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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보(李淸甫) 개(塏) 학사(學士)의 시에 차운하다-서거정(徐居正)-

천하한량 2007. 4. 6. 02:49

시류(詩類)
 
 
이청보(李淸甫) 개(塏) 학사(學士)의 시에 차운하다. 3수
 

수척한 몰골이 거울 속에 더 수척해졌어라 / 瘦骨新添?鏡中
고달픈 인생 허둥지둥 또 봄바람을 만났네 / 勞生草草又春風
술은 해갈을 시키나 되레 술버릇을 만들고 / 酒能解渴還成癖
시는 회포를 풀지만 끝내 곤궁하게 되는 걸 / 詩縱攄懷竟坐窮
매류는 무심하여 못생긴 손을 압도하건만 / 梅柳無情欺醜客
천지는 도량 있어 한가한 노인을 포용하네 / 乾坤有量著閑翁
문장 가운데 각로의 명성이 가장 크거니 / 文章閣老聲名大
날로 몇 통의 시편 보내준 데 감사하노라 / 多謝詩篇日幾筒

작은 창 앞에 앉았는 유유한 이 신세여 / 悠悠身世小窓中
짧은 머리는 성기어 흩날릴 거리도 없네 / 短髮蕭疎不滿風
산중의 범 잡는 건 진정 나쁘지 않지만 / 射虎山中良不惡
길 위에 나귀 탄 이는 흔히 곤궁하다오 / 騎驢陌上亦多窮
황량한 소나무 오솔길은 도원량이요 / 荒?松逕陶元亮
낙백해도 매화 같기는 육방옹이로다 / 落魄梅花陸放翁
세상에 쓸모없는 재주임을 깨닫겠으니 / 漸覺疎才乖世用
봄 강에 돌아가 낚시통이나 물어보련다 / 春江歸問釣魚筒

세월은 언뜻언뜻 꿈속처럼 흐르는 가운데 / 光陰?忽夢魂中
일찍 일어나니 서창의 새벽바람 무서워라 / 早起書窓怯曉風
파리한 말 해진 갖옷은 장로의 흥취이고 / 羸馬弊?張老興
남은 술 식은 불고기는 소릉의 궁함일세 / 殘杯冷炙少陵窮
한 봄은 내내 고달픈 채 시 동무도 없었고 / 一春疎憊無詩伴
만사는 불운하여라 이미 병든 늙은이로세 / 萬事蹉?已病翁
문득 바라는 것은 고향으로 일찍 돌아가 / 却望故山歸計早
기필코 부지런히 연통이나 마시는 거라오 / 且須勤作灌蓮筒


[주D-001]각로(閣老) : 한림 학사(翰林學士)의 별칭인데, 당시 이개(李塏)가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였으므로 이렇게 일컬은 것이다.
[주D-002]산중의 …… 건 : 범을 쏘아 잡는다는 것은 흔히 영웅(英雄)의 호기(豪氣)를 형용하는 뜻으로 쓰인다.
[주D-003]길 …… 곤궁하다오 : 눈 내리는 날 나귀 등에 앉아서 시(詩) 읊는 흥취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증사진하수재(贈寫眞何秀才) 시에서 성당(盛唐) 시대의 시인(詩人) 맹호연(孟浩然)의 시 짓는 모습을 일러 “그대는 또 못 보았나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리고 시 읊으며 뫼산 자 어깨 으쓱인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황량한 …… 도원량(陶元亮)이요 : 원량은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낙백(落魄)해도 …… 육방옹(陸放翁)이로다 : 낙백은 영락(零落)하여 실의(失意)한 모양을 말하고, 방옹은 육유(陸游)의 호이다. 육유의 설후출유희작(雪後出遊?作) 시에, “큰 도량의 천지는 낙백한 자를 포용하지만, 정이 많은 풍월은 노쇠한 이를 비웃는구나. 내 인생 또한 매화처럼 담담하기만 해라, 제비는 아직 아니 오고 나비도 알지 못하네.〔大度乾坤容落魄 多情風月笑衰遲 吾生也似梅花淡 燕未歸來蝶未知〕”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파리한 …… 흥취이고 : 장로(張老)는 장적(張籍)을 높여 이른 말로, 장적의 행로난(行路難)에, “상수 동쪽 가는 행인이 긴 한숨 짓노니, 집 떠난 지 십 년토록 아직 못 돌아갔네. 해진 갖옷 파리한 말로 여행 길 몹시 어려워라, 하인들도 모두 굶주려 근력이 거의 없구려. 그대는 못 보았나 침상 머리 황금이 다하면, 장사도 얼굴빛을 잃는다는 것을. 용도 진흙 속에 묻힌 채 구름을 못 만나면, 저 하늘에 오를 날개가 생길 수 없는 거라오.〔湘東行人長歎息 十年離家歸未得 弊?羸馬苦難行 ?僕盡飢少筋力 君不見牀頭黃金盡 壯士無顔色 龍蟠泥中未有雲 不能生彼昇天翼〕”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7]남은 …… 궁함일세 : 소릉(少陵)은 두보(杜甫)의 호인데, 두보의 증위좌승(贈韋左丞) 시에, “나귀 타고 삼십 년 동안, 장안의 봄을 나그네 신세로 살아왔으니, 아침이면 부잣집 문을 찾아가고, 저녁이면 살찐 말 뒤를 따랐는데, 남은 술과 식은 불고기에, 가는 곳마다 남몰래 몹시 서러웠네.〔騎驢三十載 旅食京華春 朝?富兒門 暮隨肥馬塵 殘杯與冷炙 到處潛悲辛〕”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8]연통(蓮筒) :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 정각(鄭慤)이 삼복(三伏) 때마다 사군림(使君林)에 가서 피서(避暑)를 하였는데, 항상 큰 연잎에 술 서 되를 담고 연의 잎과 줄기의 사이를 비녀로 뚫어서 술이 줄기를 타고 내려오게 하여, 줄기를 마치 코끼리의 코〔象鼻〕처럼 구부려서 줄기 끝에 입을 대고 술을 빨아 마시면서 이를 벽통주(碧筒酒)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