다.

시집 올 때 한 벌 한 벌 새로 옷을 지을 때야 어찌 이것이 한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관 속에 들어가 주인과 함께 흙 속에 묻히고 말 것을 생각이나 했으랴. 그밖에 노리개와 패물이 모두 만져보매 눈물 겹고, 들여다 보매 생시의 모습이 훤히 떠올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싸서 그녀의 관에 함께 묻었다. 아끼어 입지 않고 장농 깊이 넣어둔 옷이 죽음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부질 없이 관의 빈 곳을 채워 주인과 함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죽은 아내의 옷과 아끼던 물건들을 모두 함께 관 속에 넣은 뜻은 그녀와의 다정했던 기억 마저 아내와 함께 떠나 보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날 다정했던 사랑의 기억이야 어디 땅에 묻는다고 잊혀지겠는가.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聊將月老訴冥府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有此心悲

金正喜의 〈配所輓妻喪〉이다. 이 시는 추사가 만년 제주도에 유배 갔을 당시 지은 시이다. 絶海孤島 제주도에서 실의의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늙고 병든 노정객에게 아내의 부고가 날아 들었다. 오랜 세월 부부의 인연으로 지냈던 나날들. 자신의 귀양 소식에 아내는 얼마나 낙담하고 절망했던가. 끝내 그 절망을 지우지 못하고 아내는 그렇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돌아보면 예술도 명예도 덧없는 것이었다. 정작 평생을 함께 보낸 아내의 죽음에 가서 곡 한 번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는 기가 막히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였다.

첫 구에서는 월하노인에게 부탁해서 이 기막힌 심정을 저승에 하소연 하겠노라 했다. 월하노인은 중매의 신이다. 전생에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을 맺어 주어 현생에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나버린 지금엔 백년해로의 언약을 저버린 그녀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월하노인에게 내세엔 부부를 바꾸어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소연하겠다 했다. 왜. 내세에는 삶과 죽음을 바꾸어 지금의 이 기가 막힌 심정을 그대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죽은 이는 그렇듯 훌쩍 떠나면 그 뿐이겠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하염 없는 슬픔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옛 시조에도 위 시와 비슷한 작품이 있다.

우리 둘이 後生하여 네나되고 내너되어
내너 그려 긋던 애를 너도 날그려 긋쳐보렴평생에 내 설워하던줄을 돌려볼가 하노라
곱던 모습 아련히 보일듯 사라지고
깨어 보면 등불만 외로히 타고 있네.
가을 비가 잠 깨울 줄 진작 알았더라면
창 앞에다 오동일랑 심지 않았을 것을.



玉貌依稀看忽無
覺來燈影十分孤
早知秋雨驚人夢
不向窓前種碧梧

李瑞雨의 〈悼亡室〉을 보자. 오동잎에 듣는 성근 가을 비 소리에 잠이 깨었다. 깨고 보면 등불만 외로히 제 살을 태우고 있는 밤. 등불을 켠 채 든 잠이니, 불면의 시간 아지못할 허전함과 외로움에 뒤척이다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꿈인듯 생시인듯 어여쁘던 아내의 모습을 보았건만 문득 깨고 보면 그 모습은 어디서고 찾을 길이 바이 없다.

안타까운 그의 꿈을 깨운 것은 야속할 사 오동잎에 듣는 빗발이었다. 꿈을 깬 그는 오늘 따라 유난히도 오동잎이 원망스러웠다. 그 벽오동은 왜 심었던가. 뜨락에 심어 봉황을 깃들이고, 그 상서로움 속에 오순도순 정답게 살자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내가 세상을 뜨고 없는 지금에 지난 날의 정답던 약속은 하염 없는 눈물과 탄식만을 자아낼 뿐이다. 金尙容의 시조에,

오동에 듯난 빗발 무심히 듣건마는
내 시름 하니 잎잎이 愁聲이로다
이후야 잎 넙운 나무를 심을 줄이 있으랴

라 하였다. 깊은 밤 넓은 오동잎에 듣는 빗소리는 얼마나 상쾌할까 마는 마음에 근심이 있어 들으니 소리마다 근심을 자아낼 뿐이라는 것이다. 위 시에서 댓닢에 듯는 빗소리도 여늬 때면 더위를 가셔 줄 시원한 그 소리가 님 그려 잠 못드는 밤에는 괴로운 소음이 됨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또 이은상은 〈밤 빗소리〉란 작품에서,

천하 惱苦人들아 밤 빗소리 듣지 마소

두어라 이 한 줄밖에 더 써 무엇 하리오.

