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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碑銘) 금강산 장안사 중흥비(金剛山長安寺重興碑)- 이곡(李穀)-

천하한량 2007. 2. 14. 18:16

비명(碑銘)
 
 
금강산 장안사 중흥비(金剛山長安寺重興碑)
 

이곡(李穀)

착하신 천자께서 즉위하신 지 7년만에 황후 기씨(奇氏)는 원비(元妃)로서 황자(皇子)를 낳았다. 그리고 얼마 뒤에 황후로서의 위의를 갖추어 흥성지궁(興聖之宮)에 거처하였다. 내시에게 말하기를, “내가 숙인(宿因 지난 세상에서 지은 업인(業因))으로 은혜를 입어 이에 이르렀으니, 이제 황제와 태자를 위하여 천명이 길기를 하늘에 빌고자 한다. 불법에 의탁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이른바 복(福)이니, 이(利)니, 하는 것은 듣지 않는 것이 없더니, 금강산 장안사(長安寺)가 가장 뛰어나게 좋아서, 복을 빌어 위에 보답하려면, 이 곳만한 데가 없다는 말을 듣자, 다음 해 지정(至正) 3년에 내탕(內帑)의 저폐(楮幣) 1천 정(錠)을 내어서 중수하게 하고, 길이 절의 경상재산(經常財産)으로 사용하라고 하였다. 다음 해에 또 그렇게 하였고, 또 그 다음 해에도 그렇게 하였다. 중의 무리 5백 명을 모아서 옷과 바릿대를 시주하고 법회를 열어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궁관(宮官) 자정원사(資政院使) 신(臣) 용봉(龍鳳)에게 명하여 일신의 본말을 돌에 기재하라 하고, 조서를 가지고 방금 와서 드디어 신 곡(穀)에게 명하여 글을 지으라고 하였다.
삼가 상고하여 보니, 금강산은 고려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서 서울에서의 거리는 5백 리, 이 산의 명승은 홀로 온 천하에 이름났을 뿐 아니라 실로 불경에 실려 있다.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기를, “동북의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으니, 담무갈(曇無竭) 보살이 1만 2천의 보살들과 더불어 항상 반야를 강설하였다.” 한 것이 이것이다. 예전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처음에 알지 못하여 가리켜 신선의 산이라고 하였다. 신라가 탑묘(塔廟)를 더 짓고 장식한 때로부터 선원(禪院)이 벼랑과 골짜기에 바싹 다가서게 되었다. 장안사는 그 산의 기슭에 있으면서 온 산의 도회(都會)가 되었으니, 대체로 신라 법흥왕 때에 창건되고 고려의 성왕(成王) 때에 중흥되었다. 아, 법흥왕 뒤에 4백여 년만에 성왕이 능히 새롭게 하였거니와 성왕으로부터 이제에 이르기까지가 또한 장차 4백 년이 되건만 아직 능히 다시 일으켜 회복하는 자가 없었다.
비구(比丘) 굉변(宏卞)이 그 퇴폐한 것을 보고 그의 동지들과 더불어 소위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에게 맹세하기를, “이 절을 새로 중흥하지 않는 곳에는 우리의 맹세를 이 산이 보고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즉시 그 일을 나누어 맡아서 널리 중생의 인연을 모으고 산에서는 재목을 채취하며,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구하였다. 마을 사람들을 빌리고 인부를 고용하며, 돌을 갈고 기와를 구어서 먼저 불전을 새롭게 수리하고, 대체로 빈관(賓館)과 승방(僧房)이 차례로 완성되어 갔으나 비용이 오히려 넉넉하지 못하였다. 또 탄식하여 말하기를, “세존(世尊)께서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을 때에는 급고독(給孤獨)이 특히 돈을 내었으니 생각하건대, 지금이라고 어찌 그런 사람이 없겠는가. 오직 만나지 못하였을 뿐이다.” 하고, 드디어 서쪽의 북경으로 유세(遊說)를 떠났다. 일이 황후에게 알려지고 고자 정원사(高資政院使)가 주장하여 힘썼다. 그런 까닭에 그 일의 성공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부처의 교(敎)가 때를 따라서 흥성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옛날 우리 세조황제가 이것을 존숭하고 신앙하였으며 역대의 임금들이 서로 받들어 빛나게 하고 크게 하였다. 오늘의 황제도 선왕의 뜻을 이어 일을 수성(守成)하여 더욱 불교에 뜻을 두었다. 대체로 성인(聖人)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과 불자(佛者)의 살생하지 말라는 경계는 동일한 인(仁)과 애(愛)이며 동일한 자비인 것이니, 황후의 보고 느끼는 것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 옛날의 덕(德)을 천하에 베푼 자는 오제(五帝)와 삼왕(三王)만한 이가 없고, 후세에 가르침을 남긴 이는 공자만한 이가 없건만, 지금의 상태에서 보면 제왕으로서 묘우에서 제사를 받는 자는 거의 드물며, 공자는 비록 문묘가 있기는 하나 예제(禮制)에 국한되어 제수(祭需)와 제사가 모두 일정한 수가 있으며, 그 무리의 먹고 사는 일은 겨우 넉넉함을 취할 뿐이다. 그런데 오직 부처만은 그의 궁전이 중국과 오랑캐의 땅에 있어서 바둑처럼 벌려 있고 별처럼 널려 있으며, 전각과 계폐(階陛)의 엄숙함과 금벽(金碧)의 단청 장식은 왕자(王者)의 거처에 비길 만 하고, 향화와 복식의 봉공(奉供)은 봉읍(封邑)의 수입에 비길 만하다. 이것은 그 교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실로 깊고 넓기 때문인 것이다. 이 절이 중흥되는 것은 당연하다. 중수된 절의 모든 방옥(房屋)을 간수로 계산하면 1백 20여 간이 된다. 불전과 경장(經藏)과 종루(鐘樓)의 삼문(三門)과 승료(僧療)와 객실(客室)에서 부엌과 욕실의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두 건축의 아름다움을 극진하게 하였다. 불상의 시설은 비로자나ㆍ좌우로사나(左右盧舍那)ㆍ석가모니의 불상이 우뚝하게 가운데 봉안되고, 만 5천 불 53불이 주위를 겹으로 둘러 정전(正殿)에 배치되었다. 관음대사(觀音大士) 천수천안(千手千眼)은 문수ㆍ보현ㆍ미륵ㆍ지장과 더불어 선실(禪室)에 배치되고, 아미타 53불ㆍ법기보살(法起菩薩)ㆍ익로사나(翊盧舍那)는 해장궁(海藏宮)에 배치되었다. 모두 장엄하기가 극치에 이르렀다. 장경(藏經)은 모두 4부로서, 그 1부는 은(銀)으로 서사한 것인데, 바로 황후가 하사한 것이다. 《화엄경》 3권과 《법화경》 8권은 모두 금으로 쓴 것으로서 또한 그 장식을 지극히 아름답게 하였다.
예전부터 있던 전지(田地)에 이르러서는 국법에 의하여 결(結)의 수로써 계산한다면 1천 50결이 된다. 전지로서 성열(成悅)ㆍ인의현(仁義縣)에 있는 것이 각각 2백 결, 부녕(扶寧)ㆍ행주(幸州)ㆍ백주(白州)에 있는 것이 각각 백 50결, 평주(平州)ㆍ안산(安山)에 각각 1백 결이니, 바로 성왕(成王)이 희사한 것이다. 염분(鹽盆 소금 굽는 가마)은 통주(通州)의 임도현(林道縣)에 있는 것이 하나, 경저(京邸)의 개성부에 있는 것이 1구(區), 시장의 점토에서 남에게 세 준 것이 30문(問)이다. 모든 돈과 곡물과 집기의 수는 사무 담당자가 기재하지 않았다. 태정(泰定) 연간의 중흥한 때로부터 시주한 이들로서 중정사(中政使) 이홀독첩목아(李忽篤帖木兒)와 같은 여러 사람들은 그의 성명을 비의 뒷면에 열기하였다. 명(銘)에 이르기를.

