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물리적 나이 넘어선다우리 나이 일흔셋, 돼지띠 할아버지가 2007년 황금돼지 해에 대박을 터뜨렸다. 연기 생활 51년째인 배우 이순재, ‘야동 순재’·‘악플 순재’· '폴짝 순재’· '이나우두' 등의 별명으로 더 유명한 그는 젊은이들에게 ‘완전 짱’이다.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몰래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고 인터넷에 악플(악성 댓글)을 남긴다. 촐싹대며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걸핏하면 아들과 손자에게 욕을 하고 발로 찬다. 축구시합에 나간다며 맹연습하다 정작 경기에선 공도 제대로 못 차고 쓰러져 앰뷸런스 신세를 진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야동 순재’· '악플 순재’· '폴짝 순재’· '이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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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는… 1935년 함북 회령 生 ·서울고교 · 서울대 철학과 졸업 · 경희대 명예한의학 학사 · 56년 연기 시작 ·연기자협회 초대(71년) · 2대(72년) · 12대(88년) 회장 · 92년 14대 국회의원(서울 중랑갑) · 98년∼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 · 2001년∼ 대한고혈압학회 명예 홍보대사 ·2002년∼ 새생명복지회 후원회장 ·2007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회장 | | MBC TV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모습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할아버지와 너무 다르다. 그래서 배우 이순재도 출연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망설였다. 희극 연기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 그전에 코미디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번에는 워낙 배역이 다르고 엉뚱했다.
“솔직히 아무리 웃겨도 정도가 있지, 점잖은 체면에 인기를 얻겠다고 별짓 다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나섰으니 욕먹을 각오를 하고 연기했는데 반응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사춘기 소년과 같은 행동을 하니 젊은 친구들이 동질감을 느꼈나 봐요. 다 늙은 할아버지가 일약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1990년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가 대변한 가부장적이고 근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거침없이 하이킥>에선 친근하지만 주책없고 빈틈이 많은 ‘작아진 아버지’로 변했다. 집안의 어른이지만 호통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실권은 며느리에게 빼앗긴 순재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지금의 아버지와 가족의 달라진 모습을 새로 발견했다.
“10 · 20대의 인기는 또래 얼짱 탤런트만 얻을 수 있다는 공식을 깬 겁니다. 드라마가 성공하는 데 남녀노소가 따로 있겠어요? 새삼 드라마 소재와 연기의 중요성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를테면 가족과 사랑 · 우정 등-이 영원한 테마란 점도 깨달았지요.”
<거침없이 하이킥>의 방영 시간대는 평일 저녁 8시20분. 경쟁사의 일일 연속극에 밀리고, 그게 9시 뉴스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 MBC가 샌드위치 대타로 내놓은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3대 중 손자 세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던 게 이순재 · 나문희 등 나이 든 조역들이 더 인기를 끌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이순재가 꼽는 주요 출연 작품 드라마 : <내 멋에 산다> · <일요부인> · <눈이 내리는데> ·<연화> · <고독한 관계> · <아롱이다롱이>(이상 TBC)/ <풍운> · <보통사람들> · <목욕탕집 남자들>(이상 KBS)/<사랑이 뭐길래> · <허준>(이상 MBC) 연극 : <시라노> · <베케트> · <말괄량이 길들이기> ·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 · <세일즈맨의 죽음> 영화 : <막차로 온 손님들> · <초연> · <집념> · <토지>
상훈 66년 한국일보 연극영화상 주연상 · 2000년 SBS 연기대상 공로상 ·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 2002년 보관문화훈장 | | ‘할배 할매 부활’의 대표주자
드라마는 몇 년째 백수로 집에서 컴퓨터를 통해 주식시장을 들여다보는 게 유일한 일거리인 준하, 이런 자식을 겉으론 뭐라고 하지만 속으론 너무 안타까워 하는 아버지 순재를 등장시킨다. 동서의 소개로 사무직인 줄 알고 나간 직장에서 서류 복사와 사장 자가용 세차 등 허드렛일을 하는 준하. 자식이 궁금해 찾아갔다가 이를 지켜보는 순재. 순재는 준하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버스 안에서 묵묵히 입을 다문 채 아들 준하의 손을 꼭 쥔 순재…. 그 장면에서 많은 시청자가 아버지가 생각나 눈시울을 적셨다.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남아 있으면 도둑)’란 유행어에서 보듯 40대 중반만 돼도 혹시 직장에서 잘리지 않나 걱정하는 게 요즘 우리나라 보통 남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국민 할아버지’ 이순재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열연하는 모습에서 힘과 용기를 찾는다.
