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物論, 바라봄의 詩學 낮설게 만들기, 나아가 그 낮설음으로 인해 그 사물과 다시금 친숙하게 만나기, 이것이 觀物論이 詩學과 만나는 접점이다. 시인은 히드라의 예민한 촉수와 같이 안테나를 세워 세계와 교신할 수 있어야 한다. 탄성 계수를 유지하지 못하는 觀物은 觀物이 아니다. 그것은 見物일 뿐이다.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해를 피해 나아가는 쪽이다. 배는 어느 쪽인가? 바닥에 닿는 쪽이다. 앞에 소금을 뿌려두면 지렁이는 고개를 돌려 반대쪽으로 달아난다. 흥미로운 관찰이다. 星湖 李瀷의 《觀物篇》에 보인다. 星湖의 관찰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七竅 五臟을 갖추지 못한 지렁이도 제 몸의 해를 피해 利를 향해 갈 줄 아는데, 사람 중에는 破亡이 뻔히 보이는 데도 눈뜬 장님으로 그 길을 가서 결국 제 몸을 망치고 일을 그르치는 이가 있다.
들꽃은 궁벽한 곳에서 피어나 빈 들판 위로 그 향기를 날려 보낸다. 정작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간혹 들늙은이의 산책길에 이따금 聞香의 기쁨을 선사할 뿐이다. 꽃이 향기를 냄은 꽃의 본색에 지나지 않는다. 빈 들판에 날리어 흩어짐도 정해진 운명이 아닐까? 향기로운 꽃의 향기와 빈 들판에 흩어짐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꽃은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개의함 없이 향기를 뿜어댈 뿐이다. 인간이 나서 한 세상을 살다 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귀인의 정원에서 정원사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피어나는 꽃이 있는가 하면, 산 속 깊은 곳에서 저만치 혼자서 피었다 지는 꽃도 있다. 능력있는 인재와 그를 알아주지 않는 공평치 않은 세상 길에 대한 탄식과 자조가 행간에 깔려 있다.
翁이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길렀는데, 밤낮으로 굽어 보니 그 편안함을 얻으면 기뻐하고, 다투게 되면 성을 내며, 죽으려 할 때에는 슬퍼하고, 쫓기게 되면 두려워 하며, 서로 더불으면 아끼고, 등지면 미워하며, 구함을 탐하면 욕심을 부려 무릇 形氣로 드러나는 七情의 모습이 모두 갖추어졌다. 그러나 四端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조금도 있지 않았다. 이에 비로소 四端과 七情이 理와 氣로 나뉘어짐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이가 야생 거위를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많이 주니까 거위가 뚱뚱해져서 날 수가 없었다. 그 뒤 문득 먹지 않으므로, 사람이 병이 났다고 생각하고, 더욱 먹을 것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도 먹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몸이 가벼워져,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翁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지혜롭고녀.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병통을 맥짚어 진단하는 말인 것만 같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한국인의 조급성은 개구리의 섣부른 자만과 무엇이 다른가? 《觀物篇》은 李瀷이 안산에 閑居하면서 생활의 주변에서 사물을 보며 느낀 여러 가지 일들을 77항목에 걸쳐 그때 그때 기록해 둔 것이다. 주변 사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그 사물들에 담겨 있는 이치를 캐어, 이를 현실의 삶과 연관지으려는 그의 실학적 사고가 잘 반영되어 있다. 이른바 格物致知의 정신이다.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門人 李德弘이 쓴 〈退溪先生考終記〉이다. 묘한 느낌을 주는 글이다. 스승의 죽음을 지켜 본 제자의 기록으로는 투명하리만치 담담하다. 슬픔이 묻어날 빈틈이 없다. 스승의 용태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그의 시선은 끊임 없이 창 밖의 날씨로 쏠려 있었다. 그는 과연 무슨 마음으로 스승이 서거하던 날의 기후 변화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임종하던 날 아침, 스승은 방안 매화에 물을 줄 것을 명했고, 제자는 그것을 무슨 조짐으로 알았다. 