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무능은 견딜 수 있지만 성격차이·외도는 못 참겠더라”
입력 : 2007.04.27 23:41 / 수정 : 2007.04.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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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문 나선 중년 남녀, 그 뒤의 삶은
“오늘 변론 종결하고 5월 0일 0시에 선고해서 보내드릴 테니 법원에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난 25일 서울가정법원 369호. 이혼소송 종결은 단 한 문장으로 끝났다.
재판장에 앉아 있는 사람 모두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판사, 변호사, 원고, 피고 가릴 것 없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차분히 재판은 진행됐다. 15평 남짓한 공간, 28석의 방청객 자리에 앉은 사람 중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40대 후반 여성에게 이혼 판결을 내리며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혼 절차가 끝나면 서류 들고 구청이나 동사무소 가서 힘들 때 정부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나 알아보세요. 절대 용기를 잃으시면 안 됩니다.”
이날 이 법정에서 선고된 이혼 건수만도 60여건. 이혼만은 절대 못하겠다는 피고, 사라진 남편을 이제는 잊겠다며 이혼을 결심한 원고, 속아서 결혼했다고 읊조리는 피고까지. 이혼 소송을 위해 가정법원을 찾은 40~50대 남녀 각자의 속사정은 다양했지만 굳은 표정만은 똑같았다.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고 한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들은 이젠 더 이상 함께 하는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이혼 통계 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해 이혼한 부부는 12만5032쌍이다. 이는 2005년 12만8500건보다 감소한 것이지만 50세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은 3년째 늘고 있다. 남성의 경우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이혼율이 감소했지만 45∼49세와 50∼54세, 55세 이상에서 각각 2.8%, 7.3%, 7.8%나 증가했다. 여성 역시 45∼49세(10.1%), 50∼54세(16.9%), 55세 이상(14.3%) 등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서 이혼율이 상승하고 있다. 평균 이혼연령도 높아져 남자 42.6세, 여자 39.3세였다. 황혼이혼이 어느새 이혼의 큰 축(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황혼이혼 그 이후의 삶은 어떨까?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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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아갈지 시간 지나니 막막”
10년 전 이맘때 이혼한 이모씨는 올해 나이 육십다섯이다. 전처가 보증을 잘못 서서 전재산을 잃는 바람에 이혼을 결심했다.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지만 이혼을 강행했다. 양육권을 전처에게 넘긴 이씨는 10년 동안 혼자 살고 있다. 하지만 생활은 녹록하지 않다. 김씨는 매일 아침 식사를 거르고 점심은 지하철 계단에서 파는 1000원짜리 김밥 두 줄로, 저녁은 집 근처 식당에서 해결한다. 세탁, 청소, 설거지 등 갖은 집안 일 역시 이씨 몫이다. 어울릴 친구도 점점 없어져 혼자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씨는 “늙을수록 배필이 있어야 한다고 절실히 느낀다”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내의 과거 일도 다 용서가 되고,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직업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 이혼자들의 삶은 더 고단하다. 거액 위자료를 받지 않는 한 금전적 여유는 없다. 신혼 때부터 전 남편의 여자 문제로 가슴앓이를 한 김모(여·58)씨는 2001년 이혼을 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받았다. 현재 수입은 방 한 칸을 세놓고 받는 80만원이 전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은 가게를 열었지만 장사가 안 돼 1000여 만원만 날리고 문을 닫았다. 김씨는 “사회 경험이 전혀 없던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니 막막하기만 하고 잘 되지도 않았다”면서 “곁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떨어지고 없어지고 나니 그 사람이 귀한 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가정법원이 동거기간별 협의이혼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결혼기간이 ‘1년 미만’인 부부의 이혼신청은 4.2%에 불과하다. ‘1~3년’ 역시 10.7%이다. 반면 ‘26년 이상’은 18%, ‘21~25년’은 11.2%의 비율을 보였다. 이혼 부부 3명 중 1명은 적어도 20년 이상 함께 살고 나서 이혼하는 셈이다.
