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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탐구 (12)]정맥의 혈액이 역류하면 핏줄 드러나

천하한량 2007. 4. 6. 01:04
[질병 탐구 (12)]정맥의 혈액이 역류하면 핏줄 드러나
하지정맥류
[인터뷰] 미래흉부외과 정원석 원장

전시장 도우미 일을 하는 강수연(25)씨는 직업의 특성상 하루의 대부분을 서서 일한다. 일이 끝날 때면 다리가 퉁퉁 붓기 일쑤여서 밤마다 손으로 다리를 주무르는 것이 일과가 돼버렸다. 며칠 전 강씨는 종아리에 파란 핏줄이 손에 만져질 정도로 도드라져 나온 것을 발견했다. 치마를 입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저 두고만 볼 수 없어 병원을 찾은 강씨는 하지정맥류(下肢靜脈瘤·varicose vein)란 진단을 받았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의 정맥을 흐르는 혈액이 판막의 이상 등으로 인해 정체(停滯)되면서 해당 부위의 혈관이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튀어나오는 질환이다. 단지 핏줄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해서 하지정맥류는 아니다. 초기 단계에선 미관상의 문제만 있을 뿐 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지만 증세가 심해지면 다리가 무겁고 뜨끈뜨끈해지며 밤에 쥐가 나기도 한다. 나아가 습진이나 피부 궤양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동맥을 따라 머리끝, 손끝, 발끝까지 전달된다. 심장은 강력한 펌프작용을 하기 때문에 혈액을 우리 몸의 말단까지 원활히 공급한다. 문제는 나갔던 피가 어떻게 다시 심장으로 흘러들어 오느냐다. 특히 다리처럼 심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아래쪽까지 내려간 피는 중력의 힘을 이겨내고 올라와야 한다. 정맥을 흐르는 피는 심장처럼 확실한 펌프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근육의 움직임(이완과 수축작용)에서 오는 미약한 펌프작용과 판막(板幕)의 도움으로 근근이 심장까지 도달한다. 판막은 여닫이문과 같은 기능을 함으로써 심장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혈액은 통과시키지만 반대쪽으로 가는 혈액의 역류(逆流)는 막아준다.


하지정맥류는 정맥을 흐르는 피가 심장으로 되돌아가도록 도와주는 두 가지 작용 중 주로 판막의 고장으로 발생한다. 판막에 이상이 생기면 피의 역류를 막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구간의 혈관에 피가 몰린다. 이렇게 과부하가 걸린 혈관은 팽창하면서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오게 된다. 정맥류가 대부분 다리에서 발견되는 것은, 머리나 팔과 달리 심장보다 아래에 위치한 다리는 중력의 영향으로 인해 혈액의 역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막이 이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과 체질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정맥류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2~3배 정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여성호르몬이 판막 이상을 일으키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호르몬은 종종 혈관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평상시 닫혀있어야 할 판막을 벌어지게 하고 이 때문에 판막은 혈액의 역류를 막는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생리 중 혹은 피임약 복용으로 인해, 특히 임신이나 갱년기처럼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겪는 시기에 일시적으로 하지정맥류가 나타나기도 한다. 호르몬의 영향 외에도 임신 중엔 태아가 복부 주변의 정맥을 눌러 혈액의 흐름을 방해해 하지정맥류가 나타나기도 한다. 비슷한 이유로 비만도 복부의 내장지방이 혈관을 압박하기 때문에 하지정맥류와 일정 부분 상관이 있다.


하지정맥류는 교사나 백화점 점원처럼 장시간 서서 일하는 사람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장시간 서 있을 경우 다리 근육이 혈액을 위로 밀어주는 펌프작용을 제대로 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중력의 압박을 심하게 받아 판막 이상이 아니더라도 하지정맥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혈관의 두께에 따라 하지정맥류의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가느다란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모세혈관확장증이라 하여 돌출된 혈관의 두께가 1~2mm 정도다. 하지만 발목에서 무릎을 지나 허벅지로 이어지는 큰두렁정맥 같은 큰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튀어나온 혈관의 두께가 3~4mm에 이르게 된다. 처음엔 팥알처럼 군데군데 나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길게 이어져 라면발과 같은 모양을 하게 된다. 이쯤되면 혈관에 노폐물이 쌓여 피부궤양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하지정맥류를 치료하는 데는 크게 비수술적 요법과 수술적 요법이 있다. 핏줄이 살짝 드러나는 경미한 정도라면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압박스타킹은 혈관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피가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고 다리 근육의 펌프작용을 도와준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시켜줄 뿐 근본적인 치료법은 되지 못한다. 작은 혈관에 하지정맥류가 나타났을 때는 약물을 주사해 해당 혈관을 없애주면 된다. 정맥은 나무의 뿌리처럼 수없이 많은 혈관이 잔가지처럼 뻗어있기 때문에 혈관 몇 개를 없애더라도 혈액은 다른 혈관을 통해 심장에 도달하게 된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수술을 할 경우엔 절개 없이 레이저를 이용해 혈관을 태우는 방법과 절개 후 문제가 되는 정맥을 뽑아내는 방법이 있다. 최신 시술법은 절개를 작게 하고 국소마취만으로도 시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원할 필요가 없고 수술 후 이틀 정도만 지나면 샤워도 가능하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