과연 저물녁이 되자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며 난데 없는 구름이 집 위로 몰려 들더니 눈이 펑펑 쏟아졌다. 죽음을 예감한 스승은 누운 자리의 정돈을 명하고, 마른 형해를 부축해 일으키자 마지막 숨은 앉은 선생의 鼻間을 빠져 나갔다. 아픈 곡성도 들리지 않았다. 정밀이 흐르는 가운데 찌푸렸던 하늘은 다시 열리고, 흩지던 눈발이 맑게 걷히었다. 분분히 흩날리는 雪中에 선생 방의 매화는 그날 꽃망울을 터뜨렸던가 터뜨리지 않았던가. 세상을 뜨기 닷새 전 선생의 동태를 李德弘은 다시 이렇게 적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曺植의 임종을 곁에서 지켰던 문인 鄭仁弘은 당시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七情에 얽매여 사는 우리 같은 凡人들은 감히 생각키 어려운 광경들이다. 창쪽을 가리키며 "빛을 더"하고 운명했다던 서양 어느 철학자의 죽음보다 훨씬 더 장엄하지 않은가. 죽음 앞에서도 사물을 보는 눈은 닦아낸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일찍이 曺植이 지은 〈無題〉란 시를 보면,
라 하였다. 비가 지나가자, 자욱하던 이내가 말끔히 걷히었다. 그래도 산 허리엔 저물녘 하루 일과를 마친 구름이 귀가를 준비하고 있고, 그 위로 뾰족한 묏부리가 潑墨의 그림처럼 새틋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바쁠 것 하나 없는 구름의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깊은 편안함에 잠겨든다. 유유자적하다.
宋時烈의 〈金剛山〉이다. 千漉 절벽 위에서 바윗돌을 굴리는 기상이 느껴진다. 皆骨이라 산도 희고 구름도 희다. 시인은 '不辨容'의 상태에서 '雲歸'로 迷妄을 걷어냄으로써 일만 이천 멧부리의 特立獨行을 돌올하게 펼쳐 보인 것이다. 노산 이은상이 일찍이 금강을 노래하여, "금강이 무엇이더뇨 돌이요 물일래라. 돌이요 물일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일러니 있고 없고 하더라"의 영탄을 발하였더니, 이제 고금의 솜씨가 방불함을 알겠다.
李彦迪의 〈無爲〉란 작품이다. 蘇東坡는 〈赤璧賦〉에서 "대개 장차 그 변하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천지는 일찍이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그 변치 않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物과 我가 모두 다함이 없다"고 했던가. 젊은 날 성취를 향한 집착과 작위하고 경영하던 마음을 훌훌 던져 버리고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 다만 一身의 閒適을 추구할 뿐이다. 청산은 말이 없으니 그를 보며 默言의 마음을 배운다. 도학자의 구김 없는 마음 자리가 잘 펼쳐져 있다. 樂天知命의 높은 경계다. 豁然한 脫俗의 경계를 맛보게 한다. 觀物함으로써 그 속에 구현된 理를 읽어 내고, 그 理를 體法함으로써 인간 삶과 연관 짓는 것은 儒家 인식론의 바탕이 된다. 송대의 이학자 邵雍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눈으로 사물의 외피만을 보는 것을 '以我觀物'에, 心으로 理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以物觀物'에 견주고, '以物觀物'을 '反觀'이라 하여, 物로써 物을 보니 그 사이에는 我가 개재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物로써 物을 봄은 性이고, 我로써 物을 봄은 情이다. 性은 공변되고 밝지만, 情은 치우치고 어둡다"고 부연하였다. 이때 性은 天理에, 情은 人慾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선비는 格物함으로써 致知할 뿐 玩物로 喪志하지 않는다. 앞서 李瀷이 자신의 관찰 기록을 〈觀物篇〉이라 이름한 것도 실은 邵雍의 말에서 취한 것이다. 權好文은 〈觀物堂記〉에서 邵雍의 뜻을 부연하여 이렇게 말한다.
생동하는 봄풀의 뜻 邵雍의 以物觀物의 설이 있은 이래 그 정신을 이어받아 觀物을 주제로 한 시를 남긴 시인들이 적지 않다. 여러 문집에 실려 전하는 觀物詩 몇 편을 살펴 보기로 하자. 먼저 李穡의 〈觀物〉시에 이르기를,
라 하였다. 萬物의 態는 일정함이 없어 형세에 따라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한다. 한 마음의 本源을 지켜 있다면 '位高'와 '室陋'의 형세 차이가 '威重' '德馨'에 무슨 누가 되겠는가. 시인은 이제 작위함을 버려두고 말을 잊은 채 이끼 자욱 가득한 작은 뜰을 觀物할 뿐이다.
