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자료실 ▒

한산 세모시는 여인들의 삶이요, 인생이었다

천하한량 2007. 1. 25. 05:46
서천의 문화를 말하려면 한산 세모시를 빼 놓을 수 없다.

한산 세모시는 서천의 상징이며 서천 사람들에게 모시 근성을 갖게 한 중요한 문화 유산이다.

서천 어느 집에서나 모시를 짜는데 필요한 바디나 북이 쉽게 눈에 띠 듯 서천 사람들은 모시와 같이 살아 왔다. 지금도 서천의 중요 생산품으로 그 맥을 잇고 있으니 모시는 서천의 자랑이다.

 

서천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온 모시와 함께 요즈음 서천은 체험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임금님이 한번도 왔다 간 적이 없을 서천은 천연 그대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바다와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우리는 개발하지 않고 간직해 왔다.

그 덕분인지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자치단체가 탄생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먼저 서천문화의 상징인 한산 모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한산모시관을 찾아야 한다. 한산모시관은 부여에서 40km, 대전에서는 102Km 정도 이격되어 있다.

 

한산 모시는 잠자리 날개 같이 가늘고 엷어 보기에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올이 가늘고 짜여진 직조 상태가 좋아 합성 섬유에 비하여 통풍성과 땀 흡수력이 좋고 흡수한 습기를 빠르게 발산한다.

 

물론 손질이 까다롭기는 해도 모시옷을 입고 나들이하는 기품은 흐트러짐이 없는 선비이다.

경상남도 동래 지방에 전해오는 민요 속에는 모시옷의 풍치가 잘 묘사되어 있다.


“모시야 적삼 아래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많이 보면 병납니더

 

 담배 씨만큼 보고 가소.”  

 

모시옷 아래로 은은하게 비치는 여자의 젖가슴을 훔쳐보기는 보되 조금만 보라는 은근한 충동질이다. 그 얼마나 모시옷의 특징을 극명하게 나타낸 민요인가?

요즈음도 거리에서 모시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선비의 고상함이 드러나고 여인들은 정숙함이 현모양처 그대로이다. 모시옷의 기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한산 모시는 서천 사람들에게 모시 근성을 심어 주었다. 모시풀이 한 필의 모시가 되어 여름철 시원한 멋을 느끼게 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서천 사람들은 참을성을 배우게 되었다. 모시를 째면서, 모시를 날면서, 모시를 짜면서 서천 사람들이 갖게 된 것은 인내력이었다.

 

세모시 옥색치마라고 부르기는 쉽지만 그 한 벌의 올 속에는 서천 사람들의 말 할 수 없는 치아와 싸움, 메스꺼운 왕겨 불과 싸움, 베틀에 걸터앉아 배고픔과 허리 통증과의 싸움은 곧 인간 승리요, 삶 그 자체였다. 모시는 부드러운 맛을 주면서도 질기디 질겨 끊기지도 찢기지도 않는다. 바로 서천 사람들을 닮은 것이다.

 

서천 사람들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얌전한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강한 외유내강형의 사람들이다.

또한 한산 모시는 화려하거나 사치스런 모습을 담고 있지 않다.

 

담백한 촌색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요, 장신구를 많이 가진 멋쟁이는 더욱 아니다. 한산 모시의 속성인 청빈낙도(淸貧樂道)의 기품을 갖추고 있다. 서천 사람들의 청렴하고 결백한 삶의 모습이다. 부자가 되려고 모시를 짜지 않는다. 먹을 것이 없어서 먹고살려고 모시를 짜는 것이 아니다. 모시 짜는 것이 생활이요, 삶 그 자체요, 어머니, 할머니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마실 다니는 여인과는 퍽 다른 삶의 모습이다.


한산 세모시는 여인들의 삶이요, 인생이었다. 베틀에 앉아서 사랑도 삭히고, 증오도 삭혀야 한다.

지나온 세월의 한을 잉아에 걸고 날줄 사이로 씨줄을 던지고 바디를 내려치면 다시금 일어나는 그리움을 밀어내야 한다.

 

‘어느 세월 이 한 필이 완성될까’하지만 아들 녀석 눈동자를 생각하면 새벽닭 울어 날이 새어 버린다. 여인의 한을 듬뿍 담고 세모시는 새벽 장에서 팔려 간다. 서천 여인의 근면성을 엿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서천 여인들은 부지런해야한다. 생활은 생활대로 해야하고 모시는 모시대로 짜야하기 때문이다.
모시는 부정을 거부한다. 순백한 모시옷에 불순물이 묻는다면 오점(汚點)이다. 모시옷을 입은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더러운 것에 가까이 하길 꺼려한다. 사방이 깨끗하게 정리 정돈 된 장소에 있을 때 모시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도 편하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모습을 보라, 대쪽같은 외마디 비명 속에 일본인의 간담을 써늘하게 할 수 있었던 권위는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자란 모시 근성 때문이었다. 이가 전형적인 서천 사람이다.

한산 모시의 아름다움과 서천사람들의 정신적 바탕이 된 모시 근성은 서천 문화를 새롭게 창조해 냈다. 비인오층석탑, 기산 문헌서원, 마량 동백나무 숲, 한산 소곡주, 이하복 전통가옥 등 다양한 서천 문화를 만들어 냈다. 또한 고려말 공녀제 폐지를 주장하였던 가정 이곡, 그에 아들 목은 이색, 중고제의 이동백, 김창룡 등 걸쭉한 인물들이 배출된 곳이다.

 
 이런 서천은 요즈음 체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00년 1월 1일 서면 마량리 해돋이 행사는 군민과 7만여 관광객의 가슴에 새 천년의 붉은 태양을 선물하였다.

 

새해 새 천년 맞이 달집태우기, 모닥불 피우기, 노래부르기 등 다양한 현장 체험이 이루어졌다. 또한 지난 정월 대보름 날 금강하구둑에서 열린기벌포 대보름제 행사 역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제공하였다. 장승 세우기, 연날리기, 떡 찧기, 널뛰기, 자치기, 팽이치기, 쥐불놀이 등 이 고장에서 행해진 각종 전통 민속놀이가 체험 활동으로 선을 보였다.


앞으로 5월1일부터 6일까지 펼쳐지는 제11회 모시 문화제 행사에서도 모시 길쌈 과정을 손으로 만지는 체험장을 운영하여 모시 베끼기, 삼기, 감기, 날기, 째기까지 전과정을 국내외 관광객에게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체험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모시 염색 시연 및 체험, 모시 옷 입어보기 및 사진촬영과 짚 공예 제작 체험 등 다양 체험 관광이 준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정기적인 행사 외에도 각종 단체에서 도시민과 연계된 체험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농촌 체험으로 벼 수확 시기에 맞춰 도시주부들이 교환 체험 관광을 실시하며 동시에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잡는 등 농어촌 체험장으로 보람을 얻고 있다. 이렇게 연계되어 청소년을 위한 각종 체험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연구소 직원들과 연계된 바다 낚시 체험은 민박을 하면서 모깃불도 지피고 마을 민과 정담을 나누는 보기 좋은 체험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체험 관광은 바다, 강, 산, 농토 등 다양한 서천의 환경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갯벌 체험은 조개, 소라, 게 등을 잡는 활동으로 가장인기가 있는 체험 활동이다.


모시 문화와 체험 관광지로 어우러진 서천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면서 관광지를 개발하여, ‘보는 관광에서 체험 위주 관광으로 ’전환함으로 문화와 관광이 살아 있는 서천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