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초의에게 주다[與草衣][37]

천하한량 2007. 3. 9. 18:23
초의에게 주다[與草衣][37]

이와 같은 불볕 더위는 범을 잡아 엎드리고 용을 길들일 수 있는 힘으로도 아마 당해 내기 어려울 것 같소.
모르괘라 은지(銀地) 법계(法界)에는 능히 이선천(二禪天)의 낙(樂)을 얻어 세간의 열갱(熱坑) 화택(火宅)과는 같지 않은지요.
곧 묻노니, 선리(禪履)는 맑고 충족하며 훈·흔 여러 범려도 함께 편안하고 좋은지. 멀리 빌기를 마지않으외다.
사는 연달아 향실에 머물러 훈수(熏修)를 계속하는지요. 늘 생각나외다.
천한 몸은 그 사이 심한 설사병에 걸려 진원(眞元)이 몹시 탈진되었으니 세상살이의 고통이 마침내 이런 것인지요. 다행히 차의 힘을 입어 난촉(煖觸)을 연장하게 되었으니 이는 바로 한사방에 없는[一四方空] 무량복덕(無量福德)으로 알고 있다오.
가을 뒤에 계속 부쳐 주길 바라나 이건 싫증없는 욕심이 아니겠소. 향훈의 제품도 편에 따라 곧 보내 주었으면 좋겠구려. 마침 가는 인편을 인하여 대략 적을 뿐 장황하게 적지는 못하며 불선.
원교(圓嶠)의 글씨 대웅편(大雄扁)은 다행히 한 번 훑어 보았는데 이는 후배의 천박한 자들로는 능히 변론할 바 아니나 만약 원교의 자처한 것으로 논하면 너무도 전해 들은 것과는 같지 않고 조송설(趙松雪)의 과구(窠臼) 속에 타락됨을 면치 못했으니 저도 모르게 아연 일소할 밖에요. 이 어찌 원교의 스스로 기다렸던 것이겠는가. 더욱 서법이란 지극히 어려워서 쉽사리 말할 것이 못됨을 알겠구려. 만약 선종(禪宗)을 들어 말한다면 곧 하나의 하택종(荷澤宗)인데 하택이 사자후(獅子吼)를 외치니 사람이 문득 떨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요.

[주D-001]은지(銀地) : 불각도량(佛閣道場)을 칭한 것인데, 혹은 금지(金地), 유리지(琉璃地)라고도함.
[주D-002]이선천(二禪天) : 이선(二禪)을 수성(修成)한 자가 사는 천처(天處)임. 색계천(色界天)의 제이중(第二重)으로 신역(新譯)에는 이정려(二靜慮)라 이르는데, 이 가운데 다시 삼천(三天)이 구별되어 1은 소광천(少光天), 2는 무량광천(無量光天), 3은 광음천(光音天)임.
[주D-003]훈수(熏修) : 훈습(熏習)과 같은 말인데, 공부를 이름.
[주D-004]난촉(煖觸) : 몸에 감촉된 바가 있는 것을 촉이라 하는데, 난촉은 팔촉(八觸) 중의 하나 로서 몸이 더워 불 같은 것을 이름.
[주D-005]원교(圓嶠) : 이광사(李匡師)의 호. 자는 도보(道甫), 전주인(全州人)으로 녹리(甪里) 진검(眞儉)의 아들임. 원교는 필명(筆名)으로 일세(一世)를 독천(獨擅)하여 서결(書訣) 5~6천 언(言)을 저술하였으며, 그의 아들 영익(令翊)도 부업(父業)을 계숭하여 유명하였음.
[주D-006]대웅편(大雄扁) : 해남(海南) 대흥사(大興寺) 대웅전(大雄殿) 편액(扁額)으로 원교(圓嶠)의 글씨임.
[주D-007]하택종(荷澤宗) : 하택은 인명으로 당(唐) 낙양인(洛陽人) 신회(神會)인데, 14세에 사미(沙彌)가 되어 육조(六祖) 조계(曹溪)를 뵙고 몇 해를 함께 있으면서 능히 그 지(旨)를 터득하였으며 이윽고 서경(西京)에 가서 계(戒)를 받고서, 당(唐) 경룡(景龍) 연간에 조계(曹溪)로 돌아왔다. 육조가 망한 뒤 20년 사이에 조계의 돈지(頓旨)가 남지(南地)에는 침폐(沈廢)되고 숭악(崇岳)의 점문(漸門)이 경락(京洛)에 성행하므로 마침내 서울에 들어와서 천보(天寶) 4년에 남북 돈점(頓漸) 양종(兩宗)을 정(定)하였으며 《현종기(顯宗記)》를 저술하여 세상에 성행하였다.

'▒ 완당김정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에게 주다[與人]  (0) 2007.03.09
초의에게 주다[與草衣][38]  (0) 2007.03.09
초의에게 주다[與草衣][36]  (0) 2007.03.09
초의에게 주다[與草衣][35]  (0) 2007.03.09
초의에게 주다[與草衣][34]  (0) 2007.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