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3년 9월 선조 26년 계사년 (충무공 이순신 49세)

천하한량 2007. 5. 5. 16:35
9월1일[임자/9월25일] 맑다. 공문을 만들어 도원수와 순변사에게 보냈다. 여필, 변존서, 조카 뇌 등이 돌아갔다. 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 정걸과 함께 이야기했다.
9월2일[계축/9월26일] 맑다. 장계의 초안을 잡아서 내려줬다. 경상우후 이의득·이여념 등이 와서 봤다. 어두울녘에 이영남이 와서 병마사 선거이가 곤양에서 공로를 세운 일과 "남해현형(기효근)이 체찰사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전했다. 우습다. 기효근의 형편없는 짓이야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다.
9월3일[갑인/9월27일] 맑다. 아침에 조카 봉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또 본영의 소식도 들었다. 장계를 올리려고 초안을 만들었다. 순찰사(이정암)의 편지가 왔는데, "무릇 군사 일족들에 대하여 일체 징발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새로 부임하여 사정을 잘못 알고 하는 일이다.
9월4일[을묘/9월28일] 폐단되는 것을 진술하는 것과, 총통을 올려 보내는 것과, 제만춘을 불러서 문초한 사연을 올려 보내는 것 등 세 통의 장계를 봉하여 올리는데, 이경복이 지니고 갔다. 정승 유성룡, 참판 윤자신, 지사 윤우신, 도승지 심희수, 지사 이일·안습지·윤기헌에게는 편지를 쓰고, 전복을 정표로 보냈다. 조카 봉은 윤간과 함께 돌아갔다.
9월5일[병진/9월29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충청수사 정걸의 배 곁에다 배를 대어 놓고서 종일 이야기했다. 광양현감·흥양현감 및 우후(이몽구)가 와서 봤다.
9월6일[정사/9월30일] 맑다. 새벽에 배 만들 재목을 운반할 일로 여러 배를 내어 보냈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이억기)의 배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거기서 원균을 흉칙스러운 일을 들었다. 또 정담수가 밑도 끝도 없이 말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들으니 우습기만 하다. 바둑을 두고나서 돌아왔다. 깨진 배의 재목을 여러 배로 끌고 왔다.
9월7일[무오/10월1일] 맑다. 아침에 재목을 받아 들였다. 방답첨사가 와서 봤다. 순찰사(이정암)에게 폐단을 진술하는 공문과 군대 개편하는 일이 대한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종일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탐후선이 오기를 몹시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9월8일[기미/10월2일] 맑다. 새벽에 송희립 등을 당포 산으로 내 보내어 사슴을 잡아 오게 했다. 우수사(이억기)가 충청수사(정걸)와 함께 왔다.
9월9일[경신/10월3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모여서 산마루에 올라가서 활 세 순을 쏘았다. 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 정걸 및 여러 장수들이 모였는데, 과양현감은 아프다고 참가하지 않았다.
9월10일[신유/10월4일] 맑다. 공문을 적어 탐후선에 보냈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의 배에 이르러 방답첨사와 함께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체찰사의 비밀편지가 왔다. 보성군수(김득광)도 왔다가 갔다.
9월11일[임술/10월5일] 맑다. 충청수사 정걸이 술을 마련하여 와서 봤다. 우수사(이억기)도 오고, 낙안군수·방답첨사도 같이 했다. 흥양현감이 휴가를 받아 갔다. 서몽남에게도 휴가를 주었다.
9월12일[계해/10월6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소비포권관(이영남), 유충신, 여도만호 김인영 등을 불러 술을 먹였다. 발포만호(황정록)가 돌아왔다.
9월13일[갑자/10월7일] 맑다. 종 한경·해돌이 돌아왔다. 저녁에 종 해돌 등이 돌아갔다.
9월14일[을축/10월8일] 맑다.1) 정철 총통은 전쟁에 가장 긴요한 것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만드는 법을 잘 알지 못하였다. 이제야 온갖 연구를 하여 조총을 만들어 내니, 왜의 총보다도 나았다. 명나라 사람이 와서 진주에서 시험사격을 하고는 잘 되었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다. 이미 그 묘법을 알았으니 도내에서 같은 모양으로 넉넉히 만들어내도록 순찰사와 병사에게 견본을 보내고, 공문을 돌려서 알게 했다.
9월15일[병인/10월9일] 맑다.
  (9월 16일부터 12월 말까지는 일기가 빠지고 없음)

1) ⓛ 초서본 『난중일기』의 이 날은 날씨부터 아예 내용이 다르다. "9월 14일(을축)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홀로 봉창 아래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순천부사가 돌아왔다.(九月十四日 乙丑終日雨且大風 獨坐蓬窓下懷思萬端也 順天還來)임. ② 李殷相 역주해 『난중일기』(현암사, 1968), 55쪽에는 초서본 일기에 없는 『이충무공전서』의 9월 14일자 일기내용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③ 조성도, 『壬辰狀草』, 325쪽, 『封進火砲狀』에는 정철총통을 만든 사실을 1593년 8월에 이미 보고하였다. 또 계사년 5월 12일(을축)일기에는 이미 "새로 만든 정철 총통을 비변사로 보냈다"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