“진정한 풍자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나옵니다. 인생을 살면서 느낀 희로애락 · 생활철학 ·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작품에 녹아 나올 때 웃음 속에서 감동을 주는 게지요. 젊은이의 일탈 행위보다 황혼을 바라보는 노인의 로맨스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 간 관계, 달라진 부부의 모습처럼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인생이 묻어나오는 시트콤이 보여줄 게 많지요.”
사실 이순재는 ‘반컴맹’이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e메일도 잘 보내지 못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이 인기를 끌면서 이순재 가짜 미니홈피와 낚시 홈피까지 등장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TV 본방송 시청률보다 인터넷 다시보기 시청률이 훨씬 높다. 야행성인 젊은 시청자들이 밤 늦게 컴퓨터로 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순재도 요즘 컴퓨터를 가끔 켠다.
“댓글이 올라온 것을 보면 젊은 친구들이 예리해요. 때론 비판적이며, 문제의식도 강하고, 대안을 내기도 하고…. 그냥 웃으며 보고 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 젊은이들의 자세에서 한국의 미래를 봅니다.”
이순재는 요즘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새로운 트렌드인 ‘할배 할매 부활’의 대표주자다. 1주일 스케줄을 보면 잘나가는 젊은 배우들의 전성기 못지않다. 젊은 배우도 힘들다며 꺼리는 연극에다 3월 중순까진 KBS 2TV 월화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에도 출연했다.
그는 2005년 46년 만에 소극장 공연에 도전했다. 여기서 그는 노인 문제를 들고 나왔다. 벌써 이태째 겨울이면 빨간 넥타이에 번쩍거리는 백구두를 신은 날라리 영감으로 무대에 선다.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에서 20년 전 아내와 사별한 바람둥이로 나오는 그는 3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와 사랑을 쌓아간다. 할머니가 뜨는 할아버지 스웨터가 완성돼 갈 무렵 할머니의 병은 깊어졌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4전5기 끝에 운전면허를 딴 할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할머니는 숨을 거뒀다.
“노년층 심리를 수채화처럼 그린 연극인데 젊은이들도 많이 와서 보고 눈물을 흘립디다. 벌써 노인 인구가 500만을 바라보는 고령화사회 아닙니까. 사회가 노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연기는 절대 안 한다
배우 이순재는 역할의 유사성이 배우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연기 생활을 하다 보면 들어맞는 역할이 보이고, 자연스레 비슷한 역할이 계속 주어진다. 그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나 스승, 고집이 있고 까다로운 성격의 인물을 주로 맡았다. 드라마 <풍운>에서 대원군으로, <허준>에서 애제자 허준의 의술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해부하라는 유언을 하고 숨을 거두는 스승 유의태로, <상도>에서 박주명으로 나오는 식이다.
“그전 작품과 같은 이미지를 재연하면 배우의 생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할의 유사성을 극복해야지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배우로서 지금까지 연기해온 300여 명의 인물(드라마 150편, 영화 100편, 연극 70여 편)이 “모두 달랐다”고 자부하는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선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 180도 달라 유쾌하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연기도 예술’이라고 믿으며, 배우는 ‘혼(魂)으로 사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연기자란 다른 직업과 달리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평가해야 하는 외로운 길”이라며 “그래서 일관된 목표와 가치관,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배우란 예술적 성취감으로 하지, 돈이나 인기만 좇았다면 벌써 다른 길로 바꿨어야 했다면서.
“제가 키가 큽니까? 아니면 얼굴이 수려합니까? 목소리도 젊어서부터 허스키했고…. 그래도 51년째 이렇게 버티는 것은 연기력 때문 아니겠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연기자들은 언어 구사력이 떨어지고, 연기도 기초 훈련을 게을리한 채 겉멋만 부리려 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연기 생활 51년째인 이순재는 한국 드라마의 산 증인이자 여러 기록의 보유자다. 국내 최초 일일 연속극 <눈이 내리는데>(TBC), 최장수 일일 연속극 <보통 사람들>(KBS)에 출연했다. 또 <사랑이 뭐길래>는 전체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 <허준>은 사극 중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갖고 있다.
