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초신응식 ▒

비취단장 -석초(石艸) 신응식(申應植) (1909~1975)-

천하한량 2007. 5. 1. 21:55

 
비취단장
 
                      -신석초-

비취! 보석인 너! 노리개인 너!
아마도 네 영원히 잊지 않을
영화를 꿈꾸었으련만
내가 어지러운 오뇌를 안고
슬픈 이 적막 속을 거닐 제
저어 깊은 뜰을 비추는
달빛조차 흐리기도 하여라
푸른 기왓장 흩어진 내 옛 뜰에
무심한 모란꽃만 피어지고
비취! 너는 파멸에 굴러서
창백히 벗은 몸을 빛내며
희미한 때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별살을 줍는다
아아 그윽한 잠 잔잔히
촛불 옆에 잠 못 이루고
여인의 희고 느린 목덜미
단장한 머리는 풀어져서
베개에 흐르는 달그림자
비정무위한 꽃잎을 비춰라
비취! 내 전신의 절 안에
산란한 시간의 발자취
다비의 낡은 흔적이 어릴 제
너는 매혹하는 손에 이끌리어
한없는 애무 속에도 오히려
불멸하는 순수한 빛을 던진다
나는 꿈꾸는 나신을 안고
수많은 허무의 욕구를 사르면서
혼자서 헐린 뜰을 나리려 한다
저곳에 시든 난꽃 한 떨기!
또, 저곳엔 석계 위에 꿈결같이
떠오르는 영원한 처녀의 자태!
어쩔까나!?
비취! 나의 난심을......
내가 이 폐원에 거닐고 또
떠나는 내 마음의 넌출을
인간의 얼크러진 길로 알고서
고독한 청옥에 몸을 떨며
시금의 슬픈 노래를 부를까나!
비취! 오오 비취! 무구한
네 본래의 광요야 부러워라
저어 심산 푸른 시냇가에
흩어지는 부엿한 구름 떠돌아서
창천은 흐득이는 여명의 거울을 거노나
아아 오뇌를 알은 나!
영겁을 찾은 나!
비밀한 유리 속에 떠서 흔들리는
나여! 너를 불러라!
빛과 흠절의 수풀 위에
보석이여! 나여! 정신이여!
멸하지 않는 네 밝음의 근원을 찾아라......

신석초(申石艸, 1909 ~1975).

 

본명은 응식,
호는 유인(唯仁),석초(石艸).충남 서천 출생.경성제일고보 입학,
일본 법정대학 철학과 졸업. 1932년,유인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창작의 고정화에 항(抗)하여>라는 평문을 썼으며, 1933년 이후
카프 회원으로 활약하다가 1933년 박영희와 함께 카프를 탈퇴.
그 후 <자오선>동인으로 활동.
시집으로 <석초시집>(1946),<바라춤>(1959),<폭풍의 노래>(1970),
<처용은 말한다>(1974),<수유동운(水踰洞韻)>(1974) 등과 이외에
그의 저작으로는 <발레리 연구>,<임어당산고>등 에세이 다수와
<석초집>,<자하시집>,<시전> 등의 번역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