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초신응식 ▒

신석초 시인의 <석초시집>이, 출간 60돌을 맞아 새롭게 출간되었다.

천하한량 2007. 4. 30. 19:02

 

193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여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라는 화두에 천착했던 신석초 시인의 <석초시집>이, 출간 60돌을 맞아 새롭게 출간되었다. 초간본 원본을 그대로 수록하고, 상세한 주해와 해설을 덧붙였다. 또한 현행 국어 규범에 맞게 새로이 엮은 페이지를 함께 실었다.

1946년 6월 30일 처음 간행된 <석초시집>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특히 발레리의 순수시운동과 이백, 두보, 나아가 노장 사상의 영향을 받은 시세계로 주목받았다. 신석초는 때로 노장 사상에 의한 허무의 세계를 노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통 정신에 입각한 자연미 추구와 샤머니즘을 노래했다. 때로는 정열에 찬 호흡으로 서구 정신을 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새로운 추구는 전통의 의미를 더하기 위한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비취단장


- 자기를 알라......

비취! 보석인 너! 노리개인 너!
아마도 네 영원히 잊지 않을
영화를 꿈꾸었으련만
내가 어지러운 오뇌를 안고
슬픈 이 적막 속을 거닐 제
저어 깊은 뜰을 비추는
달빛조차 흐리기도 하여라

푸른 기왓장 흩어진 내 옛 뜰에
무심한 모란꽃만 피어지고
비취! 너는 파멸에 굴러서
창백히 벗은 몸을 빛내며
희미한 때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별살을 줍는다

아아 그윽한 잠 잔잔히
촛불 옆에 잠 못 이루고
여인의 희고 느린 목덜미
단장한 머리는 풀어져서
베개에 흐르는 달그림자
비정무위한 꽃잎을 비춰라

비취! 내 전신의 절 안에
산란한 시간의 발자취
다비의 낡은 흔적이 어릴 제
너는 매혹하는 손에 이끌리어
한없는 애무 속에도 오히려
불멸하는 순수한 빛을 던진다

나는 꿈꾸는 나신을 안고
수많은 허무의 욕구를 사르면서
혼자서 헐린 뜰을 나리려 한다
저곳에 시든 난꽃 한 떨기!
또, 저곳엔 석계 위에 꿈결같이
떠오르는 영원한 처녀의 자태!

어쩔까나!?
비취! 나의 난심을......
내가 이 폐원에 거닐고 또
떠나는 내 마음의 넌출을
인간의 얼크러진 길로 알고서
고독한 청옥에 몸을 떨며
시금의 슬픈 노래를 부를까나!

비취! 오오 비취! 무구한
네 본래의 광요야 부러워라
저어 심산 푸른 시냇가에
흩어지는 부엿한 구름 떠돌아서

창천은 흐득이는 여명의 거울을 거노나
아아 오뇌를 알은 나!
영겁을 찾은 나!
비밀한 유리 속에 떠서 흔들리는
나여! 너를 불러라!
빛과 흠절의 수풀 위에
보석이여! 나여! 정신이여!
멸하지 않는 네 밝음의 근원을 찾아라......




신석초 - 본명은 신응식. 1909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후 한학을 배웠다. 1926년 상경하여 경성제1고보에 다니다 중퇴하고, 1931년 일본에 건너가서 호세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카프(KAPF)에 가입했으나 카프의 도식주의적 창작 방법에 실망하여 박영희의 전향선언과 때를 같이하여 탈퇴하였다.

1935년경부터 이육사를 알게 되어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후 「시학」, 「문장」 등을 통해 시를 발표했으나 일제말에는 고향에 묻혀 절필하엿다. 8.15광복 후 상경하여 광복 전에 쓴 작품들을 모아 <석초시집>을 간행하였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어 1967년 예술원상을 수상하였고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오래 근무하였다. 시집으로 <바라춤>, <폭풍의 노래>, <처용은 말한다> 등이 있다. 1975년 생을 마쳤다.




동서양 철학을 바탕으로 한 심오한 시세계와 한국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인 신석초. 그의 첫 시집 <석초시집>이 60년 만에 다시 복간된 것은 한국 시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경사이다. - 김후란 (시인)

신석초는 서구적인 방법에서 출발 '명료한 의식'의 움직임을 동양적 자아로 추구하여 한국 고유의 이미지와 한국적 풍류의 율조를 통해 독특한 극점을 세운 시인이다. - 홍희표 (시인, 목원대 교수)

신석초가 자주 택한 제재들은 영원과 순간, 삶의 죽음, 아름다움과 유한함, 사랑에의 탐닉과 그 허무, 한국적인 유한함과 서양적인 정열 등이고 이는 정신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갈등과 대립의 극을 야기시키는 미적 요소들이었다. - 신동욱 (문학평론가)

    

1장
비취단장翡翠斷章

2장
촛불
규녀閨女
연蓮
밀도蜜桃를 준다
호접蝴蝶
돌팔매
춤추는 여신女神
멸滅하지 않는 것
무녀巫女의 춤

흐려진 달

3장
가야금伽倻琴
가야금伽倻琴 별장別章
검무낭劒舞娘
파초芭蕉
화장化粧
묘墓
궁시弓矢
사비수
낙와落瓦의 부賦
바라춤
최후最後의 물결을 1
유리창琉璃窓
난초蘭草
촛불과 손
해협海峽

해설 - 신화적 회생과 우주적 합일 / 조용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