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남규재 병철 에게 주다[與南圭齋 秉哲][2]

천하한량 2007. 3. 9. 04:01
남규재 병철 에게 주다[與南圭齋 秉哲][2]

어서(御書)의 편액(扁額)은 삼가 쌍수로 떠받들어 보온바, 용장(龍章)으로는 바로 처음 대하는 절품이라 생각되옵니다. 역대 제왕들의 법서(法書)는 이미 많이 열람한 나머지이지만, 진사(晉祠)의 명(銘)실솔(蟋蟀)의 편에도 이 서경(西京)의 고법이 들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열백 번 완상할수록 아득히 천년을 뛰어났으니, 어찌 한 가닥 압록강 이내에 그치오리까. 천종(天縱)의 성(聖)이시라 의당 이러하려니와 인공(人工)의 묘도 홀로 신의 경지에 이르러서 또한 세속의 범상한 안목으로는 감히 그 만에 하나도 엿보고 헤아릴 바가 아니오니, 우리들이 문운(文運)의 전성기에 참여하게 된 것은 얼마나 복입니까. 저 구·우(歐虞) 여러 사람들도 향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감히 여사(旅舍)에 오래 머물러 두지 못하겠기에 인편을 인하여 삼가 돌려 드리오며, 남은 말은 뒤로 미루고 갖추지 못하옵니다.

[주D-001]용장(龍章) : 제왕(帝王)의 서법을 칭송하는 말임. 두계(竇臮)의 술서부(述書賦)에 "龍章鳳篆 寵錫儒門"이라 하였음.
[주D-002]진사(晉祠)의 명(銘) :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글씨인데 원석(原石)은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진사(晉祠)에 있음.
[주D-003]실솔(蟋蟀)의 편 : 제왕(帝王)이 쓴 글씨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음.
[주D-004]서경(西京)의 고법 : 한(漢) 서경 때의 예서(隸書)를 말함. 서경은 한 나라 장안(長安)을 지칭한 것으로 고조(高祖)가 그곳에 수도를 정하였고, 뒤에 광무제(光武帝)가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동경이 되어 비로소 동·서경의 칭호가 나왔는데, 한예(漢隸)의 서체도 서경 시대에는 정막(程邈)의 고예(古隸)가 성행하다가 동경 시대에는 채옹(蔡邕)의 분서(分書)가 나와 약간의 변체를 가져왔음.
[주D-005]천종(天縱)의 성(聖) : 《논어(論語)》자한(子罕)에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에서 나온 것인데, 여기서는 왕의 성(聖)과 능(能)을 들어 말한 것임.
[주D-006]구·우(歐虞) : 구는 구양순(歐陽詢)으로 주22) 참조. 우는 우세남(虞世南)을 이름. 당(唐) 여요인(餘姚人)으로 자는 백시(伯施)인데 태종(太宗) 때에 홍문관 학사가 되었으며 태종은 그에게 오절(五節)을 지녔다고 칭하였으니, 곧 덕행(德行)·충직(忠直)·박학(博學)·문사(文詞)·서한(書翰)이었다. 일찍이 글씨를 부도(浮屠) 지영(智永)에게서 배워 당사대가의 으뜸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