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실록 ▒

世宗 80卷 20年 3月 14日 (戊戌) 003 / 중추원 사 이종선의 졸기

천하한량 2007. 3. 23. 02:31

世宗 80卷 20年 3月 14日 (戊戌) 003 / 중추원 사 이종선의 졸기


○中樞院使李種善卒, 字慶夫, 韓山人, 之子也。 年十五, 中壬戌科, 累遷佐郞、正郞。 丁父憂, 廬墓三年, 鄕黨稱孝, 事聞, 立石旌門。 守淳昌白川驪興, 執義、司諫、參議、代言, 陞仁寧府尹, 出爲江原忠淸道都觀察使, 復爲仁壽府尹。 又以中軍摠制, 爲咸吉道都觀察使, 陞判漢城府事, 遷開城留後, 以疾辭, 閑居怡養, 殆十年。 是年, 拜中樞院事, 至是卒, 致弔致賻賜祭。 諡良景, 溫良好樂良, 由義而濟景。 子五: 季畤季疄季甸季畹季町

세종 80권 20년 3월 14일 (무술) 003 / 중추원 사 이종선의 졸기


중추원 사 이종선(李種善)이 죽었다. 자는 경부(慶夫)이요, 한산이 본관이니, 이색(李穡)의 아들이다. 열 다섯 살되던 임술년에 과거에 합격하였고, 벼슬이 여러 차례 옮겨져서 좌랑·정랑을 지났으며, 부친 상을 당해서는 3년을 여묘(廬墓)하니 향당에서 효자라고 칭송하였다. 이 일이 나라에 알려져서 효자비(孝子碑)를 세우고 정문(旌門)까지 하였다. 외직은 순창(淳昌)·배천(白川)·여흥(驪興)의 수령을 역임하였고, 내직은 집의(執義)·사간(司諫)·참의(參議)·대언(代言)으로서 인수부 윤(仁壽府尹)으로 승진하였다. 다시 외방으로 나가서 강원·충청도 도관찰사로 있다가 다시 인수부 윤이 되었고, 또 중군 총제로서 함길도 도관찰사로 있다가 판한성부사로 승진하여 다시 개성유후(開城留後)로 옮겼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한가하게 살면서 편케 지난 지가 거의 10년이었는데, 이 해에 중추원 사로 제수되었으나 이때에 와서 죽었다. 나라에서 조상(弔喪)하고 부의와 제사를 내려 주고 시호를 양경(良景)이라 하였는데, 양아라는 뜻은 성품이 온량하여 화락하라는 것이고, 경이라는 뜻은 행실을 의리로서 행했다는 것이다. 아들이 다섯인데 이계치(李季畤)·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이계원(李季畹)·이계정(李季町)이었다.

【원전】 4 집 135 면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