徐居正의 〈觀物〉이다. 봄이 오자 조물주는 대지 위에 온통 꽃 잔치를 벌려 놓았다. 파르라니 돋은 이끼와 비단같은 꽃밭. 그저 바라만 보아도 生意가 넘쳐 흐른다. 늙은이의 마음도 유유해진다. 金時習(1435-1493)도 〈觀物〉에서,
라 하였다. 따사로운 봄볕과 마주한 양지녘엔 이미 꽃망울이 부펐어도, 그늘진 저편은 아직도 꽃소식이 감감하다. 한 가지에 나고도 이럴진대 봄은 어느 한편만을 편애하는 것이냐. 그러나 떳떳한 한 이치가 분명히 밝아 있으니 어찌 '兩般'의 뜻이 있으랴. 3구에서 슬며시 '我'를 끌어 들인 것을 보면, 世道의 不公을 언외에 투탁하는 마음이 잡힐 것도 같다.
李彦迪의 〈觀物〉이란 작품이다. 唐虞의 事業, 즉 堯舜의 끼친 일이 千古에 우뚝해도, 어찌 보면 그것은 한 조각 뜬 구름이 허공을 스쳐 지난 것과 진배 없다. 시인은 다만 시냇가 다락에 기대 앉아 강물에 노니는 물고기의 발랄을 지켜볼 뿐이다.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해맑아 진다. 구름이 지나간 맑은 하늘같다. 그렇다면 물 속에서 노닌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던 셈이다.
李滉의 〈觀物〉이다. 源頭는 아득하여 허망한 듯 하지만 끝까지 궁구하여 '一理'와 만난다. 많고 많은 '庶物'들의 말미암은 바가 바로 이 지점이 아니던가. 前賢은 그 어디서 '漠漠源頭'와 만났던가. 뜨락에 돋은 풀과 어항에 노니는 고기에서다. 4구의 '庭草' '盆魚'는 程顥가 뜰의 풀을 베지 않고, 어항에 물고기를 기르며 그 生意를 관찰하여 存心養性의 공부를 닦았던 일을 두고 한 말이다.
權禝의 〈觀物〉이다. '鳶飛魚躍' 하는 중에 만물은 浮沈하고, 각양각색의 物態들은 太和 가운데서 一氣로 융화를 이룬다. 봄비가 내리고, 뜨락의 풀은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펴 새싹을 내민다. 봄비의 생기와 뜨락 풀의 생동이 '융화' 되어 새싹을 띄워 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의 마음에도 그와 같이 生意가 물 오른다.
高尙顔의 〈觀物吟〉이다. 단순히 새옹지마의 자기 위안이 아니다. 일찍이 李仁老는 《破閑集》에서 "천지는 만물에 있어 그 아름다움만을 오로지 할 수는 없게 하였다. 때문에 뿔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 뿐이며,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진다"고 하였다. 뿔 달린 소는 윗니가 없고, 이빨이 날카로운 범에게는 뿔이 없으니, 天道는 과연 공평치 아니한가. 벼슬길의 升睕도 이와 같아서, 이래서 좋으면 저래서 나쁘고, 저래서 미쁘면 이래서 얹짢으니 변화의 기미를 살펴 몸을 맡길 뿐이다. 이상 몇 수 살펴본 觀物詩들은 萬殊로 나뉘어져 百態를 연출하는 事物 저편의 '一理'를 투시하며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사물을 향한 관찰과 내면을 향한 관조가 있다. 權禝의 〈靜中吟〉이 이를 잘 요약한다.
