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이개 ▒

송별시 -백옥헌(白鈺軒) 이개(李塏)-

천하한량 2007. 4. 2. 17:12
       
進退從容只適情 
肯微榮利肯微名
蒼諺百髮閑身世
繞屋山靑水更淸
去意翩然不可禁
先生高義起人欽
百壺江上如維酒
盡是斯文惜別心

 
진퇴는 종용하여 사정에 맞고
영리와 명예에 따름을 싫어하셨도다
창안이 백발되어 한가로운 신세되니
집주위에 산이 푸르고 물도 푸르구려
돌아가실 그 뜻 번의치 못하는
선생의 높은 뜻 사람에게 흠모케 하네
한강위에 즐비한 백잔의 술은
모두 선비들의 석별을 아끼는 마음일세,

백옥헌(白鈺軒) 이개 (李 塏) (태종(太宗) 17년 1417 - 세조(世祖) 2년 1456)

자(字)는 청보(淸甫) 백고(佰高) 호(號)는 백옥헌(白鈺軒)이며 본관(本貫)은 한산(韓山) 이며 이색(李穡)의 증손(曾孫)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이다.


세종(世宗) 18년 문과(文科)에 급제 세종 23년 저작랑(著作郞)으로 『명황계감(明皇戒鑑)』의 편찬에 차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創制)에도 참여했다.


세종 29년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세조 2년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이해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등과 함께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發覺)되어 혹독(酷毒)한 고문(拷問) 끝에 죽었다.


본래(本來)에는 세조(世祖)와도 친교(親交)가 있어 진상(眞相)을 밝히도록 강요 당했으나 굽히지 않고 처형(處刑) 당했다.

 

시문(詩文)이 청색하고 하고 글씨를 잘 썼다.

 

대구의 낙빈서원(洛濱書院), 과천(果川)의 민절서원(愍節書院), 의성(義城)의 충렬사(忠烈祠) 영월(寧越)의 창절사(彰節祠) 연산의 둔암서원(遯巖書院), 홍천(洪川)의 노운서원(魯雲書院), 한산(韓山)의 문헌서원(文獻書院)에 동학사(東鶴寺) 숙모전 영조(英祖) 34년 이조판서(吏曹判署)에 추증(追增) 시호(諡號)는 의열(義烈) 이었으나 뒤에 충각(忠簡)으로 개시(改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