“아 글쎄, 80년 TBC가 KBS로 통폐합되면서 TBC 드라마가 다 없어졌더라고요. 한국 방송 80년을 기념한다면서 그래 TBC 17년 드라마 역사를 뺀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의 연기 생활 50년이 항상 양지만은 아니었다. 서울대 3학년 시절부터 연극판을 드나들자 부친 등 가족의 반대도 있었다. 연기 생활 초반 배가 고팠고, 그 대신 생활을 떠맡은 부인은 전공인 무용을 포기한 채 만두가게와 중국집 등을 차리기도 했다.
“한국 방송계에도 이제 미국의 에미상 같은 권위 있는 상이 하나 있어야지요. 젊은 친구를 다음에 캐스팅하기 위해 사탕발림으로 연말이면 방송국마다 주는 그렇고 그런 상 말고…. 적어도 80% 이상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한 상말입니다. 사(私)나 돈이 끼어들 소지도 막고…. 그렇게 만들지 못하겠걸랑 처음에는 오스카나 토니 · 에미상 흉내라도 내서 말이죠.”
원로 연기자 이순재는 국내 드라마 제작 현실이 안타깝다. 급히 쓴 엉성한 극본으로 기본기도 충분히 익히지 않은 탤런트를 등장시켜 전날 찍어 오늘 내보내는 식이라서 그렇다. 이와는 달리 일본 드라마는 대부분 사전 제작이다. 세 번, 네 번 고친 완전해진 원고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만든다. 촬영하다 마음에 안 들거나 잘못되면 보완하고, 또 찍고….
“세계적으로 한국 같은 제작 풍토는 없습니다. 오늘 밤 새워 촬영해 이튿날 내보내니…. 배우나 감독의 역량을 60% 정도 발휘한 상태에서 그냥 찍어 내보내는 거예요. 제대로 하면 적어도 20%는 더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
한국 드라마 이대론 안 된다
원로 배우의 드라마 제작 풍토에 대한 걱정은 계속 이어진다. 이래 갖곤 한류 바람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실 중국에서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그가 대발이 아버지로 출연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였다.
한국 같은 제작 풍토는 없습니다. 오늘 촬영해서 이튿날 내보내니… 이러다가 한류 바람 식을까 걱정. | “이제 드라마를 찍으면 우리 안방을 찾아가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이나 중국 · 동남아는 물론 멀리 미국 · 중동에도 나가잖아요.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서 되겠어요! 최근 한류 바람이 식고 있는 것은 해당 국가들의 견제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우리에게 더 큰 원인이 있습니다.”
극본에도 문제가 많다. 그는 작가 수준이 그전만 못하다고 본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작품성을 갖춘 중량감 있는 작가가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요즘은 어깨 너머로 배운 듯한 규수 작가가 많아졌다. 이들은 감각이 있어 트렌드는 집어내지만 아무래도 문학성과 작품성은 떨어진다. 특히 사극의 경우 고증은 물론 어휘 선택에도 문제가 많다.
“제작 풍토가 이러니 드라마가 만날 아이들 이야기고, 시청률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였다가 줄였다가 야단인 겝니다. 조금 뜬다 싶으면 출연료가 터무니없이 올라가고…. ”
그는 솔직히 후배 연기자들의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거 선배들이 데뷔할 때처럼 허기 진 배를 움켜쥔 채 연극 무대를 저버리지 말라고 요구할 수 없긴 하지만….
“조금 인기가 있다 싶으면 일일 연속극은 힘들다며 안 하려 들어요. 일주일에 적어도 나흘은 촬영해야 하니까…. 그래서 손 쉬운 미니 시리즈나 하고, 얼굴이 알려지면 광고 찍어 돈 벌고, 조금 쉬다가 남의 대사로 영화를 찍거나 모바일 화보를 만드는 식이에요. 이런 경우라면 배우라기보다 차라리 모델에 가까운 거죠. ”
이처럼 국내 드라마 제작 풍토가 질보다 양, 연기력보다 스타성, 작품성보다 흥행성, 예술성보다 상업성을 지나치게 따지는 비즈니스로 너무 치우치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부작용도 나타난다고 그는 걱정한다.
“기대는 큰 데 현실은 따라주지 않고, 한때 잘 나갈 때의 시선을 의식해 아무 일이나 할 수는 없고 주변에서 뭐 하느냐며 압박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극단적 상황에까지 이르는 것 아니겠어요.”
