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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5일[병신/3월18일] |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열여덟 순을 쏘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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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6일[정유/3월19일] |
종일 바람이 세게 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찰사에게서 편지가 두번이나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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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7일[무술/3월20일] |
맑다가 바람이 세게 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발포(고흥군 도화면 내발리)만호가 부임했다는 공문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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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8일[기해/3월21일] |
맑다가 또 바람이 세게 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 날 거북배에 쓸 돛베2) 스물 아홉 필을 받았다. 정오에 활을 쏘는데, 조이립과 변존서가 자웅을 다투다가 조이립이 이기지 못했다. 우후가 방답에서 돌아와 방답첨사가 방비에 온 정성을 다하더라고 매우 칭찬했다. 동헌 뜰에 돌기둥 화대를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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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9일[경자/3월22일] |
맑다. 새벽에 쇠사슬을 꿸 긴 나무를 베는 일로 이원룡에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두산도(여천군 돌산도)로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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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0일[신축/3월23일] |
안개비, 개었다가 흐렸다함.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김인문이 순찰사영에서 돌아왔다. 순찰사의 편지를 보니, 통역관들이 뇌물을 많이 받고 명나라에 무고하여 군사를 청하기까지 했을 뿐 아니라 명나라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무슨 딴뜻이 있는가 의심하게까지 했다니, 그 흉칙함이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통역관들이 이미 잡혔다고는 하지만, 해괴하고 분통함을 참을 수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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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1일[임언/3월24일] |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배 위에서 새로 뽑은 군사들을 점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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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2일[계모/3월25일] |
맑고 바람도 잤다. 식사를 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서 해운대(여수시 동북쪽에 있는 작은 섬)로 자리를 옮겨 활을 쏘았다. 침렵치를 보는데, 너무 조용했다. 군관들도 모두 일어나 춤을 추고, 조이립이 시를 읊었다. 저녁이 되서야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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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3일[갑진/3월26일] |
맑다. 전라우수사(이억기)의 군관이 왔기로 화살대 큰것, 중치 백 개와 쇠 쉰 근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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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을사/3월27일] |
맑다. 아산 어머니께 문안차 나장 두명을 내어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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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5일[병오/3월28일] |
비바람이 매우 세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새로 쌓은 해자 구덩이가 많이 무너져 석수들에게 벌을 주고 다시 쌓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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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6일[정미/3월29일] |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여섯 순을 쏘았다. 신구번의 군사를 점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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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7일[무신/3월30일] |
맑다. 나라 제사날(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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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8일[기유/3월31일] |
흐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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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9일[경술/4월1일] |
맑다. 순찰하러 떠나 백야곶(여천군 화양면)의 감목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권준)가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렸다. 기생도 왔다. 비가 온 뒤라 산의 꽃이 활짝 피어 경치가 멋져 형언키 어렵다. 저물어서야 이목구미(여천군 화양면 이목리)에 이르러 배를 타고 여도(고흥군 점암면 여호리)에 이르니, 영주(고흥)현감(배흥립)과 여도권관(황옥천)이 마중했다. 방비를 검열하는데 흥양현감은 내일 제사가 있다고 먼저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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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0일[신해/4월2일] |
맑다. 아침에 모든 방비와 전선을 점검해 보니, 모두 새로 만들었고 무기도 웬간히 완비되었다. 늦게야 떠나서 영주에 이르니, 좌우의 산의 꽃과 들가의 봄풀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옛날에 영주가 있다 하더니, 역시 이와 같은 경치였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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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1일[임자/4월3일] |
맑다. 공무를 본 뒤에 주인(감영과 고을의 연락을 취하는營邸吏)이 자리를 베풀어 활을 쏘았다. 조방장 정걸도 와서 보고, 능성현감 황숙도도 와서 함께 술취했다. 배수립도 나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신홍헌으로 하여금 술을 걸러 지난날에 심부름하던 삼반하인들에게 나누어 먹이도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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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2일[계축/4월4일] |
아침에 공무를 본 뒤에 녹도로 갔다. 황숙도도 같이 갔다. 먼저 흥양 전선소(고흥군 고흥읍)에 이르러 배와 집기류를 몸소 점검했다. 그 길로 녹도로 가서 곧장 봉우리 위에 새로 쌓은 문다락으로 올라가 보니, 경치를 아름다움이 이 근방에서는 어뜸이다. 만호의 애쓴 흔적이 손닿지 않은 곳이 없다. 흥양현감 배흥립과 능성현감 황숙도 및 만호와 함께 취하도록 마시고, 겸하여 대포 쏘는 것도 보았다. 촛불을 밝혀 이슥하여서야 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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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3일[갑인/4월5일] |
흐리다. 늦게야 배를 타고 발포로 가는데, 맞바람(역풍)이 세게 불어 배가 갈 수가 없다. 간신히 성머리에까지 이르러 배에서 내려 말을 탔다. 비가 몹시 쏟아져 일행 모두가 꽃비에 흠뻑 젖은 채로 발포로 들어가니, 해는 벌써 저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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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을묘/4월6일] |
가랑비가 온 산을 내려 지척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비를 무릅쓰고 길을 떠나 마북산(고흥군 포두면 차동리) 밑의 사량에 이르러, 배를 타고 노질을 재촉하여 사도(고흥군 점암면 금사리)에 이르니, 흥양현감이 먼저 와 있었다. 전선을 점검하고 나니 날이 저물므로 눌러 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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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병진/4월7일] |
흐리다. 여러가지 전쟁 방비에 탈난 곳이 많다. 군관과 색리들에게 벌을 주었다. 첨사를 잡아들이고 교수를 내어 보냈다. 이곳의 방비가 다섯 포구 가운데 최하인데도 순찰사가 포상하라고 장계를 올렸기 때문에 죄상을 조사조차 하지 못했으니 우습기만 하다. 맞바람이 세게 불어 출항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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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6일[정사/4월8일] |
아침 일찍 출항하여 개이도(여천군 화정면 사도리 추도)에 이르니, 여도 배와 방답의 마중하는 배가 나와서 기다렸다.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공사례를 마치고서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과 편전은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어 고민이다. 전선은 좀 온전한 편이니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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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7일[무오/4월9일] |
흐리다. 아침에 점검을 마친 뒤에 북쪽봉우리에 올라가 지형을 살펴보니, 깎아지른 외딴 섬인지라 사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과 해자 또한 매우 엉성하니 무척 근심이 된다. 첨사가 애쓰기는 했으나, 미처 시설을 못했으니 어찌하랴. 저녁 나철에야 배를 타고 경도(여수시 경호동)에 이르니, 여필과 조이립이 군관ㆍ우후들과 술을 싣고 마중나왔다. 이들과 함께 마시며 즐기다 해가 넘어간 뒤에야 관청으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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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8일[기미/4월10일] |
흐렸으나 비는 아니오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을 쏘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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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경신/4월11일] |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중위장을 순천부사로 바꿔 임명했다고 하니 한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