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월남 이상재 선생을 배출한 목은 이색선생의 묘는 보조국사가 잡아준 명당이다

천하한량 2007. 3. 13. 05:55

목은(牧隱)이색의 문헌서원에서 태조 이성계는 꺽이지 않는 절개에
사육신과 함께 참수를 하진 않은 이유가  그의 높은 학문을 매우  아꼈고


아들 방원의 이름을 작명을 해줄만큼 친햇던 그여서 죽임 만은 면해주려 했으나
끝내 곧은 선비정신은 여주현감이 내린 어사주를 마시고 죽임을 당하고


한산이씨의 근간을 세워 후에 독립운동가,민권운동가 청년운동가인 
16대손 月南 이상재를  배출해낸다.   

 

보조국사가 잡아준 목은의 묘는 명당의 터 임이 눈으로 보였고
월남의 생가터 역시 다분히 명당 이다.

 

우리나라 최대 사치품인 한산모시를 보고 입은사람보다 수발하는 아낙들의 노고를 생각케 했으며

최초 光州를 빛고을이라 칭한 이가 목은 이색의 멋을 생각한다.

 

우리나라 보이스카웃을 창설했고 최초 사회장을 치룬 월남선생의 생애등을
책에도 없는 사실들을 줏어 모아본 하루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