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실록 ▒

世宗 18卷 4年 11月 16日 (己巳) 002 / 일본 국왕이 서간을 전하고 《대장경》을 청하다

천하한량 2007. 3. 23. 02:24

世宗 18卷 4年 11月 16日 (己巳) 002 / 일본 국왕이 서간을 전하고 《대장경》을 청하다


日本國王及其母后遣僧圭籌等, 致書獻方物, 求《大藏經》。 其書曰:

海路迢迢, 久不嗣音。 維時梅雨弄晴, 槐風噓爽, (共)〔恭〕惟神衛森嚴, 尊候納倍萬之福? 往歲貴國使臣之到吾朝也, 時有國師, 號曰智覺普明, 開館以厚遇之。 厥後其徒周棠者去遊貴國, 貴國先王使工, 圖國師壽象, 命文臣李穡作贊, 托於周棠回便以贈之, 蓋不忘舊德也。 由是觀之, 貴國之於我國師, 不可謂無因緣焉。 塔院要安置《藏經》, 寅昏披閱, 以報四恩資三有, 而未能得其本, 爰欲就貴國以求之。 予感其不憚鯨波危險, 使法寶流通助喜, 附以此書, 伏請憐其懇志, 付之七千全備經典, 則予亦同受其賜也。 然則兩邦之好, 有加永久。 不腆土宜, 具于別幅, 敢冀函輅閑休, 式符眞禱。 不宣。

圭籌等入殿庭, 以浮屠禮欲不拜, 禮官使通事諭之曰: “無君臣之禮, 則何以奉使而來? 隣國之使, 拜於庭下, 禮也。” 不獲已乃拜。

세종 18권 4년 11월 16일 (기사) 002 / 일본 국왕이 서간을 전하고 《대장경》을 청하다


일본 국왕과 그 모후(母后)가 중[僧] 규주(圭籌) 등을 보내어 서간(書簡)을 전하고 방물(方物)를 바치며 《대장경(大藏經)》을 청구하니, 그 글월에,

“바닷길이 멀어 오래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이때 매우(梅雨)는 개고, 회풍(槐風)이 상쾌하게 불어오는데, 신령이 호위하여 존후(尊侯)께서 만복을 받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지난해 귀국(貴國) 사신이 우리 나라에 왔을 때에, 그 때 국사(國師) 지각보명(智覺普明)이란 이가 있어 관(館)을 개설하고 그를 후하게 대접하였더니, 그 후에 그의 제자 주당(周棠)이란 자가 귀국에 유람차로 갔는데, 귀국의 선왕(先王)께서 화공(畫工)을 시켜 국사(國師)의 화상(畫像)을 그리고, 문신(文臣) 이색(李穡)으로 하여금 찬(贊)을 짓게 하여, 주당(周棠)이 돌아오는 편에 부탁하여 부쳐[寄贈] 보내셨으니, 대개 옛날의 후의를 잊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귀국과 우리 국사와는 인연(因緣)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탑원(塔院)에서 《대장경》을 안치(安置)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읽어, 사은(四恩)을 보답하고 삼유(三有)에 이바지하려고 하오나, 그 책을 얻을 수 없어서 귀국에 가서 이를 구하려고 하는데, 나도 그가 바다의 파도가 위험함을 꺼리지 않고 법보(法寶)를 유통(流通)시키려는 일에 감동하여, 기쁘게 도우려고 이 글을 부쳐 보내오니, 삼가 청하건대, 그 간절한 뜻을 불쌍히 여기시어 경전 전질(全秩)을 갖추어 7천 권을 보내주시면 나도 함께 그 혜택을 받으려고 하나이다. 그리하면 두 나라의 우호(友好)가 더욱 영구히 나아갈 것입니다. 변변하지 않은 토산물(土産物)은 별폭(別幅)에 갖춰 적었사오며, 감히 편안히 복을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하옵고 그만 그치나이다.”

하였다. 규주(圭籌) 등이 전정(殿庭)에 들어와서 부도(浮屠)의 예(禮)로써 하고 절을 하지 않으려 하거늘, 예관(禮官)이 통사(通事)로 하여금 그를 타이르기를,

“군신(君臣)의 예가 없으면 어찌 사명을 받들고 왔는가. 이웃 나라의 사신이 뜰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禮)이니라.”

하니, 마지 못하여 그제야 절하였다.

【원전】 2 집 512 면

【분류】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