가슴 따뜻한 로맨스 그레이
이순재는 정치인으로서 10년 가까이 외도를 했다. 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중랑갑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재수해 92년 14대 의원으로 당선됐다. 당시 일각에선 ‘대발이 아버지’ 인기 덕분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그는 “지역에 동화돼 어려운 이웃을 찾아 열심히 뛴 덕분”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13 · 14대 총선에서 경쟁했던 이상수 씨가 2005년 경기도 부천갑 보궐선거에 나오자 그가 페어 플레이를 했다며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정치판을 떠난 뒤에도 그는 실제 사는 곳과 달리 주민등록 주소지는 면목동이다. 정치활동이야 접었지만 소득세는 제2의 고향에 내자는 생각에서다. 그는 지금도 중랑사회복지협의회장으로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다시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그는 정치 지도자의 참 리더십에 대해 “본인과 가족의 행복권은 잠시 접어둔 채 국가를 위해 아낌없이 바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전에 기념관도 짓지 말고….
그는 세종대에서 10년째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 연기론을 강의한다. 정규 수업과 상관없이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연극 연습을 겸한 워크숍을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배우나 탤런트가 되려고 목을 매지 말고 폭 넓고 유연하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세상은 다양하다.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뛰어다녀라. 삶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라면서. 그 중 하나로 괜찮은 극본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도 방법이라고 권한다.
“이 나이에 할 일이 많은 것 자체가 큰 행복이지요. 자고 일어나면 열심히 쫓아 다닙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손해 보듯 사는 게 괜찮다”고 말한다. 살다 보면 자꾸 욕심을 내게 되는데, 남보다 너무 앞서가려 하지 말고 조화롭게 사는 게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도, 건강도 지키는 길이라고.
배우에겐 정년이 없다고 강조하는 그는 “중간에 대사를 잊어버려 자꾸 NG를 낼 정도가 되면 스스로 접어야죠. 2000년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역을 맡았는데 그 많은 대사를 별 탈 없이 소화한 것을 보면 아직은 괜찮다”며 웃었다. 골프를 즐기는 그는 이번 겨울에 넉 달 동안 드라마와 연극에 겹치기 출연하느라 너무 바빠 한 번도 잔디를 밟지 못했다고. 대신 그는 오늘도 드라마에서 거침없이 킥을 한다.
영화 · 방송계의 6070 파워
배우 이순재와 2007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은 앨런 아킨(왼쪽)은 닮은 꼴이다. 나이는 아킨이 일흔셋으로 한 살 많은데, 연기 경력은 이순재가 51년으로 1년 더 많다. 이순재가 가족 몰래 야한 동영상을 보다 얻은 별명이 ‘야동 순재’인데, 아킨은 영화 <미스 리틀 션사인>에서 손자 · 손녀에게 성적 농담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엽기’ 할아버지로 나온다.
2007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6070세대 노배우들이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킨에 이어 <더 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열연한 헬렌 미렌(62)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66년과 68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아킨은 39년 만에 다시 도전해 오스카 트로피를 안았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보여준 것이다.
상은 못 받았지만 노익장을 과시한 배우로 영화 <록키 발보아>에서의 은퇴 복서 실베스터 스텔론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예순인 그가 젊은 현역 챔피언에게 도전하기 위해 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은 관객에게 용기와 통쾌함을 준다.
영화 <록키>는 30년의 역사를 갖는다. 이탈리아 출신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뉴욕 뒷골목을 전전했던 스텔론. 6일 만에 쓴 각본으로 감독과 주연까지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속 록키처럼 단숨에 아메리칸 드림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록키>는 76년 아카데미 10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돼 작품상 · 감독상 · 편집상을 받았다. 그 스텔론이 <록키 5> 이후 16년 만에 <록키 발보아>로 돌아왔다.
대한민국에는 또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있다. 매주 일요일 낮 KBS 1TV ‘전국 노래자랑’을 통해 인사하는 올해 여든의 젊은 오빠다. 88년부터 19년째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그는 코리아 최고령 MC. 단 한 차례도 펑크를 내지 않았다. 출연자가 반갑다며 안고 뒹구는 바람에 갈비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녹화를 끝내고 병원에 갈 정도로 프로그램에 열과 성의를 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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