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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또 길을 잘못 들어섰네.” 번잡한 출근 시간, 택시기사 김정현(39)씨는 급히 핸들을 돌렸다. 1년 전부터 쏟아지는 아침잠 때문에 번번이 길을 잘못 들어서 손님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얼마 전에는 졸음 운전으로 접촉사고까지 냈다. 잠을 쫓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커피와 드링크를 자주 마시지만 잠시 효과가 있을 뿐 늘 피곤에 찌든 몸은 늘어져서 생기를 찾지 못했다. 특별한 질병도 없었던 김씨는 답답한 마음에 한의원을 찾았고 만성피로라는 진단을 받았다.
피로는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쏟았을 때 누구에게나 생기는 증상이다. 푹 쉬고 나면 피로가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만성피로는 이와 달리 1개월 이상씩 지속적으로 피로감이 나타나고 아무리 휴식을 취해도 사라지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만성피로의 주된 원인은 피로의 누적이다. 과도한 업무로 제때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몸속의 피로해소 시스템이 무너져 만성피로가 생긴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불안 등의 정신적 요인에 의해 나타날 수도 있다. 목표에 집착하고 경쟁심이 강한 완벽주의적 성격일수록 증상이 심할 수 있다. 당뇨병, 갑상선질환, 고혈압, 빈혈, 결핵, 간염 등의 질병이 있을 때 역시 만성피로 증상이 동반된다.
피로감이나 졸음 외에 다른 증상도 나타난다. 이유 없이 목 안이 자주 아프고 목줄기나 겨드랑이에 통증이 생길 수 있다. 팔 다리가 저리고 어깨 주위가 아프기도 한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다. 조금만 운동을 해도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증상 때문에 만성피로 환자들은 학업이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체력이 약해 권태감과 무기력증이 나타난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커지면 만성피로가 악화되는 악순환이 된다.
만성피로는 간의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로 피로하다면 간 기능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 간은 합성과 대사, 해독을 담당하는 장기로 인체가 휴식을 취할 때 피를 정화하며 피로를 이길 수 있도록 한다.
몸을 이루는 물질들이 각각의 조직이 필요한 적당한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사과정에서 간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몸에 섭취된 영양소는 간에서 필요한 성분으로 변환돼 각 조직에 배분되고 조직에서 분해된 물질은 혈액을 타고 간으로 돌아온다. 간세포의 수많은 효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이용해 핵산, 비타민, 호르몬, 전해질을 합성하고 변환시킨다. 간은 또 몸 밖에서 들어온 이물질과 독소, 몸 안에서 생기는 대사물질을 담즙의 형태로 만들어 몸 밖으로 배설한다. 담즙은 담도를 통해 십이지장으로 배출되는데 담도가 막히는 담석증이나 간세포의 손상으로 담즙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배설되어야 할 물질들이 혈액 속에 남는다. 독소가 쌓이면 두통과 답답함, 어지러움, 근육통, 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피로가 만성적으로 계속된다.
만성피로를 피하기 위해서는 하루 7시간 숙면을 취하고 신체리듬을 살리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늦게 자더라도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해야 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면 오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해 무기력해지고 점심 때 과식을 하게 된다. 과식은 혈액을 소화기관으로 몰리게 해 뇌로 가는 혈액과 산소 공급량을 줄여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피로를 해소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휴식이지만 심리적인 피로일 때는 휴식만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다.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적절한 신체자극이 도움이 된다. 특히 스트레스를 풀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는 데 걷기 운동이 좋다. 경쾌하고 박진감 있는 걸음은 몸의 활력을 높이고 각 부위의 근육을 고루 발달시킨다. 피의 흐름을 개선해 막혀있는 기운을 풀어주므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냉온탕 목욕도 만성피로에 효과가 있다. 특히 손과 발을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넣으면 간편하게 피로를 완화시킬 수 있다. 냉온탕 목욕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몸의 저항력을 높인다. 목이 뻣뻣하거나 어깨가 결릴 때도 효과적이다.
전통차도 피로회복에 일정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른하고 머리가 멍한 경우는 쌍화차와 인삼차, 구기자차가 좋다. 과도한 정신노동이나 학습 등으로 인해 머리에서 열이 날 때는 맑은 기운을 머리로 보내는 녹차와 결명자차, 감국차가 좋다.
박준동 주간조선 기자(jdpark@chosun.com)
- [질병탐구(26)] 만성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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