뼈를 드러내는 산이 있으니 / 有山露骨
깎아지른 암벽이 높이 솟아있네 / ?巖突兀
그 이름 금강일세 / 名金剛兮
불경에 나타난 / 貝晝所著
보살의 살던 그곳 / 菩薩住處
청량산의 다음인저 / 亞淸?兮
구름과 연기를 숨쉬어 내니 / 吹噓烟雲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서로 합하고 / 輪?絪縕
서리어 광채를 움키고 내뿜네 / 發神光兮
새와 짐승은 길들어 있고 / 鳥獸其馴
벌레와 뱀은 어질고 / 蟲蛇其仁
초목은 향기가 있네 / 草木香兮
중들의 높은 암자는 / 釋子卓菴
공중에 다리를 놓고 바위에 걸쳐 있어 / 梯空架岩
멀리 서로 바라다 보이네 / 遙相望兮
장안정사는 / 長安精舍
산 밑에 자리잡은 / 居山之下
대도량 / 大道?兮
일찍이 신라시대에 주추를 놓았으나 / 肇基羅代
이룩하고 무너지고 한 것이 몇 번이던가 / 屢其成壞
세상은 무상하여라 / 時不常兮
하늘의 계시가 성스럽고 신령하여 / 天啓聖神
세조의 자손이 / 世祖之孫
만방에 군림하였네 / 君萬方兮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흡족해서 / 德洽好生
생령들을 따뜻이 품어 주고 적셔 주시는 / 煦濡舍靈
공왕(부처의 딴 이름)을 사모하시네 / 慕空王兮
슬기로운 황후께서는 / 於惟睿后
땅의 너그럽고 후한 것을 본받아서 / 體坤之厚
하늘 같은 황제의 강강한 덕을 받들어 도우심이여 / 承乾剛兮
마음을 신독(인도의 딴 이름)에 돌려서 / 歸心身毒
부처의 불가사의한 복을 가져다 / 取彼妙福
우리의 황제를 받드시네 / 奉我皇兮
생각하건대 이 복된 땅에서는 / 惟此福地
신선과 부처의 깊은 비밀이 / 仙佛奧秘
많은 상서로움을 낳으리라 / 紛産祥兮
임금이 경사 있으매 / 一人有慶
하늘이 거듭 명령하여서 / 天其申命
수명은 가이없고 / 壽无疆兮
두 밝음이 이괘 황제와 황후의 두 밝음이 큰 광명을 이룩하니 / 明兩作離
길이 나라의 기초를 굳게 하여 / 永固鴻基
하늘과 더불어 장구하겠네 / 與天長兮
황후가 내신에게 이르기를 / 后謂內臣
저 부처의 / 惟彼法身
교화를 드러내 밝히게 하라 / 其化彰兮
이미 그 부처의 궁전을 새롭게 하였으니 / 旣新其宮
마땅히 그 공을 기록하여 / 宜紀其庸
잊음이 없게 하여야 하겠네 / ?無忘兮
높다랗게 비석이 섰음이여 / 有石??
저 산의 언덕 위에 있으니 / 于山之阿
글을 새겼네 / 勒銘章兮

하였다.


[주D-001]두 밝음이……것처럼 : 밝음을 상징하는 소성괘(小成卦)인 이중허(離中虛) 두 개가 겹쳐서 대성괘인 이괘(離卦)를 이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