有我之境과 無我之境 觀物의 정신이 美學의 경계로 넘어오면 앞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논의가 된다. 淸末의 王國維는 邵雍의 관물론에서 개념을 빌어와 有我之境과 無我之境의 설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有我之境은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 시인의 감정이 객관 物態에 스며 들어 강렬한 주관의 색채를 띠는 경우이고, 無我之境은 일체 시인의 주관 정서가 드러남 없이 我가 物과 혼융되어 彼我의 구별이 없는 物我一體의 경계를 연출하는 경우이다. 王國維는 이어지는 글에서 무아지경은 호걸의 인사만이 도달할 수 있다 하여 유아지경 보다 무아지경을 높이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王國維가 邵雍의 개념을 빌어 와 有我之境을 以我觀物에, 無我之境은 以物觀物에 각각 견주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以我觀物과 以物觀物의 함의는 邵雍과는 자못 다르다. 邵雍은 以物觀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以理觀物까지를 요구함으로써 사물의 저편에 존재하는 道理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반해, 王國維는 以物觀物을 道의 전제 없이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審美境界로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당나라 王維의 〈書事〉란 작품이다. 옅은 그늘이 지나가고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비가 지난 뒤에야 방에 틀어 박혀 있던 시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보슬비에 촉촉히 젖은 이끼 위에 가만히 앉아 본다. 비온 뒤의 상쾌한 기운, 이끼의 푸른 빛. 가만히 앉아 있는 시인의 옷깃 위로 이끼는 제 몸을 나누어 올라오려 한다. 시인의 옷마저 이끼로 덮으려 한다. 우연히 빈뜰에 나와 앉았다가 物과 我가 하나로 만나 나누는 흐믓한 교감. 그대로 앉아 있으면 나는 곧 이끼 덮힌 바위가 될 것만 같다. 物로 향하는 我의 삼투압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서로 팽팽한 표면장력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그 균형이 깨지면서 한꺼번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폰지에 물이 스미듯 서서히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그 과정은 이루어 진다. 시인은 이제 없다.
역시 王維의 〈辛夷塢〉란 작품이다. 산속 가지 끝에 붉은 부용꽃이 망울을 터뜨렸다. 그 옆으로 졸졸 흘러가는 시내, 다시 시내가엔 초가집 한 채. 집에는 하루 종일 사람의 기척이 없다. 자태를 뽐내어도 보아줄 이 없는 적막한 이 산중에서 무엇이 바쁜지 꽃들은 어지러히 피고 진다. 시간도 숨을 멈춘 것만 같다. 꽃이 피고 또 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화자는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시의 화면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시인은 단지 화면의 바깥에서 독자를 자기 옆에 정답게 앉혀 놓고 이 아름다운 광경을 함께 보자고 권유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무아지경이다.
변방 전쟁터로 수자리 살러 간 병사의 자기 연민에 찬 노래로, 《詩經》 〈小雅〉의 〈采薇〉란 작품이다. 첫 네 구절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목마름과 굶주림 속에서도 돌아갈 기약은 아득하기만 한데, 아련한 기억 속의 고향은 능수버들 하늘대는 봄날의 따사로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邊境의 辛酸은 지친 병사에게 그 고향의 모습마저 눈비만 흩날리는 스산함으로 일그러뜨려 놓았다. 이를 굳이 변방 수자리 병사의 노래라고만 할 수 있을까. 가슴 속에 고향을 품고도 돌아가 안기지 못하고 국외자로 타향을 떠도는 우리의 노래는 아닐 것인가? 有我之境이다. 그러나 유아지경이라고 해서 위 시와 같이 반드시 문면에 화자의 정서가 드러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
權擘의 〈春夜風雨〉이다. 物理의 순환하는 이치를 절묘하게 꼬집어 내었다. 비가 와서 꽃을 피우면, 바람은 와서 이를 떨군다. 어제 만발했던 살구꽃은 진흙탕으로 떨어지고, 그 자리엔 어느새 복사꽃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따지고 보면 슬퍼할 것도 안타까워 할 것도 없다. 만발한 복사꽃을 바라보는 경이와, 비바람에 져버린 살구꽃 빈 가지를 바라보는 허탈을 함께 포착했다. 봄은 그렇게 와서 또 그렇게 가버릴 것이고, 우리네 인생도 그렇듯이 흘러가 버릴 것이 아닌가. 시인은 관찰자의 입장에 서있는데도 시는 다분히 주관적 색채로 물들어 있다. 邵雍의 관점으로는 以物觀物에서 더 나아가 以理觀物의 경계에 근접하였으나, 王國維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以我觀物의 有我之境에 가깝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무아지경의 시란 있을 수 없다. 무아지경이라고 해서 시인의 주관 정취가 없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무아지경이란 시인의 정신이 物境 가운데 녹아 들어 사물과 더불어 하나가 되고, 마침내 자신을 잠시 잊어버린 것에 불과하다. 이른바 '心凝形釋'의 경계이다. 현대시를 가지고 살펴보자.
