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자연기(自然棋) -완당 김정희-

천하한량 2007. 3. 12. 20:07
자연기(自然棋)

동해라 한 구석 거성 고을에 / 東海車城縣
바로 이 자연형의 바둑이 나네 / 乃生自然棋
바닷가의 소라랑 전복 껍질이 / 海濱螺蜯殼
무더기로 쌓여 서로 괴고 부딪고 / 堆積相拄搘
파도와 모래 날로 치고 뭉개니 / 濤沙日蕩齧
조각이 나서 각기 모양 갖췄네 / 碎碎各具姿
모진 것은 모서리를 접은 것 같고 / 或方如削楞
둥근 것은 저절로 규에 맞았네 / 或圓自中規
사방이라 타원이라 그 형에 따라 / 斜方與橢圓
구고로 아니된 게 모두 없구려 / 勾股無不爲
맑고 트여 터럭도 비칠 만하고 / 瑩淨可鑑髮
윤택하여 엉긴 기름 잘라놓은 듯 / 膩滑疑截脂
검은 것은 바로 곧 팥자갈인데 / 黑者是小石
하나 하나 둥글고 기이하다네 / 一一圓更奇
의이새가 머금은 알 떨어뜨렸나 / 鷾鴯銜卵墮
망상이 안은 구슬 흘려버렸나 / 罔象抱珠遺
휴칠이라 감벽의 빛을 지니어 / 髹漆紺碧色
틀어짐 없이 모양 단정도 하네 / 端正體無欹
옛날 내가 바다를 따라가보니 / 昔余遵海行
넓고 넓은 데다 또 밝고 밝았네 / 浩浩復熙熙
무슨 물건 막대 끝에 서로 대질러 / 有物鳴相觸
쟁그랑 쟁글 옥 부딪는 소리 / 琮琤彈筇枝
모래위에 쫙 깔린 만만의 알이 / 鋪沙萬萬顆
검은 것 흰 것 모두 섞이어 있네 / 白黑相間之
비하자면 천상의 별과 같아서 / 譬如天上星
삼성이랑 자성의 착락이라면 / 歷落參與觜
또다시 소반 위 차림 같아서 / 復如盤中食
밤이랑 배가 모두 포개졌구려 / 飣餖栗與梨
열 손가락 움켜쥐어 주워 담으니 / 十指掬且攫
탐내는 놈 파사를 만난 격일세 / 貪夫籠波斯
서각 상아 멀어서 구할 수 없고 / 象犀遠莫致
단뇌는 사치로워 장만 어렵네 / 檀腦侈難資
왜공은 교묘하여 둥글게 갈고 / 和工巧磨圓
중국 요는 자기 굽기 묘하다지만 / 華窯妙燔瓷
이와 같이 천연으로 이루어져서 / 曷若此天成
반수도 아니 빌림 어찌 같으리 / 不假般又倕
나 자신은 바둑을 둘 줄 몰라서 / 伊余不解着
일반도 엿본 적이 평소에 없네 / 少無一斑窺
이 좋은 기구 장차 어디다 쓰리 / 利器將焉用
상자째 울밑에 버릴 수밖에 / 巾笥便委籬
비릉의 제이품을 차지하기는 / 毗陵第二品
그대가 아니고서 누구이겠나 / 誰歟舍君其
아끼지 않고 선뜻 가져다 주니 / 不惜相持贈
동방의 미옥보다 월등 나은 것 / 絶勝珣玗琪
성긴 발 구름비 내리는 곳에 / 疎簾雲雨處
낙락장송 맑은 날 바람 일 때에 / 長松風日時
은랑에다 아울러 방석을 깔고 / 隱囊復方褥
네 다리가 고여진 추나무 판과 / 楸盤四脚支
두 개의 무늬통에 담은 흑백을 / 盛之雙紋奩
정이와 같이 보아 벌여놓고서 / 列置如鼎彝
딩굴딩굴 기나긴 여름 녹이니 / 剝啄消長夏
한의 철지좌상에 모였다네 / 坐盡漢鐵芝
심오한 이치 실로 여기 있으니 / 玄理諒斯在
야호라서 비웃음 하질랑 마소 / 野狐莫見嗤
지건 이기건 전혀 개의찮으니 / 輸贏了無猜
차고 다순 그게 응당 스스로 알리 / 冷煖應自知
주머닛돈 추렴하여 반회 벌이고 / 出錢作飯會
날을 갈라 즐기며 정겹게 노네 / 分日以敖嬉
나는 늘 옆에 앉아 구경만 하며 / 余當傍坐觀
흔연히 또 한 잔을 기울인다오 / 欣然且一巵

[주D-001]망상이 안은 구슬 : 망상은 수신(水神)의 이름.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黃帝遊乎赤水之北……遺其玄珠……乃使象罔 象罔得之"라 하였음.
[주D-002]파사 : 나라 이름인데 진주가 많이 생산됨.
[주D-003]반수 : 반(般)은 노(魯) 나라 공수반(公輸般)이고, 수(倕)는 황제(黃帝) 때 사람으로 모두 교장(巧匠)임.
[주D-004]일반 : 《진서(晉書)》 왕헌지전(王獻之傳)에 "此郞管中窺 時見一斑"이라 하였는데, 이는 대통 속으로 표범을 엿보면 다만 한 곳의 반문(斑文)만 볼 뿐 전체는 보지 못한다는 말임.
[주D-005]동방의 미옥[珣玗琪] : 순우기(珣玗琪)는 옥의 유임. 《이아(爾雅)》에 "東方之美者 有醫無閭之珣玗琪焉"이라 하였음.
[주D-006]성긴 발……곳 : 두보의 시에 "楚江巫峽半雲雨 淸簞疏簾看奕棋"라 하였음.
[주D-007]낙락장송……때 : 소식이 일찍이 여산 백학관(白鶴觀)에서 노닐 때 관 안의 사람들은 다 문을 걸고 잠을 자는데 바둑 두는 소리가 고송 유수(古松流水)의 사이에서 들려오므로 시를 지어 이르기를 "五老峯前 白鶴遺址 長松蔭庭 風日淸美"라 하였음.
[주D-008]은랑 : 기대고 앉는 의자를 말함.
[주D-009]야호 : 송(宋) 원회(元懷)의 《무장록(撫掌錄)》에 "섭도(葉濤)가 바둑을 좋아함에 왕개보(王介甫)가 시를 지어 준절히 꾸짖었으나 끝내 그만두지 않았다. 바둑 두는 자가 흔히 일을 폐하여 대개 다 업을 잃게 되므로 사람들이 바둑판을 지목하여 목야호(木野狐)라 했다." 하였음.
[주D-010]차고 다순 그게[冷煖] : 옥기자(玉棊子)를 말함. 《두양잡편(杜陽雜編)》에 "日本東三萬里有集眞島 島上有凝霞臺 臺上有手談池 池中生玉棊子 黑白分明 冬煖夏冷 謂之冷煖玉"이라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