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열린 목은 학술대회에 참가한 독일 자유대학의 한스 유르겐 자보롭스키 교수(53·한국학)는 벌써 30년 이상 이색을 연 구하고있다.
60년대 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하던 그는 『당 시에 만난 한국인들이 너무 좋아 한국 연구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 는 『지금도 독일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이 훨씬 잘 놀고 잘 마시고 즐겁게 일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학생 시절 독일에 파견된 한국인 간호 사 김영조씨와 결혼했다.
그가 특별히 이색연구에 한 평생을 바치게 된 것은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곳을 몰라 하노라.」라는 시조를 읽고나서.
망국에 처한 고려 의 국사를 희망없이 외롭게 지키던 이색의 쓸쓸한 마음이 담긴 이 시조 는 당시 독일에서 아무도 공부하지 않던 나라인 한국 연구에 입문하려는 가난한 처지의 학생이었던 자보롭스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국에 유학가기 위해 당시의 서독 주재 한국대사관에 가서 장 학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대사관 문정관으로부터 『부자나라 학생이 왜 가난한 나라 돈으로 공부하려는가』라는 쌀쌀맞은 대답만 들었다는 것.
때문에 그는 서독에서 거의 독학으로 이색을 연구해 70년 박사학위를 받았 다. 이듬해부터 8년간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서울에 서 한국어와 이색에 대한 연구를 깊이 했다. 이때 수집한 한국 관련 책 자가 2만권이 넘는다.
자보롭스키 교수는 『이색이 중국의 원명교체기와 한국의 고려-조선 교체기를 산 대사상가이며, 문호이자 충신』이라고 평가했다. 이성계 일 파가 이색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 것도 그의 학문과 재능에 대한 국제적 인 명성 때문이라는 것.
그는 조선초에 편찬된 「고려국사」나 정인지 등이 편찬한 「용비어천 가」 등에서도 이색에 대한 조선조 지배층의 비난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 장해 눈길을 끌었다.
고려사를 연구하느라 북한도 3차례 방문했던 자보 롭스키 교수는 『88년 개성의 선죽교를 찾았을 때에는 살해당한 정몽주가 생각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1m90㎝가 넘는 키에 거구인 자보 롭스키 교수는 『한국에 올 때마다 친구들과 횟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또한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한국에 비해 20∼30년 가량 뒤쳐져 있다』며 『독일식의 조급한 흡수 통일은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 목은자료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은 이색 선생의 장자 문양(文襄) 이종덕(李種德)선생의 생애 (0) | 2007.02.04 |
---|---|
송죽 같은 절개로 일생을 마감하신 목은 이색 선생 (0) | 2007.02.04 |
목은 이색선생의 손자 한재(漢齋) 이맹균선생의 시 (0) | 2007.02.04 |
목은 선생 이 문정공 행장(牧隱先生李文靖公行狀) (권근(權近) (0) | 2007.02.03 |
목은 이색선생 이야기 『목은고(牧隱藁)』 중에서 (0) | 2007.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