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횡행…학대당해도 쉬쉬하는 노인
'당신이라면 연로한 부모님을 때릴 수 있는가. 욕설을 내뱉을 수 있는가. 부모가 어떻게 되든 내 일이 아니라며 버려둘 수 있는가. 어려운 살림에 보태 쓰라고 나라에서 주는 돈을 가로챌 수 있는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의외로 노인학대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온갖 정성을 들여 자식들을 길러 놨더니 이제 힘없고 늙었다며 멸시받는 처지가 서럽다"는 말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숨진 지 한참 지나 발견되는 노인들도 심심찮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들은 십중팔구 '현대판 고려장'의 희생자들이다.
자식들로부터 학대를 당하면서도 쉬쉬하는 노인들. "그래도 내 자식인데"라며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늙은 부모들의 심정은 눈물겹다. 하지만 이제는 안된다. 그토록 당하면서도 참고 있기 때문에 노인학대 행위는 더욱 도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사례1
- 장기방치
부산시 동부노인학대예방센터 직원들은 지난 1월 "아들이 아버지를 가둬놓고 돌보지 않는다"는 신고전화를 받았다. 동구의 한 빈민가를 찾은 직원들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안경숙(여·41) 소장은 "청소를 안해 불결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쥐가 나다니고 천장에서는 물이 새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방안에는 K(68)씨가 거의 의식불명인 상태로 누워 있었다. 먹지 못해 배와 등가죽이 붙어 갈비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 센터 직원들이 병원으로 옮겼지만 K씨는 사흘만에 눈을 감았다.
K씨는 아들(33)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완전히 버림받았다. 아들은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충분히 모실 수 있었는데도 아버지를 방치한 것이다.
"2년간 그렇게 했다는군요. 동사무소에서 사정을 알고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들이 거절했어요."
문제는 돈이었다. 아들이 군대를 간 사이 어머니가 가출했고 K씨는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됐다. 직장을 다녔으나 월급을 차압당해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아들은 이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이렇게 표출한 것이다. "왜 집수리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방두칸짜리 집을 팔아도 빚을 못갚는데 뭐하러 하느냐. 아버지는 당해야 한다'고 적대감을 보였어요. 물론 아버지가 잘못한 점도 있지만 이렇게 방치한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 사례2
- 폭력
최근 함께 살던 작은 아들(37)과 헤어져 요양시설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C(여·63·부산 남구)씨는 웃음을 되찾았다. 매일 아들의 매질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됐기 때문이다. C씨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백수'로 살고 있는 아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파출부일을 할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10년전 중풍으로 자리에 눕자 사정이 달라졌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내놓으라"며 주먹질을 해댔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던졌다. C씨가 얼마나 맞았는지는 노인학대예방센터 직원들이 방문했을 때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C씨가 흘린 피로 방 벽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온 몸에는 상처와 멍 투성이였다. 전치 3주의 진단이 나왔다. 큰 아들은 "동생이 이렇게 어머니를 학대하는 줄 몰랐다" "어머니를 모시고 싶지만 도저히 형편이 안된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 사례3
- 갈취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M(여·73·부산 강서구)씨는 자식이 두 명 있지만 모두 모시지 않으려고 해 조카(42) 집에 얹혀 살다 1년전부터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조카는 이후 연락을 끊어 버렸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권자인 M씨는 정부에서 나오는 경로연금과 교통수당 등 매달 30만 원 이상 받아야 되지만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했다. 알고 보니 조카가 그 돈을 가로챘던 것이다. 이 사실은 조카며느리가 갑자기 병원을 찾아와서는 주민등록증을 몰래 가져가려다 들통났다. 장애수당까지 덤으로 챙기려 했다는 것이다. 장혜원(여·26) 사회복지사는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바람에 수급권통장을 다시 발급해 할머니께 드렸다"고 말했다.
# 작년 부산 182건 신고… 가해자 3명중 1명이 아들
다양한 유형의 노인학대 행위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다. 지난해 노인학대와 관련, 신고접수된 것만 전국적으로 3988건에 달한다. 부산의 경우 182건이 접수됐다. 신고를 하지 않은 잠재적 학대는 수십배는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해자는 아들이 1326건(33.2%)으로 가장 많았고 며느리 281건(7.0%), 딸 249건(6.2%), 배우자 178건(4.4%) 순이었다.
유형별로는 거친 욕설 등 언어·정서적 학대가 43.6%를 차지해 가장 일반적이었다. 돌봐주지 않고 내버려두는 방임적 학대가 22.7%, 구타하는 등 신체적 학대가 18.5%, 돈을 가로채거나 요구하는 재정적 학대가 11.6%였다. 이는 구분을 위한 기준이지 사실은 여러 유형의 학대가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안 소장은 "특히 장기적 방임 학대는 신체적 학대보다 훨씬 위험하다"며 "주먹질을 하면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조치가 가능하지만 오랜 시간 방임하는 행위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기 방임은 한마디로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노인학대는 더 이상 가정 문제가 아니다. 집안일이라고 덮어두면 노인 학대현상은 더욱 심화될 뿐이다. 정부가 이를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겠지만 우리 사회도 노인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삽화·사진=부산광역시동부노인학대예방센터 제공
국제신문 최원열 기자 cwyeol@kookje.co.kr / 노컷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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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의외로 노인학대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온갖 정성을 들여 자식들을 길러 놨더니 이제 힘없고 늙었다며 멸시받는 처지가 서럽다"는 말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숨진 지 한참 지나 발견되는 노인들도 심심찮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들은 십중팔구 '현대판 고려장'의 희생자들이다.
