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청계의 복거에 기제하다[寄題靑溪卜居] 병서(竝序) -완당 김정희-

천하한량 2007. 3. 12. 18:48
청계의 복거에 기제하다[寄題靑溪卜居] 병서(竝序)

나는 청계를 알지 못한다. 일찍이 그의 박[瓠]을 읊은 시를 보니 시의
뜻이 심히 예스러워 받은 바가 있는 듯하여 하나의 도작(徒作)하는 자에 그치지 않는다. 산야의 사이에 이따금 기인이 있어 이와 같으니 혹시 남국의 산천이 영하고 빼어나서 기운이 뭉친 바가 있어서인가. 어찌 청계의 집안에 이처럼 기이한 인재가 많은가. 나는 청계의 아우 석유(碩斿)와 좋아하는데 석유 역시 기사(奇士)이다.
금산은 빼어나고 아름다우며 / 錦山秀而冶
금수는 맑고도 차가웁구나 / 錦水淸且冽
부춘산의 일각이 이 아니던가 / 富春一角歟
산음의 도중이 꼭 여기로세 / 山陰道中必
긴긴 대는 푸르러 낭간이 솟고 / 脩竹靑琅玕
첨복이라 하얀 꽃은 눈과 같구려 / 簷葍花如雪
조그마한 지경에 촌락이 열려 / 井落開小境
모정(茅亭) 하나 삿갓마냥 둥그렇구려 / 一笠團茆楔
높은 노래 그 속에서 풍겨나오니 / 高咏發其中
어찌타 기절하지 않을까 본가 / 那得不奇絶
요현이라 진실로 화답이 적고 / 么絃寔寡和
철적소리 찢어져 솟아나는 듯 / 鐵笛疑迸裂
들이쉴 젠 현규의 묘리를 찾고 / 胎息玄覈妙
높이 들 젠 벽해의 고래를 끄네 / 排奡碧海掣
성의 본연(本然) 진실로 소양이거니 / 性天固素養
연원 또한 결정코 특별할 거야 / 淵源定特別
참스럽고 올바른 유가의 법을 / 眞正儒家法
어디서 묘한 비결 전수받았나 / 何處傳妙訣
와부는 기뢰보다 높을 수 있고 / 瓦缶尊夔罍
초음유철을 분별하거든 / 噍音辨蕤鐵
온 세상이 먼지에 눈이 어두니 / 擧世塵眯目
금가루를 시험할 땅이 없구려 / 無地試金屑
부끄럽네 북면로가 내 아니라서 / 愧非北面老
어느 뉘 남방의 걸을 알 건고 / 誰識南方傑
단사라 죽전이라 귀한 물건은 / 丹砂與竹箭
서울에서 나온 일이 본래 없다오 / 元無京洛出
가련한 저 닷 섬들이 함박을 보소 / 可憐五石瓠
강호가 기갈보다 더욱 급하이 / 江湖急飢渴

[주D-001]요현 :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絃么而徽急"이 있고, 주석에 《설문해자(說文解字)》의 "么 小也"를 인용하였음.
[주D-002]철적 : 쇠로 만든 젓대를 말함. 주희(朱憙)의 철적정시서(鐵笛亭詩序)에 "무이산(武夷山)은 은자(隱者) 유군 겸도(劉君兼道)가 철적을 잘 불어 천운열석(穿雲裂石)의 소리가 났다." 하였음.
[주D-003]들이쉴 젠[胎息] : 도가(道家)의 수련법인데 기(氣)를 닫고 들이삼키는 것을 말함. 《포박자(拘朴子)》에 "태식을 얻은 자는 입과 코로 호흡을 하지 않고 포태(胞胎) 속에 있는 것같이 하는 데 그러면 도가 이루어진다." 하였음.
[주D-004]높이……끄네 : 배오(排奡)는 교건(矯健)의 모양. 한유의 시에 "妥貼力排奡"가 있음. 고래를 끈다는 것은 시의 힘이 굉장한 것을 말한 것으로 두보의 시에 "未掣鯨碧海中"의 구가 있음.
[주D-005]기뢰 : 기봉뢰(夔鳳罍)로서 일족(一足)의 봉(鳳)을 기봉이라 하는데 고대의 준뢰(樽罍)에는 그 무늬로 꾸몄음.
[주D-006]초음 : 급한 소리임.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其哀心感者 其聲唯以殺"라 하였음.
[주D-007]유철 : 유빈철(㽔賓鐵)을 말함.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촉(蜀) 나라 장군 황보직(皇甫直)이 비파 타기를 좋아하여 항상 한 곡조를 만들어 서늘 바람을 타고 물가에 가서 탔는데 황종(黃鐘)에 근본을 두었는데도 소리는 유빈으로 들어갔다. 시험삼아 다른 곳에 가서 타자 황종이 나므로 밤에 다시 못 위에서 타니 가까운 언덕에 물결이 움직이고 무슨 물건이 물에 부딪치기를 마치 고기가 뛰듯 하다가 하현(下絃)에 미쳐서는 그 소리가 없어졌다. 황보직이 물이 바닥난 못에 가서 쇠 한 조각을 얻었는데 바로 유빈의 소리를 낸 물건이었다."하였음.
[주D-008]금가루 : 눈병의 신약(神藥)을 말함.
[주D-009]북면로 : 북면은 제자가 스승에게 공경하는 예임. 《한서(漢書)》 우정국전(于定國傳)에 "우정국이 정위(廷尉)로 있을 적에 스승을 맞아 《춘추(春秋)》를 배우면서 몸소 책을 갖고 북면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하였음.
[주D-010]닷 섬들이 함박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서 나온 것으로 큰 재주는 크게 쓰인다는 것을 비유하여 한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