박목월의 〈윤사월〉이다. 《청록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들이 그렇지만 시의 화자는 문맥에 끼어듦 없이 눈에 비친 장면만을 포착할 뿐이다. 외딴 봉우리에 송홧가루가 날리우고, 나른한 윤사월의 긴 오후가 꾀꼬리 울음 속에 뉘엿해 진다. 외딴 집이 있고, 눈먼 처녀는 문설주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다. 그녀가 엿들은 것은 무슨 소리였을까. 긴 봄날이 덧없어 우는 꾀꼬리의 울음 소리였을까, 송홧가루를 날리우는 바람소리였을까. 윤사월의 애절한 느낌이 문설주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의 몸짓 속에 잊히지 않는 영상으로 다가온다. 무아지경 속에 유아지경이 있다.
서정주의 〈영산홍〉이다. 멀리 滿潮의 바다는 넘실대고, 일렁이는 봄볕은 영산홍 꽃잎에 산빛을 어리었다. 滿月로 차오르는 보름살이 때에 그녀는 쓸모 없이 놋요강을 툇마루에 놓아 두고 낮잠이 혼곤하다. 슬픈 것은 小室宅이건만, 우는 것은 갈매기다. 슬픈 그녀는 정작 낮잠이 깊었는데, 갈매기만 소금발이 쓰라리다며 끼룩끼룩 울어대는 것이다.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와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은 그 상황설정의 유사함이 흥미롭다. 가난한 산지기의 외딴 집에서 바깥 세계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눈 먼 처녀'와, 산자락 집에서 놋요강을 옆에 두고 툇마루에 누워 기다림에 지쳐 낮잠에 빠져든 '슬픈 소실댁'은 등가의 심상을 이룬다. '슬픈'과 '쓰려서'와 '우는'의 감정 이입이 있어 〈윤사월〉보다는 주관 정취가 강하다. 또한 유아지경 속에 무아지경의 느낌이 있다. 이것은 이른바 미학에서의 以我觀物, 以物觀物이다.
俗人과 達士
朴趾源이 〈菱洋詩集序〉에서 한 말이다. 達士의 觀物은 보지 않고도 보는 以物觀物, 以理觀物인데, 俗人의 觀物은 직접 눈으로 본 것만 전부로 아는 以目觀物에 머문다. 達士와 俗人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에서 찾을까? 그것은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에 대해 金澤榮은 〈材潤堂記〉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깨달음이 없이는 우리는 모두 '눈뜬 장님'일 뿐이다.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려 한다고 해서 보이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깨달음은 결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아무렇게나 열리지 않는다. 손끝이 갈라지는 연습 없이, 그저 기타를 들고 동해 바닷가에 서 있는다고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법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은 순식간에 변해 버린다. 俗人과 達士의 경계는 종이 한장 차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상 살펴본 觀物論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볼 것인가? 거기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누구나 보고 있지만 못보는 사실, 늘 지나치면서도 간과하고 마는 일상 사물에 담긴 의미를 읽어 낮설게 만들기, 나아가 그 낮설음으로 인해 그 사물과 다시금 친숙하게 만나기, 이것이 觀物論이 詩學과 만나는 접점이다. 시인은 格物 또는 觀物의 정신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주변 사물이 끊임 없이 발신하고 있는 의미를 늘 깨어 만날 수 있다. 히드라의 예민한 촉수와 같이 안테나를 세워 세계와 교신할 수 있어야 한다. 탄성 계수를 유지하지 못하는 觀物은 觀物이 아니다. 그것은 見物일 뿐이다. 여기에 무슨 生意로움이 있던가. 눈앞 사물과의 설레이는 만남, 세계와 줄다리기 하는 팽팽한 긴장이 없이 좋은 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반란자다. 그의 눈이 포착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다. 새로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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