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전 목사
충남 한산 출신으로 1914년에 평양 장로교 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본 교회 목사로 부임하였다. 일제가 한국내의 반일 세력을 제거하고 식민 통치를 정 착시키기 위하여 무단통치를 하던 시기인 1914-1919년에 본 교회에서 시무 하였다. 김인전 목사는 본 교회 재임중 성경학원 교수와 전북 노회장을 역임하면 서 선교와 교회 부흥에 노력하였고, 그를 따르던 기전, 신흥 학생들과 청년 들에게 기독교 진리와 더불어 민족주의, 애국사상, 국제정세 등을 가르쳤 다. 김인전 목사는 향교에 들러 유림한학자(儒林漢學者)들과 한서경전을 담 론하기도 하였으며, 그의 집에는 뜻있는 청년학도들이 머물기도 했는데 이 거두리(본명 이보한)도 그 중의 하나였다. 김인전 목사는 1919년에 전주 3.1 만세 운동을 총 지휘하여 독립선언문, 태극기 등을 인쇄 반포하였는데, 일본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자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망명 후 그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큰 역활을 하였으며, 그곳의 한인 교회에서 설교를 맡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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