라 하였다.

휘장 향내 스러지고 거울 먼지 쌓였구나
닫아건 문 안엔 복사꽃만 적막해라.
누각에는 그때처럼 달 떠있건만
발을 걷고 같이 볼 사람이 없네.
羅浈香盡鏡生塵
門掩桃花寂寞春
依舊小樓明月在
不知誰是捲簾人

李達의 〈悼亡〉이다. 주인을 잃은 빈 방을 찾아 보았다. 그렇게 훌쩍 가버린 아내의 체취가 그리워서였다. 그러나 주인 잃은 거울 위엔 먼지만 자옥히 쌓여 있고, 휘장에는 향내마저 스러진지 오래다. 사람 없는 빈 방은 이다지도 적막한가. 나갈 일 없어 닫아건 문 가엔 예전처럼 복사꽃이 피었고, 달빛 받아 그 꽃잎은 곱기도 한데 그 꽃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적막하기만 하다. 아내가 곁에 없는 지금 봄이 온들 무엇하며 꽃이 핀들 무엇하리. 엘리어트는 그의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였다. 대지 위에 새롭게 피어난 꽃들과 봄날을 노래하는 새들, 이런 것들로 대지는 새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지만 황무지와 같은 마음 속에 그것들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련한 옛 기억을 무참하게 일깨워 줄 뿐인 것이다.

달은 예전 그대로 복사꽃잎을 비추이며 떠올랐건만, 그 밤 함께 발을 걷어 올리다 탄성을 발하던 그 님은 이제 내 곁에 없다. 남정을 잃은 아낙의 마음은 오히려 매섭다. 그러나 아내 잃은 남정의 마음은 애처롭기만 하다. 2구의 닫아건 문은 바깥 일에 흥미를 잃은 실의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 변함 없는 자연과 덧없는 인간사가 3.4구에서 교차되면서 2구의 적막한 심사를 고조시키고 있다.

안개 끼고 비 내리는 초가을
솟아나는 근심 금할 길 없어
그대와 만나던 강가 술집 찾았으나
사람은 간 곳이 없네.
꽃도 말이 없고
물만 부질 없이 흐르는데
다만 돛대 위엔 한 쌍의 제비가 있어
날더러 머물러 있으라 하네.
淡煙疎雨新秋
不禁愁
記得靑嶤江山酒樓
人不住
花不語
水空流
只有一雙檣燕
肯相留

王庭筠의 〈烏夜啼〉란 작품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강가에 안개가 자옥하게 서리고, 가슴 속에선 뭉게뭉게 솟아나는 근심이 있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회한, 다시 못 올 그 날에 대한 그리움들이 한데 엉켜 견딜 수가 없다.

강가를 이리 저리 거닐어 본다. 옛날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 강가 주막은 쓸쓸하니 기척도 없고, 사랑하던 사람의 자취도 다시 찾을 길 없다. 가을 들길에는 그 때처럼 함초롬히 안개에 젖어 꽃이 피었다. 꽃도 말이 없다. 꽃잎에선 눈물인양 빗물이 듣고, 눈을 돌려 보면 쓸쓸한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강물이 조촐히 흘러가고 있다. 모든 것은 옛날과 그대로인데 또 예전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아! 한 쌍의 제비. 주인 잃은 배의 돛대 위에 나란히 앉은 제비도 그대로 있다. 그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은 먼 길을 떠나 돌아올 줄 모르고, 나는 날마다 이 강변에 나와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 한다.

이상 사랑을 주제로 한 情詩 몇 수를 만남에서 이별까지 사랑의 한살이로 엮어 감상해 보았다. 한시에서 사랑의 노래는 어째서 이렇게 슬픔에 푹 젖어 가라앉았느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정서란 애초에 모든 것이 충족된 속에서 터져나오는 법이 없다. 소중한 '무엇' 밖에 놓여 있다는 생각, 안겨야 할 '어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마음에서 정서는 비로소 움터 나온다. 필자는 세 해 전 김도련 선생과 함께 한국의 애정한시 2백여 수를 엮어 감상한 평설집 《꽃피자 어데선가 바람불어와》(교학사, 1993)를 펴낸 일이 있다. 이 글은 이 책 가운데서 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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