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사열이 시를 한 이십 년에 갑자기 원 나라 사람의 시를 배우고자 한다. 대개 그 뜻은 원 나라 사람이 많이 당(唐)을 배웠기 때문이다. -완당 김정희-

천하한량 2007. 3. 12. 20:06
사열이 시를 한 이십 년에 갑자기 원 나라 사람의 시를 배우고자 한다. 대개 그 뜻은 원 나라 사람이 많이 당(唐)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변시(辨詩) 한 편을 써서 시도(詩道)의 일어남을 밝히다[士說爲詩二十年 忽欲學元人詩 盖其意元人多學唐故也 余遂書辨詩一篇 以明詩道之作]

당송은 다 훌륭한 인물들로서 / 唐宋皆偉人
각기 한 시대 시를 이뤘느니라 / 各成一代詩
변이란 마지 못해 나오는 건데 / 變出不得已
운회 실상 그렇게 만들었느니 / 運會實迫之
격조야 답습한다 이를지라도 / 格調苟沿襲
사연이 같이 되면 어디 쓸 건고 / 焉用雷同詞
송인이 당인 뒤에 생겨났으니 / 宋人生唐後
개벽이란 참으로 하기 어려워 / 開闢眞難爲
한 시대를 통틀어도 다만 두어 명 / 一代只數人
나머지는 한결같이 하자가 많네 / 餘子故多疵
돈후의 본 의지도 같으려니와 / 敦厚旨則同
충효도 고쳐짐이 없질 않은가 / 忠孝無改移
원명이 선뜻 변하지 못한 것은 / 元明不能變
기력이 시들어서 만이 아니라 / 非僅氣力衰
능한 일도 그치는 지경이 있고 / 能事有止境
극예란 기(奇)를 각축하기 어렵다네 / 極詣難角奇
어찌하여 어리석고 천한 자들은 / 奈何愚賤子
당과 송에 한계를 나누려 들지 / 唐宋分藩籬
입을 열면 당의 음조 숭상만 하니 / 哆口崇唐音
양의 질에 범의 가죽 입혀놓은 격 / 羊質冒虎皮
헤벌어진 소리만 익혀 하는데 / 習爲廓落語
엎딘 시신 뭉게뭉게 죽은 기운만 / 死氣蒸伏屍
탱가로서 기상만 진열해 놓고 / 撑架陳氣象
질곡으로 위의를 내세우누나 / 桎梏立威儀
가련하다 뇌패한 물건 가지고 / 可憐餒敗物
교묘제의 희생을 대신하고자 / 欲代郊廟犧
가사 일러 소황의 종이 된대도 / 使爲蘇黃僕
온 종일 채찍매만 맡는 것밖에 / 終日當鞭笞
칠자로서 왕ㆍ이를 추대하여도 / 七子推王李
비웃음 끼치는 걸 못 면할텐데 / 不免貽笑嗤
더더구나 토목의 형상 만들어 / 況設土木形
헛되이 신선 모습 비긴단 말가 / 浪擬神仙姿
이백 두보 만약에 늦게 났다면 / 李杜若生晩
그도 또한 구규를 바꿨을 걸세 / 亦自易矩規
선학하는 자들에게 말 부치노니 / 寄言善學者
당송이 죄다 나의 스승이라네 / 唐宋皆吾師

[주D-001]교묘제 : 교(郊)는 천제(天祭)이고 묘(廟)는 종묘제(宗廟祭)임.
[주D-002]소황 : 소식·황정견을 이름.
[주D-003]왕이 : 명 나라 가정칠자(嘉靖七子)인 왕세정(王世貞)·이반룡(李攀龍)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