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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전등록 서(傳燈錄序)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8. 17:40

서(序)
 
 
전등록 서(傳燈錄序)
 

금상 21년 봄 정월에, 판조계종사(判曺溪宗事) 신 각운(覺雲)이 상언(上言)하기를, “전등록은 선학(禪學)의 지남(指南)이온데, 판본이 병화에 불타서 손으로 초하기가 매우 어려운데다 지금 전혀 묵묵히 앉아 있는 것만을 힘써 만일의 성공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윽이 염려되는 바는 이치를 말하는 자마저 없어지게 되면 이 도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오니, 이를 중간(重刊)해서 널리 보급하여 학자에게 이바지하게 하여 주시길 비옵니다.” 하니, 주상은, “그렇게 하라.” 하였다. 이에 광명사(廣明寺) 주지(住持) 경예(竟猊), 개천사(開天寺) 주지 극문(克文), 굴산사(?山寺) 주지 혜식(惠湜), 복암사(伏巖寺) 주지 탄의(坦宜)가 그 일을 관계하게 되었으니, 모두 주상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재목을 구하여 각장(刻匠)을 불러들여 일을 시작하게 되자, 운(雲)은 또 상언하기를, “신의 종문(宗門)의 지극한 영광이온데, 편 머리에 사실을 기록하여 두지 아니하면 후일의 증빙이 될 수 없사오니, 청하옵건대, 문신에게 하명하시어 이 일을 기록하게 하여 주소서.” 하자, 드디어 신 이색(李穡)에게 명령하게 되었다. 그즈음에 색이 모친상을 당하여 조정을 떠났다가 이듬해에 기복(起復)되어 올라오니, 운이 와서 글을 독촉하며 이르기를, “공역이 이미 끝났다.” 하였다.
그 이른바 《전등록》이란 책을 구해서 읽어보니, 연호인 ‘경덕(景德)’으로 그 제목의 머리에 붙였으며, 한림 학사 양억(楊億), 병부 원외랑 이유(李維), 태상 승(太常丞) 왕서(王曙)가 조서를 받들어 함께 재정(裁定)을 가하고 버리고 취하게 된 경우를 매우 자세히 서문에 썼다. 《송사(宋史)》의 태중(太中) 상부(祥符) 2년의 글을 상고해 보니, 이르기를, “소주(蘇州) 승(僧) 도원(道元)이 불조(佛祖) 이래 명승(名僧)의 선화(禪話)를 찬하여 《전등록》 30권을 만들어서 올리기로 명하여 목판에 새겨 선포하게 하였다.” 하였고, 양억(楊億) 등이 간정(刊定)한 사실은 기재되지 아니하였다. 어찌 사가(史家)가 생략하게 되었던가.
그 제목이 경덕(景德)으로 되었다면 그 《전등록》이 경덕 연간에 이뤄졌는데, 상부(祥符) 연대에 바쳤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가의 실수였을 것이다. 번양 마씨(?陽馬氏)가 저술한 《통고(通考)》에는, “양억이 만든 것이 아니라.” 지적하였으니, 양억이 비록 문장의 선비이기는 하나 입후(立后)의 제서(制書)도 오히려 거절하고 초하지 아니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부도(浮圖)에 의탁하여 위서(僞書)를 만들어서 임금을 속이고 세상을 현혹하게 하였던가. 이때에 재상 왕단(王旦)이 국병(國柄)을 담당하였는데 일대의 위인이었다. 그가 죽게 되면서 유명(遺命)이, “머리 깎고 검은 옷을 입혀서 염(斂)하라.” 하였는데, 양억이 한림(翰林)으로 있어 선학에 조예가 깊다는 칭호를 받으므로 이 《전등록》이 진상되자 간행의 명령이 양억에게 미쳤던 것인가.
《책부원구(冊府元龜)》는 역대 군신의 사적이요, 요현(姚鉉)의 《문수(文粹)》는 당(唐)의 문장으로 세교(世敎)에 관한 것이다. 이 두 서적이 다 상부 연간에 다뤄졌으나 목판에 각하여 선포하라는 명령이 내리지 않았음을 볼 때, 이 《전등록》이 한때에 소중하게 되었다는 것은 가히 알 수 있다. 삼가 생각건대 주상 전하는 지극한 인(仁)이 민심에 흡족하고 지극한 도가 물(物)의 밖에 뛰어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의 별전(別傳)의 묘리에 대한 묵계(?契)가 있는 것은 고루한 선비의 얕은 소견으로 능히 측량할 바 아니다.
운(雲)이 일찍이 금중(禁中)에 있어 이 《전등록》을 담론한 적이 만 1년인지라. 주상은 깊이 그 재능을 아시고 십자(十字)의 법호와 선교(禪敎) 도총섭(都摠攝)을 하사하여 조계도대선사(曺溪都大禪師)를 삼아 내원(內院)에 들어와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능히 성심(聖心)을 체받아 목판에 각하여 선포하였으니, 그 오는 자를 가혜(嘉惠)하고 심학을 넓힌 그 공은 이루 말할 수 있으랴. 무릇 마음을 비유하자면 등불이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맞으면 다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고 등불과 등불이 서로 계속하면 역시 다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니, 우리 국가가 우러러 자광(慈光)과 역수(曆數)의 전함을 힘입는 것이 역시 등불의 다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 신의 이 서문이 망작(妄作)이 아니게 된다. 후일의 학자는 마땅히 복을 비는 것으로써 일을 삼고 한갓 겉치레만 하려 들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선화(禪話)에 이르러서는 신이 배우지 못한 바이기로 언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