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2년 12월 선조 25년 임진년 (충무공 이순신 48세)

천하한량 2007. 5. 4. 03:43
(8월28일부터 12월30일까지는 일기가 빠지고 없음)
12월10일
[병신/1593년 1월12일]
「장계」에서
흉한 적들이 여러 도에 널리 가득 차 있고, 오직 이곳 호남만이 다행히 하늘의 도움에 힘입어 다소 보완하여 한 나라의 근본을 이루고 있으니,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회복하는 일을 다 이 도에서 마련하여야 하는데, 지난 6, 7월사이에 육만의 군마와 허다한 군량을 모두 서울 등지에서 잃어버리고, 병사가 거느렸던 사만의 군사들도 또한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없어서 얼고 주려서 다 없어졌는데, 이제 순찰사가 또 정예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며, 다섯 의병장도 서로 이어 군사를 이르켜 멀리 출전하게 되므로, 이 뒤부터는 온 지방의 소동이 공사간의 재물을 다 없애고, 비록 늙고 허약한 백성은 있다 해도 병기와 군량을 운반할 무렵에는 채찍질이 빈번하여 구덩이에 넘어지는 자가 많이 있었다
더구나 소모사가 내려와서 내륙과 연해안을 분별하지 않은 채 소집할 군사의 수만을 결정하여 심하게 독촉하므로, 각 고을에서는 그 수를 충당하기 어려워서 변방을 지키는 수졸을 많이 빼내어 갈 뿐 아니라, 체찰사의 종사관이 각 고을을 분담ㆍ.검색하여 남아있는 장정을 재촉하여 징발하고, 변방의 진포에 있는 군기를 또한 많이 다른 곳으로 실어가며, 복수장 고종후 등이 또 따라 일어나서 내시의 종을 남김없이 뽑아내는데, 소모관이 방금 내려와서 번갈아 수색하는 일이 거의 쉬는 날이 없으므로 백성들의 근심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으니, 국가가 부흥되어야 할 시기에 바라는 바 실망이 커서 한 모퉁이에 있는 외로운 신하로서는 북쪽을 바라보며 통탄하며, 마음은 죽고 형태만 남아 있다.
지난해 분부한 서장에 "각 고을에서 도망한 군사들이 있어도 사변이 평정될 때까지 친족이나 이웃에게 대충 징발하는 것을 일체 면하라"고 했다. 무릇 신하된 자로서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지 않은 자가 없다. 그러나 이같이 위태롭고 어려운 날을 당하여 수졸 한 명은 무던히 평시의 백 명에 적합한 것인데, 한번 "대충 징발하지 말라"는 명령을 듣고서는 모두 다 면제될 꾀를 품기 때문에 지난 달에는 열 명이나 유방군을 보내던 고을이 이번 달에는 겨우 서너 명을 보내고 있으며, 어제 열 명이 있던 유방군이 오늘 너댓 명 안이므로 몇 달 내에 수자리를 지키는 일이 날로 비어 진포의 장수들이 속수무책일 것인 바, 배를 타고 적을 토멸함에 무엇을 힘입어 제어할 것이며, 성을 지켜 항전함에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
만일 전례를 지켜 책임수량을 채운다면 분부를 어기게 될 것이며, 분부를 준수한다면 수자리를 지킬 사람이 없을 것으므로, 이 두가지 중에 편한 방법을 참작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의견을 체찰사에게 보고하였던 바, 회답 공문에 "친족에게 대충 징발하는 폐단은 백성을 괴롭히는것 중에 가장 심한 것이므로 임금의 분부대로 단연히 준수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보고한 의견도 또한 일리가 있는 것이니 적을 방어하고 백성을 어루만지는데 양편이 다 좋은 일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고을 관원들에게 "사람이 죽고 자손이 끊어진 호구를 도목장에서 뽑아 없애 버리도록 하라"고 통고하였다.
대체로 보아 변방에서 한번 실패하면 그 해독이 중앙에까지 미치는 실례는 이미 경험한 일이다. 하물며 본도에 분산된 방위군의 수는 경상도와 같지 않고, 매번 방비에 임하는 군사가 큰 진이 많아야 320여 명을 넘지 못하고, 작은 보에는 150여 명도 차지 못하는 데, 그 중에서 도망하거나 죽은 지 오래된 채 정리되지 않은 자가 십중팔구이며, 현재 일하고 있는 자로는 태반이 늙고 쇠약한 사람이므로 만일 친족에게 대충 징발하는 것을 전적으로 면제한다면 성을 지키고 배를 운행하는데 아무런 조처가 없을 것이므로 지극히 민망할 뿐 아니라, 이번에 도착된 것으로 비변사에서 분부를 받고서 보내온 공문 내용에, "근래에 와서 적을 토멸하는 데는 해전을 당할 만한 것이 없으니, 전선의 수를 넉넉하게 더 만들도록 하라"고 한 바, 전선은 비변사의 공문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본영과 여러 진포에 명령하여 많은 수를 더 만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한 척의 전선에 사부와 격군을 아울러서 130여 명의 군사를 충당할 방법이 없어서 더욱 민망하니, 위의 "친족에게 징발하는 일들"을 사변이 평정될 때까지 전과 같이 시행하되, 조금씩 좋고 나쁜 점을 가려내어 백성의 원성을 풀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당연한 급선무이다. 그러니 조정에서는 다시 헤아려 생각하고, 우선 "친족에게 대충 징벌하지 말라" 한 명령을 중지하여 길이 남쪽 변방을 회복하는 기초가 온전해지도록 해야겠다.
수군으로 방비에 임하는 수가 저같이 너무 적은데, 방비 임무에 결석하여 죄를 지은 무리들이 혹은 소모군에 붙으며, 혹은 다투어 의병에 붙어서 어느 쪽이든지 소속되는 바, 지금같이 봄철의 방비가 매우 급한 때에 방어하는 군사를 다른 곳으로 소속을 옮겨서 변방을 충실하게 할 뜻은 없으므로, 일체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각별히 널리 백성들에게 분부를 내리도록 해야겠다.
겨울 석 달 동안에 사색 제방군은 평시에는 그대로 있다가 전적으로 사변이 일어날 때 쓰이는 보충군이거니와, 이런 큰 사변을 당하여서는 정규군도 많지 않데다가 또 사색 군졸마저 면제해 비리면 더욱 방비할 길이 없다. 해상으로 출전한 여가에 전선을 보수하고 병비를 조련하는 일들이 전혀 수졸들의 책임이므로, 사색 제방군 등을 육군과 함께 방위 임무에서 면제하지 말고 남김없이 방위에 임하도록 각 진포에 아울러 검칙하였으며, 순찰사에게도 공문을 보내었음을 갖추어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