자식들로부터 학대를 당하면서도 쉬쉬하는 노인들. "그래도 내 자식인데"라며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늙은 부모들의 심정은 눈물겹다. 하지만 이제는 안된다. 그토록 당하면서도 참고 있기 때문에 노인학대 행위는 더욱 도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사례1
- 장기방치
부산시 동부노인학대예방센터 직원들은 지난 1월 "아들이 아버지를 가둬놓고 돌보지 않는다"는 신고전화를 받았다. 동구의 한 빈민가를 찾은 직원들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안경숙(여·41) 소장은 "청소를 안해 불결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쥐가 나다니고 천장에서는 물이 새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방안에는 K(68)씨가 거의 의식불명인 상태로 누워 있었다. 먹지 못해 배와 등가죽이 붙어 갈비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 센터 직원들이 병원으로 옮겼지만 K씨는 사흘만에 눈을 감았다.
K씨는 아들(33)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완전히 버림받았다. 아들은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충분히 모실 수 있었는데도 아버지를 방치한 것이다.
"2년간 그렇게 했다는군요. 동사무소에서 사정을 알고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들이 거절했어요."
문제는 돈이었다. 아들이 군대를 간 사이 어머니가 가출했고 K씨는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됐다. 직장을 다녔으나 월급을 차압당해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아들은 이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이렇게 표출한 것이다. "왜 집수리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방두칸짜리 집을 팔아도 빚을 못갚는데 뭐하러 하느냐. 아버지는 당해야 한다'고 적대감을 보였어요. 물론 아버지가 잘못한 점도 있지만 이렇게 방치한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 사례2
- 폭력
최근 함께 살던 작은 아들(37)과 헤어져 요양시설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C(여·63·부산 남구)씨는 웃음을 되찾았다. 매일 아들의 매질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됐기 때문이다. C씨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백수'로 살고 있는 아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파출부일을 할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10년전 중풍으로 자리에 눕자 사정이 달라졌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내놓으라"며 주먹질을 해댔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던졌다. C씨가 얼마나 맞았는지는 노인학대예방센터 직원들이 방문했을 때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C씨가 흘린 피로 방 벽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온 몸에는 상처와 멍 투성이였다. 전치 3주의 진단이 나왔다. 큰 아들은 "동생이 이렇게 어머니를 학대하는 줄 몰랐다" "어머니를 모시고 싶지만 도저히 형편이 안된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 사례3
- 갈취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M(여·73·부산 강서구)씨는 자식이 두 명 있지만 모두 모시지 않으려고 해 조카(42) 집에 얹혀 살다 1년전부터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조카는 이후 연락을 끊어 버렸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권자인 M씨는 정부에서 나오는 경로연금과 교통수당 등 매달 30만 원 이상 받아야 되지만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했다. 알고 보니 조카가 그 돈을 가로챘던 것이다. 이 사실은 조카며느리가 갑자기 병원을 찾아와서는 주민등록증을 몰래 가져가려다 들통났다. 장애수당까지 덤으로 챙기려 했다는 것이다. 장혜원(여·26) 사회복지사는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바람에 수급권통장을 다시 발급해 할머니께 드렸다"고 말했다.
# 작년 부산 182건 신고… 가해자 3명중 1명이 아들
다양한 유형의 노인학대 행위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다. 지난해 노인학대와 관련, 신고접수된 것만 전국적으로 3988건에 달한다. 부산의 경우 182건이 접수됐다. 신고를 하지 않은 잠재적 학대는 수십배는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해자는 아들이 1326건(33.2%)으로 가장 많았고 며느리 281건(7.0%), 딸 249건(6.2%), 배우자 178건(4.4%) 순이었다.
유형별로는 거친 욕설 등 언어·정서적 학대가 43.6%를 차지해 가장 일반적이었다. 돌봐주지 않고 내버려두는 방임적 학대가 22.7%, 구타하는 등 신체적 학대가 18.5%, 돈을 가로채거나 요구하는 재정적 학대가 11.6%였다. 이는 구분을 위한 기준이지 사실은 여러 유형의 학대가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안 소장은 "특히 장기적 방임 학대는 신체적 학대보다 훨씬 위험하다"며 "주먹질을 하면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조치가 가능하지만 오랜 시간 방임하는 행위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기 방임은 한마디로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노인학대는 더 이상 가정 문제가 아니다. 집안일이라고 덮어두면 노인 학대현상은 더욱 심화될 뿐이다. 정부가 이를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겠지만 우리 사회도 노인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삽화·사진=부산광역시동부노인학대예방센터 제공
국제신문 최원열 기자 cwyeol@kookje.co.kr / 노컷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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