과거 결혼과 동시에 자녀를 갖던 지금의 40~50대 부부들이 첫째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남편이 직장을 그만둘 무렵 이혼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숙명여대 정책대학원 김영란 교수는 “최근 이혼의 80% 이상이 여성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면서 “황혼이혼의 경우 나이든 여성들이 잊고만 살았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이혼까지 결심하게 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년의 홀로서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지가 결혼정보회사 ‘㈜좋은만남선우’와 공동으로 이혼연령 50세 이상 32명(남 17명, 여 15명)을 개별 면담 조사한 결과, ‘이혼 후 현재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46.8%(15명)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늦은 나이에 어렵게 이혼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함께 할 이성(異性)이 그립다고 말했다. 외로움 외에도 18.7%(6명)는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을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이혼 후에도 과거의 배우자로 인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이혼 후 경제적 상황에 있어서는 여성들의 고통이 더 컸다. 황혼이혼 여성 중 40%(6명)가 “이혼 후 생활이 더 힘들어졌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29.4%의 비율을 보였다. “현재 소득이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도 남성은 88.2%(15명), 여성은 60%(9명)였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이혼자 가운데 57.2%가 생활이 더 힘들어졌다고 대답해, 배우자 없는 생활은 이혼 기간이 늘어날수록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척들과의 관계도 나빠졌다. 면담자 32명 중 62.5%(20명)는 “이혼 후 친척들과 교류가 뜸해졌다”고 대답했다. “비슷하다”고 답한 비율은 34.3%(11명)였으며, “더 좋아졌다”는 사람은 3.1%(1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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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자 대부분 “후회 한 적 있다”
황혼이혼자 대부분은 이혼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다고 했다. 1998년 이혼한 최모(여·61)씨는 이혼 위자료로 3층짜리 단독주택을 구입해 보증금과 월세 수입만도 적지 않다. 생활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최씨는 이혼 후 지금까지의 생활이 끔찍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IMF 터지고 살림도 어려운 상황에 남편에게 딴 여자까지 생기니까 이혼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혼은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막막하더군요. 월세를 받으니 입에 거미줄은 안 쳐도 됐지만, 금전적인 것보다 집안의 기둥이 없다는 생각에 가족이 휘청거렸습니다. 집안 대소사에 대해 애들과 상의할 수도 없고, 애들도 나도 서로 불안해하기만 했죠. 남편이란 사람의 자리가 얼마나 큰 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최씨는 황혼이혼이 단지 돈 문제 때문이라면 당사자들은 분명 이후에 후회하게 된다고 했다.
12년 전 이혼한 김모(여·60)씨도 “처음에는 남편에게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좋기만 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내 자리를 찾고 나서도 항상 스스로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참고 살아왔다고 느끼는 50~60대들 중 많은 수는 법적 절차를 받아 부부의 연(緣)을 끊는다. 일본에서도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의 정년(60세) 퇴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황혼이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달부터 ‘노령후생연금분할제’가 시행돼 부부가 이혼한 뒤 2년 안에 청구하면 결혼 기간에 따라 연금의 최대 50%까지 배우자와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 제도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99년 도입된 ‘분할연금제도’로 인해 이혼 시 남편이나 아내가 연금을 낸 기간 중 결혼기간에 해당되는 연금액의 절반을 전 배우자에게 나눠 주어야 한다. 작년 한해 이 연금 혜택을 받는 사람은 950명. 노년 여성들의 이혼 욕구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재혼 하려면 가장 먼저 보는 게 돈”
황혼 이혼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재혼이나 동거를 하고 싶어한다. 면담조사에서도 62.5%의 황혼 이혼자들은 “지금이라도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답했다. 60세 이상 이혼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통계조사에서도 황혼이혼 후 재혼 건수는 10년 전에 비해 남성은 9.3배, 여성은 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경험에서 오는 두려움은 물론이거니와 노년 재혼의 경우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는 더 어렵다. 이혼한 지 18년째인 김모(69)씨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면서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게 돈이고, 집 해달라, 아파트 사 달라, 소유권 넘겨달라고 하면서 향락만 찾는 이들이 많아 노후를 함께할 사람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 # 왜 갈라섰을까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사십이 넘어 이혼을 한 5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복수응답), 이혼 사유를 1위가 ‘성격 차이’였다. 총 333명(63.9%)이 “상대방의 성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헤어지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2003년 이혼한 오모(65·여)씨는 “내가 오랜 시간 장사를 해왔기 때문에 전 남편의 무능한 생활력은 참을 수 있었지만 사사건건 성격이 안 맞아 싸우게 되는 건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유는 ‘배우자의 부정(不貞)’. 총 106명(20.3%)이 바람난 남편, 다른 남자가 생긴 아내 때문에 이혼한 것으로 나왔다. 김모(55)씨는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멍하니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늦은 나이에 전 아내에게 남자가 생겨 위자료 한 푼 주지 않고 바로 이혼해 애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자의 부정으로 이혼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녀 양육을 본인이 도맡아 하고 있는 편이었다.
뒤이어, 42명(8.1%)이 ‘경제 문제’로 이혼했다. 사업이 갑작스레 망하거나 퇴직 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게 된 경우의 이혼이다. 돈 문제와 관련해 이혼한 사람은 성격 차이로 황혼이혼을 한 사람의 1/8 수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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